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관료에겐 규제가 권위…아무리 말 해도 안 바뀐다”

수원 | 김찬호 기자
2022.05.16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말하는 지방자치의 현실

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 3개월여 만에 치러지는 선거다. 일정이 붙어 있는 만큼 지방선거는 자연히 중앙정치 상황에 휘말려 있다. 양대 정당부터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전’으로 보고 필승전략을 준비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각 당의 의지를 잘 드러낸다.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한국의 지방선거는 선거구조를 개편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중앙정치 대리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한국의 ‘지방자치’ 역시 왜곡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중앙정치에서 입지가 약해진 인물’, ‘다음 대통령선거를 위한 디딤돌이 필요한 인물’이 행정 경험 없이도 출마하고 당선된다. 거쳐가는 자리에서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임기를 채우지 않고도 중앙정부에 좋은 자리가 생기면 옮기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치단체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한 지난 30여년의 역사가 이미 이런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대체 ‘한국에서 지방선거, 지방자치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3개월 전 대선과 똑같은 의미의 선거를 할까’. ‘왜 지방은 그토록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5월 3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일월도서관에서 염태영 전 수원시장을 만났다. 그는 2010년부터 약 12년 동안 수원시장을 지냈다. 최근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도 한발 멀어지게 됐다. 염 전 시장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성향은 잠시 접어두고 그가 12년 동안 직접 겪은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

-인터뷰 장소로 일월도서관을 지정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역에서 도서관 하나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 도서관 건설을 추진하며 공원과 연결된, 카페 같은 도서관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장부터 무수히 많은 규제를 어겨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페다.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개방공간으로 만들고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카페를 넣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무조건 최고가(價) 입찰을 진행해야 한다. 그 결과를 보라. 시민들이 도서관에 와서 음료를 사지 않고 밖에서 유명 브랜드 음료를 사서 들고 온다. 도서관 내부 카페는 적자가 나서 영업을 포기한다. 결국 다시 입찰이 진행되는 동안 카페는 문을 닫는다. 접근성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도서관은 책도 볼 수 있고, 카페도 갈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족단위 나들이객을 유치할 수 있는데 도무지 규제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일월도서관 내 카페는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도서관 관계자는 “다시 최고가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왜 이렇게 많나. 개선을 요구해봤나.

“중앙관료 입장에선 규제가 곧 직위이고, 권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 현장 상황은 모르면서 규제 조항만 쳐다보고 있다. 결국 지역 현실에 맞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려면 시장부터 위법을 해야 한다. 이를 도운 직원들도 전부 감사를 받고 징계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누가 선뜻 나서서 그런 일을 하겠나. 지방자치를 30여년 동안 했지만 비현실적 규제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중앙부처 사무관들을 지역 행정복지센터에서 1년만 순환근무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현실을 보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겉으로는 동의하면서 결국 지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일월도서관 / 우철훈 선임기자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일월도서관 / 우철훈 선임기자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규제개혁은 큰 쟁점이 안 되고 있는데.

“광역시장·도지사가 대권으로 가는 길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 현장 없는 선거가 됐다. 이렇게 가면 앞으로 지방자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중앙에서 정치하며 이름을 알리면 하루아침에 광역시·도의 단체장이 되는 구조 아닌가. 정당부터 지방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인식을 갖춰야 한다. 정당이 지역에서 인물을 길러낼 통로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만 본다. 이겨야 하니까 지역과 아무 관련이 없어도 일단 유명하면 투입하는 것이다.”

-자치단체장 업무가 지방에 대한 이해나 행정경험이 없어도 괜찮은 수준인가.

“각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을 보라. 화려하다. 대부분 지난 대선 때 연구용역을 맡겨 나온 것을 가져다 썼다. 지역의 구체적 문제도 모르고, 질문도 해본 적 없지만 이미 나온 공약을 들고 출마하는 것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공약은 많지만, 현장과 관계가 있는 건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문제가 될 거다. 지역의 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별 고민도 없이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고만 한다. 막상 정책을 집행할 때가 오면, ‘어 예산이 없네, 이건 좀 아깝네’ 하며 입장을 바꾼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이들을 지지하지 않나. 정치인이 광역시장, 도지사 등을 맡으면 일을 더 잘할 것이라는 이른바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는 듯한데….

“중앙정치나 중앙행정에서 역량을 입증했다는 게 감점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걸 대변할 수는 없다. 지방행정을 중앙행정식으로 해봐라. 정말 큰코다칠 거다. 중앙에서야 정책을 결정하고, 선언하고, 집행하면 되지만 지방행정은 모든 과정이 규제와 반발을 하나씩 넘어야 하는 종합예술과 같다. 게다가 지역정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정책입안부터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같은 경기도지만 시흥과 안산의 문제가 다르다. 안산에서 해결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수원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장에 출마한 사람 중에는 지역 문제보다 국가단위의 문제를 언급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운동을 이렇게 해서 당선이 되면 지역 시민들의 삶만 신경쓰기는 어렵지 않겠나.”

-유권자들이 지방자치에 대한 정치효능감이 떨어지니까 중앙정치라도 심판하자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정치효능감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지역민이 그들의 대리인을 대표자로 선출할 수 있다면 분명 정치효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현실은 그런 구조가 아니다. 정당이 공천권을 쥐고 중앙정치의 유불리를 따져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한 지역 자치단체장이 이름을 알리면 가장 먼저 어디서 견제하는지 아는가. 해당지역 국회의원들이다. 시장이 인기가 많아지면 다음 선거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같은 정당 소속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정당의 요직을 차지하고 자치단체장의 싹을 자르는 구조다. 특히 시장 한명, 국회의원 한명만 있는 지역구는 문제가 심각하다.”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지난 5월 3일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일월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지난 5월 3일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일월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자치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중앙정치와의 친밀도’인 것은 어떻게 보나.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30%가 안 되는 수준이다. 70%는 정부 예산을 가져와야 한다. 일부는 공모를 통해 예산을 받아야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중앙정부 정책에 지방정부 사업을 매칭시켜서 예산을 받는다. 마을 개선 사업 하나 하려 해도 정부의 거창한 토목사업이나 도시재생 사업에 매칭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예산이 없으니 각 지역만의 특색을 살린 사업은 꿈도 꾸기 어렵다. 결국 중앙정부와 친밀한 단체장을 뽑아 예산을 쉽게 받자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떤지 아는가. 지방에 한번 가보라. 한적한 시골 한복판에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고속도로 같은 길이 지난다. 마을을 갈라버린 도로는 중앙에서 예산을 따와 만들었다. 자치단체장의 성과로 포장한다. 이런 불필요한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낭비되는 돈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지방자치를 왜곡시키고 있다.”

-대안이 있나.

“중앙의 권한을 쪼개 현장에 나눠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며 100만 이상 인구를 보유한 도시는 특례시를 만들자는 안건이 논의됐다. 이날 광역시가 없는 도에 한해서는 인구 50만 이상의 거점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관광도시가 포함돼 있었다. 해당 시가 속한 도의 도지사가 이를 반대했다. 특례시가 생기면 권한이 줄어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인구 50만 이상 도시는 특례시 지정이 안 됐다. 광역시·도 단위의 단체장부터 권한을 쥐고 넘기려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경기도에 산재해 있다. 경기도 산하의 시에는 각종 도립시설이 있다. 이들 시설은 지역과 전혀 연결이 안 된다. 시 입장에서는 시설에 대한 권한이 도에 있다 보니 아이디어를 내서 활용 방안을 찾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막대한 사업비를 쓰고도 애물단지만 된다. 불필요한 규제, 권한 제한 등으로 기초단체장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다.”

-지방선거를 정치적 디딤돌로 생각하는 인물이 당선되면 권한 분산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대통령을 목표로 한 사람이 권한 분산을 하겠나.

“실제로 분권적·개혁적 시각을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이들은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도 특별히 없다. 유권자들이 이들을 견제해야 하는데 오랜 시간 중앙집권적 사고에 길들여지다 보니 이마저도 어렵다. 중앙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지 않으면 잘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방자치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기초체력이다. 내 삶의 조건들을 결정하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더 깊고, 긴 변화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수원 |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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