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몰아내는 ‘정글보수’의 등장

송윤경 기자
2021.06.28

지난 6월 11일 국민의힘 당대표에 36세 청년, 이준석이 선출됐다. 지난 한달간 그의 기세는 매서웠다. 스스로 “호랑이 등에 탔다”(5월 31일·KBS 최강시사 인터뷰)고 말할 정도였다.

당대표가 된 뒤 그의 움직임은 낱낱이 ‘뉴스’가 되고 있다. 따릉이 출근, 백신 접종, SNS의 구두 사진 등이 미디어에 중계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열기는 시간이 흐르면 식는다. 냉정을 되찾았을 때 우리가 마주할 ‘정치인 이준석’은 누구일까.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자가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자가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10년간 정치평론가로서 주로 활동해온 이준석은 ‘때릴 것이 있는’ 상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모습이 상이하다. 당내 기득권 앞에선 과거 그들의 과오를 통렬히 비판하며 합리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무대에 홀로 서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논할 때는 사뭇 다르다. 자유를 강조하는 그는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며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다”(저서 <공정한 경쟁>)라고 말한다. 과감한 주장이지만, 이런 사회를 지향해야 할 이유로는 선진국인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린다.

지금 한국사회가 환호하는 이준석은 이중 어떤 얼굴의 이준석인가. 이준석 열풍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수구세력을 제치다 “국가가 통치불능의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그 시점에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이준석, 6월 4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이준석 대표의 ‘대구 연설’은 그의 정치인생에 기록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는 자신을 영입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반면 경쟁자였던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존 F. 케네디 공항을 보며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붙여 신속히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박정희 향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보수 중진과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장면이었다.

“대구 연설이 (승기를 잡는) 기점이었다”(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정치학 박사)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 연구위원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이제까지 핵심 지지층의 생각과 정면으로 싸웠던 정치인,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정치인은 없다시피 했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못 보여준 게 이런 것이다. 민심과 당심이 괴리돼 있으면 당심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흐름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 연설’에서도 이준석 대표는 “저에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 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도 없다”(5월 31일)고 했다. 소속 의원(자유한국당)들의 입에서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김순례) 등의 망언이 쏟아진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런 발언을 두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라고 말해 논란을 키운 바 있다.

보수야당은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에 이르는 4년간 열성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와 확실하게 결별하지 못했다. 상대를 ‘빨갱이’, ‘사회주의자’로 몰고 독재정권을 추앙하는 식의 반공주의는 시민에게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반공은 여전히 ‘국민의힘’ 하면 연상되는 낡은 이념 중 하나였다.

보수의 강렬한 정권심판 열망은 수구 색채가 없는 이준석을 선택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당선은 “반공주의가 시효를 다했음을 상징한다”(김규항 작가)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김규항 작가는 “‘반공파시즘’의 쇠락은 이준석이 해낸 일이라기보다는, 다른 기성 보수정치인이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이준석이 수혜자가 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권일 사회비평가 역시 이 대표가 과거 독재·보수정권의 잘못에 “빚을 진 것이 없어 반사이익을 얻은 사례”라고 평했다.

이준석의 능력주의란 이준석 당대표는 ‘반공·수구’를 걷어낸 자리에 어떤 정치철학을 채울까. 그는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를 강조해왔고, 안티 페미니즘 성격의 발언을 해왔다. 그 배경엔 이른바 ‘이남자(20대 남자)’를 대변하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놓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 김기남 기자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놓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 김기남 기자

“20대 남자, 자네들은 말이지….” 지난 4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뒤 이 대표가 SNS에 올린 문구다. 이 대표는 이때의 선거를 “20대 남성을 제대로 공략했고 그들도 화답한 케이스”로 평하면서 20대 남성이 분노한 이유를 묻는 질문엔 “길 가는 20대 남성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것”(4월 24일 동아일보 인터뷰)이라고 했다. 그는 ‘오세훈 캠프’에서 뉴미디어 본부장을 지냈다.

4·7 보궐선거가 끝난 후 이준석의 반페미니즘적 발언은 점차 추상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당대표 선거 즈음부터는 ‘능력주의’를 더 강조했다. 젠더 이슈를 두고는 ‘여성과 남성이 공정하게 겨루자’는 원론을 반복하며 ‘여성할당제 폐지’에 집중했다. 능력주의론이 젠더 이슈를 흡수·통합한 모양새다.

이준석의 ‘능력주의’와 ‘공정론’은 간단하다. 주어진 룰에 따라 능력으로 경쟁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사교육이 발달한 목동에서 중학교에 다닌 그는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말한다.

이준석 대표는 나아가 ‘미국식 자유’를 지향하자며 이렇게 단언한다. “미국은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권에선 복지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구현해보려는 생각이 없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이토록 거침없이 긍정하는 정치인은 유례가 없다.

모든 주장엔 사회적 맥락이 있다. 공백이 많아 정치철학이라 이름 붙이기 힘든 이준석의 ‘생각’ 역시 그렇다. 그의 능력주의는 ‘조국 사태’의 반사에 가깝다.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심 재판에서 자녀의 허위 스펙 사안으로 유죄를 받았다. 사람을 줄 세우는 능력주의 폐해를 고민하자는 진보 의제는 ‘조국 사태’로 빛이 바래버렸다. ‘차라리 시험점수로 줄 세워달라’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이준석은 이런 목소리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조국의 시간’이 이준석 열풍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19년 6월 출간한 <공정한 경쟁>의 표지 / 나무옆의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19년 6월 출간한 <공정한 경쟁>의 표지 / 나무옆의자

청년 다수가 지지한다? 이준석 대표는 “자녀의 설득으로 찍었다는 분을 많이 만났다”(6월 14일 KBS 열린토론)며 자신이 청년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다고 자신한다. 다만 서울시장 선거 때와 달리 자신의 지지층을 ‘20대 남자’가 아닌 ‘2030세대’ ‘청년’으로 칭하고 있다.

실제로 이준석 대표가 선거 초반에 청년 지지를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2일의 100% 전화면접 여론조사는 ‘전폭적 지지’라는 표현엔 함축할 수 없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누가 낫냐’는 질문에 20대 응답자 29%가 이준석을 꼽았다. ‘없다’ 혹은 ‘무응답’을 택한 20대 응답자는 54%였다. 오히려 30대(38%), 40대(40%), 50대(41%), 60대(41%)의 이준석 지지율이 더 높았다(케이스탯리서치·한국리서치, 만 18세 이상 1008명, 응답률 28.4%).

박권일 평론가는 “이준석이 청년들로부터 받는 지지를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는 면밀함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그는 “20대 남성 중에 반페미니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집단이 있고 이들의 지지가 일종의 ‘씨드’ 역할을 해 눈덩이 효과가 나타났을 수 있다”면서 “그렇다고 청년 남성 대다수가, 나아가 청년 전반이 이준석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면 판단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도 “경제적으로는 중위권으로, 부동산이나 코인 투기를 해야만 고소득층으로 넘어갈 수 있으며,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한, 청년 내부의 남성 위주 인구집단이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들을 잘 이해하고 이들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짚었다. 즉 이준석이 대변하고자 하는 청년은 특정 계층에 한정돼 있다. 고 이선호씨와 같이 산재 사망사고를 당하는 청년은 “이준석에게는 아예 보이지 않을 것”(김학준·사회학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조맹’ 이준석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젊은 세대는 계층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조사가 있다 (중략) 문제를 자기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과도한 자기탓을 멈추고 불평등한 구조를 바라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을 키워 경쟁하면 된다’는 자기계발론에 가까운 얘기를 하고 있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 역시 그렇다. 그는 남녀의 공정경쟁을 얘기하지만, 이미 성차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얘기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통계를 얘기해도, 9%의 남성 피해자가 있지 않느냐고 답하는”(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식이다. 한마디로 그는 불평등·차별의 구조를 아예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제1야당 대표가 된 그가 이런 인식을 유지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준석 대표가 기성세대의 정치문법을 완전히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며 높이 평가하는 윤평중 교수도 그의 ‘정글 자본주의’에는 우려를 표한다. 윤 교수는 “이제는 당대표가 됐기 때문에 도전자로서 특정 그룹에 호소하는 폐쇄적 얘기를 계속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감각이 있어 빠르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당대표의 임기는 2년. 대선까지는 약 1년이 남았다. 민주화 이후 첫 30대 당수는 어떤 정치를 보여줄까.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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