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기술경쟁력은 수익성에서 갈린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
2021.12.13

핵심기술을 잘 갖춘 기업은 충전·에너지·자율주행의 세가지 오프라인 플랫폼 주도할 듯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한 전기차는 연비 규제를 맞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만들수록 손해가 나는 제품이지만, 연비 규제를 맞추기 위해 할 수 없이 생산해야 하는 제품이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그러나 10년이 지나 테슬라가 주도하고 중국 기술 업체들이 거세게 도전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시나리오 하에 최종 에너지 수요의 중심축은 석유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로 전환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글로벌 최종 에너지 수요에서 전기에너지 비중은 2020년 20%에서, 2030년 26%, 2050년에는 50%로 성장한다.

전기차는 향후 에너지의 중심인 전기로 움직인다.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는 움직이는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장치)로 볼 수도 있다. ESS는 가전제품, 집, 나아가서는 거주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분산 전력 공급원이 될 수도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하드웨어적으로는 훨씬 더 간단한 제품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기술은 훨씬 더 복잡하고 고도화되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기술은 배터리 관리기술(BMS), 빅데이터를 잘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인공지능(AI), 반도체다.

테슬라 리드 속 폭스바겐 등 추격전

전기차의 핵심기술을 잘 갖춘 기업은 향후 충전 플랫폼, 에너지 플랫폼, 자율주행 플랫폼의 세가지 오프라인 플랫폼을 주도하게 될 전망이다. 세가지 플랫폼 모두에서 리더는 테슬라이다. 테슬라는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술, 반도체 설계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테슬라와 성장 전략이 유사한 업체는 폭스바겐(VW)이다. 폭스바겐은 테슬라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기업에서는 비야디(BYD)가 배터리 생산이 내재화돼 있는 만큼 에너지 플랫폼 확장에 유리하다.

에너지 플랫폼 시장 규모는 자동차 시장(연간 2조달러) 대비 50% 수준으로 성장이 예상되며,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 규모는 현재 성장성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각각의 플랫폼은 데이터 판매 비즈니스도 포함하고 있어 전기차 핵심기술을 갖춘 기업의 가치는 글로벌 시가총액 기준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커질 전망이다.

한편 전기차와 연결된 오프라인 플랫폼은 국가와 지역 등의 물리적 한계, 타국 정부의 견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이커머스, 인터넷, SNS 생태계와는 다르게 독과점이 불가능하다. 미국, 중국, 유럽 권역별로 플랫폼 승자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전기차의 기술경쟁력은 시장점유율보다는 수익성 격차로 나타날 전망이다.

빅데이터 기술의 끝판왕은 AI다. 인간의 뇌와 유사하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딥러닝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레벨4 이상의 로보택시(Robo-taxi) 서비스는 사회적 인프라와 규제,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 요원하다. 그럼에도 테슬라를 비롯한 많은 완성차 업체는 자율주행 구독 모델, 차량 구독 모델 도입으로 서비스 비즈니스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에서 만든 제네시스 전기차전용모델 GV60.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대차에서 만든 제네시스 전기차전용모델 GV60.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즈니스 핵심은 소유 아닌 공유 개념

모빌리티 산업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차량을 더 이상 ‘소유’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량을 ‘공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며 이용하는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 TaaS(Transport as a Service), MaaS(Mobility as a Service)의 한가지 수단으로 간주한다. TaaS나 MaaS의 최종 목적지는 로보택시지만, 아직까지 인프라와 기술적 한계로 인해 도달이 요원하다.

테슬라가 8월 초 선보인 완전자율주행(FSD) 구독 모델은 TaaS의 비즈니스 모델의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과 구매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슬라가 2022년에 FSD 시내 자율주행을 상용화하면, 자율주행 레벨3의 기술을 물류 트럭이나 승용차에서 필요한 시간에만 사용할 수도 있다. 로보택시 상용화전,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실제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먼저 결합할 수 있는 모델로 세미 트럭을 꼽은 적이 있다. 승용차의 경우 FSD를 구독해보고, 효용성을 느끼는 소비자는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테슬라 외에도 이미 많은 업체가 구독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차량 구독 모델의 경우에는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해당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차종을 골라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개별 소비자보다는 기업 고객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전기차 기술경쟁력은 수익성에서 갈린다

아직까지는 자율주행 관련 구독 모델은 레벨2의 자율주행을 구독 모델로 사용하고 있다. 테슬라 FSD 구독 모델을 비롯해 GM, 포드 북미 업체와 독일 업체는 자율주행 구독 모델을 론칭했다. 로보택시가 상용화되기 전이지만, 많은 완성차 업체는 구독 모델을 도입해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서비스모델의 또 다른 사례는 보험사업이다. 현재 차량 보험료 산정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나이, 성별, 직업, 과거 사고 이력 등으로 이를 통해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기는 어렵다. 테슬라는 지난 9월 27일 FSD 베타버전 배포를 확대하기 위해 안전 점수라는 기준을 발표한 바 있다. 안전 점수는 1000마일당 앞차 충돌 경고 횟수, 오토파일럿 해제 빈도, 차간 거리, 브레이크 제동 강도, 우회전 및 좌회전 속도 다섯가지 항목을 통해 산출된다. 이를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야 FSD 베타버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FSD 베타버전 배포 확대는 시내 자율주행 기능 상용화를 위한 데이터 축적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인별 보험료 책정에 필요한 자료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주에서 보험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개인별 보험료 책정으로 다른 보험사 대비 20~30% 보험료가 낮아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2022년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8280만대(전년 대비 7.4% 증가)가 예상된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완화에 따른 생산 정상화로 수요 회복을 예상하지만, 2019년(8900만대) 정도의 수요 회복은 2023년에 나타날 전망이다.

전기차 기술경쟁력은 수익성에서 갈린다

오토뉴스(Autonews)에 따르면 2021년에 칩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업체가 발표한 생산 감소는 900만대로, 이는 2019년 자동차 수요대비 10%에 해당한다. 지역적으로는 북미와 유럽에 각각 15%로 타격이 가장 크다. 다만 우리는 중국은 칩 부족이 아닌 중국 정부의 약한 재정 부양책, 부동산 이슈 등으로 수요가 부진하다고 판단한다. 중국의 수요 부진은 2022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은 공급 부족으로 딜러 재고가 1개월 미만을 기록 중으로, 공급 확대에 따른 뚜렷한 수요 회복이 예상된다.

기타 신흥시장은 원자재 가격 강세, 경기 회복, 5~6년간 누적된 이연수요(Pent-up Demand·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억눌려온 수요)로 향후 2~3년간 수요 고성장이 예상된다. 기타 신흥시장의 수요 회복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판매 대수 증가를 견인할 전망이다. 반면 중국 지역의 점유율이 큰 폭스바겐, GM, 일본업체는 중국 수요 부진과 전기차 시장 재편에 따라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경쟁사들은 향후 2~3년간 중국과 전기차 시장에 리소스를 쏟아부으면서 기타 신흥시장과 유럽에 대한 투자는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시장에서 경쟁사 철수로 현대차·기아의 과점 위치와 수익성 향상이 예상된다.

현대차·기아, 비전과 파트너십이 관건

현대차·기아는 올해도 유연한 생산시스템으로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이에 따라 3분기 누적 글로벌 판매 대수 기준으로 글로벌 톱3에 등극했다. 그럼에도 주가는 지지부진했는데, 이는 전기차 전략의 열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차·기아는 내년 1분기에 CEO 투자의 날(Investor day)에서 업그레이드된 전기차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표되는 전기차 비전의 구체성과 강력한 파트너십의 발표 여부에 따라 기업가치에 부여되는 멀티플이 달라질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비전에서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장기 차량 판매 목표 상향이 필요하다. 2025년 전기차 100만대와 2030년 전기차 판매비중 30%는 경쟁사 대비 낮은 수준이다. 둘째, 배터리 조달 계획이 필요하다. 2020년 이후 발표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전략에 배터리 조달 계획이 포함되지 않은 업체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셋째, 미국시장에 전기차 현지생산 및 충전네트워크 확충 계획 등 로드맵 제시가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2025년까지 74억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 구체적 실행방안이 제시된 바가 없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에서의 열위를 미국에서 만회해야 한다. 넷째, 전기차에 FOT(Firmware OTA·무선 통신으로 차량의 하드웨어 성능까지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의 빠른 전개와 반도체 파트너사가 필요하다. 모빌리티 산업에서 완전자율주행이 최종 목표이지만, 모든 차량에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는 것은 아직 시점을 전망할 수 없을 정도로 요원하다. 그러나 완전자율주행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데이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원가 통제, 차량 잔존 가치 향상,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 금융 및 보험사업 등 활용도는 매우 크다.

<임은영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