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올리고 전력시장 개방해야”

주영재 기자
2022.01.17

송배전망 건설·전력망 운영·전력 유통시장 모두 변화 필요

탄소중립을 위한 속도전이 시작됐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낮은 한국은 더 잰걸음을 해야 한다. 2020년 전 세계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6.3%인데 한국은 6.5%에 불과하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보면 2050년에는 필요 전력량의 57~71%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한다. 미래 전력 수요를 고려하면 연간 약 710~890TWh의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 절반을 태양광으로 채운다면 약 300GW의 태양광을 보급해야 한다. 매년 약 10GW씩 늘려야 하는데 최근 태양광 보급 속도의 2배에 달한다. 해상풍력은 2050년까지 100GW를 보급해야 한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송전망 / AP연합뉴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송전망 / AP연합뉴스

2025년 시점이면 국내에서도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와 비교해도 경제성을 갖게 된다. 이미 저위도 지역에선 태양광이 가장 저렴한 발전원이 되면서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간 보급을 막았던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중앙집중식으로 공급하던 기존의 전력시장이 분산전원인 재생에너지가 주요 발전원이 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다. 송배전망 건설과 전력망 운영, 전력 유통시장에서 모두 변화가 불가피한 시대가 도래했다.

에너지 전환 위해 전기료 ‘해방’시켜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선로와 변전소를 거쳐 배전선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그 흐름을 전력계통이라 하는데 발전설비, 송·변전설비, 배전 및 고객 설비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전력계통을 ‘그리드’로 부르기도 한다. 전력계통의 주요 행위자는 한전과 전력거래소이다. 한전은 송·변전사업자로 설비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고, 전력거래소는 전력계통을 분석하고, 전력망을 통해 전력거래를 책임지는 운영자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안정적 전력계통 운영을 위한 ‘전력계통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박기영 산업부 차관은 “2030 국가감축목표(NDC) 이행 및 2050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전원은 더욱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지만 “우리 전력계통은 향후 확대될 재생에너지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과제는 복합적이다. 우리나라는 인근 국가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는 유럽과 달리 잉여전력을 거래할 수 없는 ‘계통섬’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주요 발전원이 되면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받아 발전량이 변동할 때 안정성 문제가 커진다. 유럽 여러 나라는 이때 전력을 주고받으면서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 일본 등을 전력망으로 잇는 ‘동북아 그리드’가 오래전부터 논의돼왔지만 정치 갈등 탓에 민간 차원의 연구만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값싼 전기료 탓에 국내외 IT 기업들이 대도시권에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지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해질 조짐이다. 확대가 예상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호남(6.7GW·40.6%)과 영남(3.6GW·21.8%)에 집중돼 수도권으로 계통을 연계하는 문제가 더 불거질 전망이다. 전력망 보강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전력은 생산과 소비가 일치해야 한다. 소비전력보다 공급전력이 적을 경우 정전이 발생하고, 공급전력이 소비전력보다 많으면 전력 난조 현상이 발생한다. 전력 난조 현상이 일어나면 배전 설비가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등 전력 인프라의 대규모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초과 공급을 흡수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보하면 도움이 되지만 전력망을 무한정 보강할 순 없으니 발전량을 예측해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력시장 감시할 독립기구 필요

발전소 출력예측에 필요한 디지털·인공지능 기술도 확보해야 하지만 가격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수급 조절은 가격의 영향을 받는데 지금 구조로는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터리에 저장해 차후에 꺼내 쓰거나, 수소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섹터 커플링, 수요가 부족한 시간대에 수요를 늘릴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플러스 DR’ 등을 실시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력 수급에 맞춰 시장가격이 결정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적 배려와 물가관리 명목으로 전기료를 낮게 유지하면서 수익성이 나지 않아 여러 사업 모델과 기술의 진입이 늦어지고 있다. 태양광발전만 해도 개인 간 거래가 안 되는 건 싼 전기를 한전에서 받는데 굳이 이웃에게서 비싼 태양광발전 전기를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면서 “친환경 기술이 시장성을 확보하려면 전기요금이 높아져야 하고, 그래야 에너지 관련 신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도 “가격 신호를 통한 에너지 수요 조절과 효율화로 지금의 전력 설비를 잘 운영하는 기술이 중요하다”면서 “전력망을 개량하고 백업 전원을 다양하게 확보하면서 설비량보다 운영의 기술, 기술보다는 정치와 경제의 전환으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에는 전기를 다른 산업을 보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해 무조건 싸게 공급하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전기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로서 에너지 산업 자체가 커져야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쓸 수 있게 가격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시장 개방도 필요하다. 전영환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전력시장을 독점체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면서 “석유도 경쟁체제로 바꿔 매일 가격이 바뀌고, 통신사도 민영화되면서 인터넷과 통신망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됐던 것처럼 전력산업도 경쟁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은 잉여전기를 전기차에 저장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해 ) 수소로 바꾼 후 전력이 부족할 때 전력화하려는 사업자가 있어도 전기를 팔 수 없다”면서 “한전을 민영화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한전이 전력 판매를 독점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전력시장을 다루려면 지금보다 전문성 있는 독립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규제기관이 전문성 부족으로 오히려 규제 대상에 포획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정도의 위상을 갖추고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수 위원은 “발전설비 인허가부터 시장 감시, 분쟁조정, 전기요금 규제 등 규제와 관련한 건 독립해 다루는 게 맞고 에너지정책은 정부에서 수립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기재부가 기후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아무리 제도를 만들어도 예산 집행이 안 된다”면서 “기후에너지부를 만들자는 말도 나오지만 청와대 안에 경제수석만이 아니라 기후수석도 만들어야 하고, 모든 부처가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목표로 삼도록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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