정의구현과 ‘돈벌이’ 사이…사적 제재에 던지는 질문

2024.07.01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비질란테>의 포스터.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지난해 공개됐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비질란테>의 포스터.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지난해 공개됐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법은 구멍 나 있다. 그 구멍은 내가 메우겠다.” 인기 웹툰 <비질란테>의 내용을 단 한 줄로 설명한 주인공의 대사다. 2018년 연재를 시작한 <비질란테>는 누적 조회수 3억7000만뷰를 기록하고, 현재 2부를 연재 중이다. 1부 연재 중 이미 <비질란테>를 활용한 논문이 나왔고, 지난해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사회적 파급력과 서사적 인기를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사례다.

웹툰 <비질란테>의 인기 이유로는 두 가지 특별한 요소가 꼽힌다. 첫째는 소재의 독특성이다. <비질란테>가 다루는 이야기는 폭행, 성폭행, 살인 등 웹툰의 단골 소재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복수, 정확히는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다. 경찰대 학생인 주인공이 공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물리력으로 ‘직접’ 범죄자를 처단한다. 둘째는 독자가 이러한 사적 제재에 공감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비질란테> 속 ‘범죄’들이 왠지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2020년에 출간된 논문 ‘법은 가해자들에게 그들의 저지른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하고 있는가?-웹툰 비질란테를 통해 본 네티즌의 응보에 대한 여론 분석: 데이터 사이언스 분석방법을 활용하여’(정지송·서형국·노승국 공저)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해당 논문은 <비질란테> 1화부터 90화까지 총 12만9699건의 독자 의견을 수집해 회차별 의견량, 공감지수 변화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다룬 회차에서는 온라인 의견량 및 공감지수가 급상승하는 것이 확인됐다.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한 ‘미뤄진 정의’를 웹툰에서 사적 제재로 구현한 것에 독자들이 호응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밀양 성폭력 사건’이다.

웹툰에서나마 가해자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다. “얼마나 이 나라에 믿을 게 없으면 비질란테가 실제로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할까”, “적어도 소재 떨어질 일 없겠네. 무한으로 리필되니까” 등 독자들은 <비질란테>와 현실을 비교하며 자조했다. 그런데 이는 현실에서 비질란테, 즉 ‘자경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 역시 “이 만화는 실제의 인명, 지명, 사건, 법령 등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 창작물”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런데 만화에서나 가능해 보였던 상황이 최근 변형된 형태로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재점화된 20년 전 사건이 한국사회에 비질란테, 즉 ‘사적 제재’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양날의 검, 사적 제재

희미해진 기억을 뚜렷한 사건으로 되살린 것은 영상 하나였다. 한 인기 유튜브 채널에 우연히 포착된 과거 사건의 가해자는 한국사회에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저지른 악행에 비해 평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일반적인 ‘정의’의 기준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했다. 44명의 가해자가 미성년자를 1년여간 집단 성폭행했다. 가해자 44명 중 10명만이 재판에 넘겨졌고, 5명은 장·단기 소년원 송치(7호·6호), 5명은 80시간 사회봉사명령 처분에 그쳤다.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건은 ‘미뤄진 정의’로 남았고 ‘사적 제재’를 불렀다.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지난 6월 1일부터 6일까지 밀양 사건 가해자 4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주동자’로 지목된 남성 3명과 ‘옹호자’로 지목된 여성 1명이었다. 그 결과 가해자 중 1명은 직장에서 퇴사했고, 다른 가해자가 일했던 식당은 폐업했다. 악행에 상응하는 결과인지와 별개로 20년 동안 미뤄졌던 처벌이 이뤄졌다는 것에 일부 대중은 열광했다.

문제는 확실한 성과에는 반대급부도 확실히 따라온다는 점이다. 정확성·정당성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락보관소는 가해자 신상 공개를 진행하며 밀양에서 운영 중인 한 네일숍을 지목해 “가해자의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추정된다”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에 지난 6월 5일 해당 네일숍을 운영 중이라고 밝힌 A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업장을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플 및 악의적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경찰서를 방문해 진정서를 제출했고, 허위사실 유포 및 업무방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A씨가 피해를 호소하는 동안에도 나락보관소 커뮤니티 등에선 A씨에 대한 조롱이 이어졌다. 나락보관소가 잘못을 인정하고 나서야 사안은 일단락됐다.

밀양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 성폭력 상담소는 지난 6월 5일 유튜버의 가해자 신상공개 행위에 피해자가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갈무리

밀양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 성폭력 상담소는 지난 6월 5일 유튜버의 가해자 신상공개 행위에 피해자가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갈무리

더 큰 문제는 사적 제재의 정당성이다. 애초에 유튜버의 사적 제재가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은 ‘피해자 동의’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락보관소 역시 스스로 피해자(가족) 동의를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왜 동의가 중요한지’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 측 이미 지난 6월 3일 영상 삭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6월 5일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자 측이 가해자 44명의 신상 공개에 동의한 바 없다고 분명히 했다. 동의받지 않은 영상을 내려 달라는 요청이 묵과된 사이, 피해자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받아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 피해자의 ‘2차 피해자화(Secondary Victimization)’다. ‘불의’를 딛고 선 ‘정의’가 정의는 맞는지, 이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분노는 어떻게 돈이 되나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따져보기 위해선 유튜브에서 사적 제재가 활용되는 구조를 봐야 한다. 대중의 열광, 분노는 유튜브 영상 조회수와 직결된다. 시청자의 감정 동요를 불러일으킬수록 조회수가 높아지고, 유튜브 광고 배정을 통한 수익이 증대된다. 이는 논란이 될 만한 사건·사고를 자극적으로 재조명해 돈을 버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 활동의 기본구조다.

사적 제재는 사이버 렉카의 주요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사건, 미뤄진 정의, 복수는 모두 대중이 관심 가질 만한 소재들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과거 발생한 유명 사건들을 검색하면 이미 많은 영상이 만들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영상들이 피해자 동의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본 피해가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관점에서 다시 밀양 사건 전개 과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 나락보관소의 경우 밀양 사건 전후로 구독자 수가 약 5만명에서 약 50만명(지난 6월 20일 기준)으로 늘어났다. 해당 채널의 유튜브 가입일은 지난 3월 30일이다. 밀양 사건을 다룬 동영상 조회수 역시 독보적이다. 다른 사건보다 4~5배 많은 200만~300만회를 기록했다. 나락보관소는 지난 6월 7일 영상을 모두 삭제하고 채널을 닫는 듯했지만, 하루 만에 복귀해 다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 영상들 역시 밀양 사건이 소재면 약 100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런 흐름은 밀양 사건을 다루는 다른 유튜버에게서도 발견된다. 역시 밀양 사건 가해자를 공개하고 있는 유튜버 전투토끼는 지난 6월 20일 기준 총 26개 영상을 게시 중이다. 이중 7개 영상이 조회수 10만회를 넘겼는데 6개가 밀양 사건 영상이다.

수익은 어떨까. 지난 6월 18일 나락보관소, 전투토끼의 밀양 관련 영상 중 조회수가 높은 영상 두 개씩을 골라 유튜브 채널 데이터를 집계하는 ‘플레이보드’에 수익 창출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락보관소는 광고 수익이 창출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전투토끼는 두 영상 모두에서 광고 수익을 창출 중이었다. 그렇다고 나락보관소가 밀양 사건으로 얻는 수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왕효근 플레이보드 대표는 “나락보관소가 광고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는데 댓글을 달면서 직접 후원할 수 있는 이른바 ‘슈퍼땡쓰’ 기능은 활성화돼 있다”며 “여기서 얻는 수익이 일반 영상과 비교할 때 예외적이라 할 만큼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고 수익이 없는 것 역시 본인이 막은 것인지 막힌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사실관계 및 영상 제작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나락보관소가 밝힌 e메일로 문의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나락보관소’가 올린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 동영상에 달린 후원 댓글./나락보관소 유튜브 갈무리

‘나락보관소’가 올린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 동영상에 달린 후원 댓글./나락보관소 유튜브 갈무리

물론 수익을 얻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가 ‘정의, 공익을 위하는 것’인지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해 돈을 버는 수단’인지는 구분할 필요는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유튜버에 의한 ‘제3자 사적 제재’의 순수성이 의심받는 것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더욱이 피해자의 사전동의 없이 했다면 이는 수익활동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일부 유튜버들의 행보가 기존의 공익 제보와 다른 것은 경찰, 검찰, 판사처럼 위험부담이 높거나 사법 시스템처럼 복잡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 점”이라며 “쉽게 말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도 돈이 되지 않는 영역은 건드리질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옹호 논리는 있다. 이들이 법적 처벌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형법상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명예훼손의 경우 형법 제307조에 따라 사실을 적시하든 허위 사실을 적시하든 처벌된다. 이중 사실을 적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유튜브를 이용한 만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동법 제70조 제1항에 따라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적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으로 실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나올 확률이 높은데 만약 유튜브를 통해 벌금의 최대치 이상을 벌 수 있다면 사적 제재를 돈벌이 수단으로 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해 분노할 것인가

밀양 사건이 촉발한 분노는 ‘정의’에 관한 여러 질문을 던진다. 미뤄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가해자 처벌만 끝나면 정의가 달성되는가 등이다. 특히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이들 중에는 가해자 신상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협조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사적 제재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에 대해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우리 사회나 교육은 학교 폭력과 같은 범죄를 목격해도 ‘참아라,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그때 도와주라’며 절대다수를 방관자로 성장하게 한다”며 “대다수의 사람이 마음 한쪽에 미안함, 죄책감을 가진 양심의 빚쟁이처럼 살아가는 상황에서 ‘사이버 렉카’들이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나서면 마치 내가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사 이들이 돈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옹호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것이 순수하게 피해자를 위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대중적 분노, 관심이 사그라든 이후다. 지난 6월 17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밀양 사건 피해자는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한다.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결국, 가해자 처벌을 넘어 이 문제를 만든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 사법제도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권익을 중심으로 돼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며 “법을 적용하는 과정이 문제라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국민의 법 감정과 법 적용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도록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법 자체가 문제라면 기존 법률의 개정과 보완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심이 가해자 신상에 쏠린 사이 해당 논의는 사법당국, 국회 어디서도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적 제재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상징함에도 유튜버 처벌 외에는 침묵 중이다. 밀양 사건의 가해자는 44명뿐 아니라 법과 이를 적용하는 사법 질서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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