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이 닥치기 전에 ‘기후정의’ 헌법에 도입해야”

박송이 기자
2022.09.26

한상운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터뷰

경남 통영 앞바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멍게가 녹아 흘러내렸다. 어민들은 멍게가 자랄 수 있는 수온을 찾아 배를 옮겨 다녔다. 농어민들이 기후위기 피해의 최전선에 있다. 이들과 국가가 만나는 접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2030년 온실가스감축 4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성장을 목표로 짓고 부수고 개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모순과 혼돈이 뒤얽힌 상황에서 ‘기후정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환경분야 국책연구기관이자 환경영향평가 전문검토기관인 환경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초래한 피해의 불평등을 바로잡고, 자연에도 권리를 부여하는 ‘기후정의’를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인 한상운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법이 사회를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강윤중 기자

사진 / 강윤중 기자

-지난 9월 5일 ‘생태적 국가’를 천명한 칠레의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61.9% 반대로 부결됐다.

“현행 칠레 헌법은 피노체트 군부정권 시절인 1980년 제정됐다. 칠레에서는 2019년 10월 불평등과 양극화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개헌 목소리가 커졌다. 2020년 10월 개헌 착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78%가 개헌에 찬성했다. 칠레의 헌법개정안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입법이면서 자연의 권리를 담은 생태헌법이다.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인플레이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먹고살기도 힘든데 평등이나 생태가 뭐가 중요한가’라는 소수 자본세력의 논리가 저소득층을 파고들었다. 밑에서부터 국민이 주도해 비전을 제시한 개헌안이었는데, 결국은 밑에서 거부한 결과를 보고 충격이 컸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헌법도 개정할 필요가 있나.

“마지막 개헌이 1987년이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상상도 못 했던 때다. 오늘날 국가적으로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도 가장 큰 정책적 변화가 기후위기 대응, 녹색전환이다. 관련 예산도 수십조원에 달한다. 1년 하고 말 정책이 아니라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나가야 하는 정책이다. 헌법이 이런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2018년 국회에서 개헌논의가 있었다. 환경과 관련한 개헌논의도 있었나.

“당시 환경연구원에서 환경헌법포럼을 만들었다.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전 법무부 장관)가 포럼 대표였고, 나는 연구책임자이면서 위원이었다. 그간의 연구와 논의를 바탕으로 개헌안을 작성했다. 강 (전) 장관과 내가 이를 국회에 주고 설득했고, 국회 헌법개정특위 전문위원들의 검토도 마쳤다. 그 결과 여야는 물론 정부까지 합의한 개헌안이 만들어졌다. 합의된 내용의 두 축은 ‘환경권의 실질화’와 ‘환경국가원리 도입’이었다. 1980년 도입된 환경권(헌법 제35조)은 기본권의 기능을 못 하고 있다. 권리가 침해됐을 때 ‘내 권리가 침해됐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게 기본권이다. 예컨대 갑자기 기사가 삭제됐다면, 바로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가 침해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환경권에 대해서는 그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기, 물, 땅 등 생명체가 살아갈 생존기반이 위협받아도 사람들은 ‘나의 환경권이 침해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혹여 누군가 권리 침해를 주장해도 법관들이 추상적 권리라고 판결내리기 쉽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입법이 있는지만 찾아보고, 없으면 ‘권리침해를 주장할 정도로 구체화된 권리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환경권을 실질화해 개인이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주관적 권리’로 바꿔야 한다. ‘주관적 권리’로 인정되면 권리침해 발생 시 가해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도 긴장하고 사전예방 효과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

“여러 사회권 중 하나로 묶여 있는 환경권의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 환경권은 제31조 교육받을 권리, 제32조 근로의 권리 등에 이어서 제35조에 등장한다. 모든 기본권의 전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인데, 이를 위해서는 생존기반인 생태계가 유지될 최소한의 조건이 확보돼야 한다. 생존기반이 무너지면 재산권, 언론의 자유, 주거의 자유 등이 다 무슨 소용인가. 기후위기로 환경 리스크가 커졌는데, 과거 논의구조를 답습해 환경권을 사회권의 하나로 묶어놓는 건 말이 안 된다. 다른 한축으로 환경국가원리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헌법 기본원리에 민주주의 원리, 사회국가원리, 법치국가원리가 들어와 있다. 환경국가원리가 도입되면 국가에 환경 보호의 의무를 강하게 부여할 수 있다. 환경국가원리는 민주주의원리와 부딪힐 수도 있다. 생물다양성이 없어진다고 아무리 경고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식들 서울대 보내는 것에만 관심 있지 않나. 자식들이 살아갈 미래가 개, 고양이, 가축 몇마리 정도만 인간 곁에 남는, 끔찍한 세상이 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환경국가원리가 헌법의 기본원리가 되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아파트 가격만 쳐다보며 개발을 원해도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민주주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환경국가원리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헌법상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환경권 실질화’, ‘환경국가원리 도입’은 2018년에 개헌만 됐으면 새 헌법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보고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 Ⅲ>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후정의’를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2018년 개헌이 무산되고 환경헌법포럼이 마무리되면서 2019년부터 이 연구를 시작했다. 3년 동안 진행됐는데, 환경연구원에서도 이례적인 연구였다. 국제적인 기후정의운동을 국내 정책에 전략적으로 끌어들여보자는 생각이었다. 기후정의운동은 북반구 선진국이 초래한 기후위기로 남반구의 후진국이 피해를 본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국내적으로는 계층별·산업별·지역별로 피해 정도가 차이가 나고 개인적으로는 소득, 성별, 연령, 직업 등의 차이에 따라 피해의 규모나 빈도가 다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의 양극화와 불평등 현상의 증대는 기후정의의 필요성을 낳았다. 최근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기후정의에 근거해 기후위기 대응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기후위기 대응정책을 수립하면서 기후정의를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실현하기 위해 연구를 기획했다.”

-보고서에서 기후정의를 분배적·절차적·생산적·인정적 기후정의 4가지로 분류했다. 분배적 기후정의는 무엇인가.

“탄소 배출로 이익을 보는 쪽이 있고 피해를 보는 쪽이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들이 1차 피해를 본다면 이들을 생업으로 삼았던 농어민들이 2차 피해를 입는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해오던 일을 못 하고 피해를 본 이들에게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측되며 전환할 수 있는 다른 유사한 직종은 뭐가 있는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안 한다.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가해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바로 산업사회를 이끌어온 국가와 산업계다. 우리 모두 산업사회와 연관돼 있으니 과거를 따져 이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국제사회의 기후정의가 탄소 배출의 책임을 소급해 묻자는 것이긴 하지만, 국내 정책에서 과거를 따지는 건 실익이 없다. 앞으로가 문제다. 국가가 탄소 배출에 관한 기준점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는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면서 여전히 화석연료 쓰는 사업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고 산업의 날에는 고도성장에 이바지했다며 훈장까지 준다. 모순이다. 분배적 기후정의는 피해와 책임의 분배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절차적·생산적 기후정의는 무엇인가.

“절차적 기후정의는 정책수립 과정에 이해당사자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생산적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는 기존의 화석연료와 생산구조 전환과 관련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했고, 결정 과정에 국민의 참여는 없었다. 탄소중립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기본조건을 바꾸는 일이다. 국민이 스스로 결정해야 어렵더라도 그 과정의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 정부가 결정하고 산업계에서 의견을 내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정의롭지 못하다.”

한상운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환경권 개헌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한상운 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환경권 개헌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마지막에 제시한 인정적 기후정의는 새로운 미래비전으로 보인다.

“인정적 기후정의는 인간 이외의 비인간 생물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생명체적 동반자 지위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정적 기후정의의 핵심은 인간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너(비인간 생명체)를 내(인간)가 ‘인정’했을 때 이에 대한 나의 의무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의 활동을 돌아보고 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업사회에서 장려됐던 행동들이 규제된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적게 타야 하고, 육류소비를 감축해야 한다. 분배적·절차적·생산적·인정적 이 4가지 기후정의는 서로 탄탄하게 엮여 있어야 한다. 어느 한개라도 소홀하면 기후정의가 아니라 기후부정의에 빠진다.”

-인정적 기후정의는 법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봐야 한다. 오늘날의 법은 근대법에 근간한다. 근대법은 인간중심의 법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능을 했다. 인간중심의 법은 산업사회·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인간의 욕망과 궤를 같이하게 됐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원을 무한대로 개발했고, 기후위기라는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인간중심의 법이 인간을 갉아먹는 법으로 변했다. 근대법에서 출발한 지금의 법체제에 운명을 고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패러다임 변화가 쉽지는 않다. 비인간 생명체가 권리주체가 된다는 것은 근대법 이후, 인간 대 비인간이라는 이원론을 전제로 발달해온 법체계를 모두 깨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섣불리 도입했다가 근대법이 오히려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했듯, 비인간 생명체를 대변한다면서 오히려 공공연하게 자연을 착취하고 황폐화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패러다임 변화는 국민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자연이 법적 권리주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은 개발 여부를 결정할 때 비용편익분석을 한다. 대부분 비용보다 이익이 크다고 결론을 내리는 하나 마나 한 행정절차다. 비용 계산 시 생태계 훼손에 대한 가치평가는 거의 안 한다. 법원도 개발과 보존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이를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고 사업자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자연은 권리주체성이 없다’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있기 때문에 판사들도 전향적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젊은 판사들이 하급심에서 전향적으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상급심 가면 대부분 뒤집힌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10년이 지나면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기회가 없다. 사법부를 움직이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판례 중에 헌법위반인 재판을 취소할 수 있다. 판사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게 내가 내린 판결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법원은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등을 기준으로 이를 엄격하게 심사하게 된다. 자연이 권리주체임을 헌법에 명시하게 되면 개발이 지금보다 어려워지고 자본의 욕망실현을 완전히 분쇄할 수는 없어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만 해도 성공이다.”

-자연은 말을 못 하는데 법적 권리주체가 된다면 누가 자연을 대변하나.

“환경단체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민단체 원고적격 문제도 건너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단체에 원고적격을 주지 않고 있어 항상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찾아다녀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시민단체 원고적격을 대부분 도입했다. 다른 건 미국이나 독일 다 따라하려고 하면서 시민단체 원고적격 주는 건 안 따라한다. 자연이 법적 권리주체가 되면 그 문제도 해결된다.”

-기후위기에도 여전히 개발 논리가 앞서는 게 현실이다.

“국회에 가면 의원들이 환경과 관련해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하냐고 물어본다. 불필요한 일회용품 없애는 법을 만들라고 한다.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없애냐고 묻는다. 전환에 대한 정보를 주고 전환비용은 국가에서 대주면 된다. 지원만 제대로 해주면 그분들도 그 일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공급 쪽을 바꿔야 하는데 국민에게 일회용품 쓰지 말라며 수요만 건드리고 있다. 에너지는 수요관리가 필요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에 대해서는 국민 의식이 더 높다. 국민은 불편해도 수용한다. 공급을 건드리는 건 산업망을 바꾸는 것이고 그게 녹색전환이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개발 욕구를 비공식적으로 충족시켜주기 위해 안 하고 있다.”

-법이 개발 논리와 경제중심 사고를 바꿀 수 있을까.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법이 사회를 견인해야 한다.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산업문명 시스템과 디커플링하고 생태문명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 법은 그러한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조직법도 바꿔야 한다. 기후환경부를 만들고 이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 기후환경부가 국토부와 산업부를 통할하도록 해야 한다. 국토부는 규모를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도로 놓고 개발하면서 관성적으로 쓰던 예산 계속 쓰려고 할 것이다. 법이 바뀌면 사회구조가 바뀌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식, 경제중심 사고도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 환경과 관련해 좋은 법이 만들어졌던 때가 언제인 줄 아나? 대형사고가 있고 나서다. 환경 쪽 전문가들은 ‘이런 식이면 해법은 없다. 맨땅을 쳐야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치를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존가치에 연연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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