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유니온과 녹색병원 협업으로 ‘타투이스트 감염관리’ 만들어
지난해 11월 <타투이스트 감염관리>라는 책자가 나왔다. 그간 한국에는 타투 작업과 관련된 감염·위생 지침이 없었다. 반영구 화장을 포함한 타투 경험자 1300만명과 2만여명에 이르는 작업자들이 방치돼 있었다는 방증이다. 지침을 만든 주체는 정부가 아닌 타투유니온과 녹색병원이다. 왜 이들은 지침 마련에 나섰을까.
타투이스트 도준 작가는 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작업실로부터 ‘게스트 작업자’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해당 작업실은 도준 작가에게 감염·위생에 관한 온라인 교육을 이수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 이수증이 있어야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 자격증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외 초청을 받을 정도의 타투이스트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
그 전까지 그가 받았던 교육은 ‘알음알음’이었다. 도준 작가만이 아니다. 작업자 대부분이 해외에서 작업 경험이 있는 스승이나 동료로부터 감염·위생 교육을 받아왔다. 한국에서는 타투가 ‘무면허 의료’로 규정된 탓에 공식적인 교육이 마련될 여건이 안 됐고 총대를 메고 나설 사람도 없었다.
친구로부터 타투와 위생 교육을 배운 타투이스트 A씨는 “안 해본 부분에 타투를 할 때는 무조건 경험자들에게 물어본다. 이런 부위에 타투를 해도 괜찮은지, 이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 가르쳐주는 사람도 자기 경험 안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나 특정 단체가 진심으로 소비자 안전이 걱정돼 타투를 의료행위라 주장했다면 이미 (타투) 문화를 소비하는 1300만 소비자를 위한 최소한의 규정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국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해왔습니다. 이제 소비자와 작업자 안전을 우리 스스로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타투유니온 지회장인 김도윤 작가는 지침을 마련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도 권고
전문적인 감염·위생 지침이 나오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녹색병원 측에선 ‘결단’을 내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타투 합법화에 반대해왔다. 비의료인에게 문신을 허용할 경우, 국민의 건강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주장을 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이 타투유니온의 제안을 받고 “병원 이름이 안 나가고 도울 수는 없을까”를 고민한 이유다.
임상혁 원장은 “그러다가 안전한 타투를 하면 작업자·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자! 욕먹지 뭐. 그렇게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지침을 만들기 위해 녹색병원 직원이 직접 타투를 받았고, 원장을 비롯한 녹색병원 의료진들이 이 과정을 지켜봤다.
구체적인 지침 내용을 두고는 토론이 이어졌다. 다수의 타투이스트들이 작업실과 작업 과정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수술실만큼의 ‘위생 상태’일 수는 없다. 가령 작업자들은 치과에서 사용하는 천이나 일회용 패드 위에 작업도구를 올려두는데 이는 깨끗하지만 위생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작업자들이 끼는 일회용 라텍스 장갑도 깨끗하지만 멸균 상태는 아니다.
도준 작가는 지난 1년 반 동안 의료진이 알려주는 기준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생수는 멸균 증류수로 바꾸고 일회용 라텍스 장갑은 멸균 장갑으로, 일회용 작업 패드는 멸균포로 바꿨다. 다만 조명을 만질 때마다 장갑을 갈아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조명을 만질 때마다 멸균포를 사용하고 버리는 것으로 접점을 찾았다. 피부에 밑그림을 그리는 전사(轉寫)작업은 현재의 기술·장비로는 멸균이 불가능해 밑그림 주변 피부를 최대한 넓게 소독한다.
타투유니온과 녹색병원 모두 이렇게 나온 지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외 지침은 의료진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라 작업 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도준 작가는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는 검사를 받는 장소만 신경 쓰는 사례가 있지만, 우리 지침은 현장에서 매번 지킬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지침을 기반으로 매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작업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타투이스트 서퍼보이는 “무조건 일회용품을 사용한다는 큰 틀은 알고 있었지만, 장갑을 끼고 작업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등의 디테일은 몰랐다”며 “이런 디테일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 알려주니까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킬 수 있는 작업자 의견 반영
타투이스트 플라워는 “멸균 제품을 뜯자마자 손님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 손님 만족도도 높고 소독 없이 바로 멸균 제품을 뜯어 사용하니까 오히려 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침을 지켰더니 손님들의 염증 반응이 이전보다 준 것 같다는 작업자도 있다.
감염·위생지침은 작업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B형간염이나 C형간염 등 혈액 매개 감염은 고객에서 고객에게 옮겨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작업 중간이나 작업 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고객 피부를 찌른 바늘에 작업자가 찔리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지침에는 ▲작업 전에 고객에게 혈액 질환이나 바이러스가 있는지를 꼭 물어볼 것 ▲어떻게 하면 찔리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찔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세척을 하고 소독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내용이 세세하게 담겼다.
이제 남은 것은 지침을 더 많이 알리는 것. 그리고 지침을 현장에서 잘 지키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이다. 타투가 합법인 해외에서는 정부가 감염·위생 지침에 대한 관리감독을 한다. 가령 영국에서 타투 작업실은 매년 보건당국의 검사를 받아야 하고, 호주 역시 위생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작업실을 운영할 수 없다. 임상혁 원장은 “타투를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국가가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문신 시술 실태조사 및 안전 관리 방안 마련’ 보고서(2019)에서 “문신 및 반영구 시술이 상당히 대중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공중보건위생상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련한 법을 제정해 제도적으로 시술을 허용하되 시술의 안전을 담보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만든 지침은 아니지만 이제 소비자는 더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타투 받을 계획이 있는가. 타투유니온과 녹색병원이 함께 제작한 ‘타투이스트 감염관리’를 따르는 작업실인지를 확인해보자. 타투 시술을 받기 전엔 소비자가 참고할 수 있는 ‘타투 스튜디오를 위한 위생 가이드’ 팸플릿도 챙겨보자. 타투이스트가 건너뛴 지침이 있다면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다. 김도윤 작가는 “그게 고객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작업자들을 위한 것이고, 결국은 타투문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늬·송윤경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