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지방의회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백철·이하늬 기자
2018.02.27

국회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 불신은 여전한데도 정치개혁에 대한 국회의 결단은 지지부진하다. 국회 개혁이 더디다면 역으로 지방의회가 바뀌면 중앙정치 개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지방의회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1월 15일, 청와대 국민청원란에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2월 9일까지 1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참여했다. 청원자는 “최저시급 인상에 반대하던 의원들부터 최저시급으로 책정해달라”며 “나랏일 제대로 하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철밥통 그들도 이제는 최저시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촛불집회와 이어진 정권교체 이후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국회의 구성에 큰 불만을 나타냈다. 여론조사에서 40~50%의 지지율을 기록한 더불어민주당과 10~20%대에 머무른 자유한국당이 비슷한 국회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회 선진화법에 의해 정부와 여당이 강조했던 사회개혁과 적폐청산 등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의 민심과 정치구조를 일치시키기 위한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1월 31일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 특위(이하 헌정특위)에서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촛불혁명으로 새시대를 연 국민들의 열망은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선거연령 하향을 주장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에서도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방식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총선 때도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 등 야당은 총선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총선 선거제도 개혁은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직접 연관된 만큼 제도개혁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지방선거제도부터 바뀐다면 2020년 총선 선거제도 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정치개혁공동행동을 구성하고 광역의회 선거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기초의회 선거에서의 중대선거구제 확대(2인 선거구 축소, 3~4인 선거구 확대), 지역정당제도 도입, 지자체장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1월 18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외벽에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영민 기자

1월 18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외벽에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영민 기자

시민단체가 요구한 선거제도 물 건너가

현재 국회 헌정특위는 공직선거법 개정 등 지방선거제도 개혁 및 광역의원 확정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월 31일 헌정특위 회의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상호 모순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주장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끈질긴 반대가 효과를 본 것인지 6월 지방선거에서 민심과 일치하는 선거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지난 2월 5일 정세균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3당 회동이 끝난 후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광역의원 선거에서 비례성을 강화하는 문제 등은 헌정특위에서 더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지방선거) 적용은 어렵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결국 ‘민심과 선거결과의 불일치’를 지켜낸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왜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에 대해 반대할까. 자유한국당이 초강세인 영남지역의 소수파 지방의원들은 자유한국당이 현행 선거제도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도지사를 지낸 경상남도의 경우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59%의 정당득표로 92%의 광역의회 의석을 가져가기도 했다. 경남에서 재선 광역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영국 경남도의원(정의당)은 경남도의회가 집행부를 감시·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집행부를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같은 도의원인 제가 집행부를 공격하면 오히려 자유한국당 도의원들이 저를 공격하고 일방적으로 집행부의 입장만 옹호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여 도의원은 특정정당 일색으로 구성된 도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지 못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2015년 하반기에 있었던 경남도의회의 경남교육청 행정사무조사를 꼽았다. 형식적으로는 교육청에 대한 도의회의 조사였지만 사실상 경남도의 ‘청부조사’에 가까웠다는 게 여 도의원의 주장이다. 여 도의원은 “무상급식이 한참 쟁점이던 시점에 도의회의 특별위원회가 교육청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때 홍준표 당시 도지사가 임명했던 감사관실 직원들이 보조인력으로 도의회 특위에 파견됐다”며 “40%가 넘는 도민들이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이들의 뜻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의석 구성이 되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지방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집행부를 상대로 한 공식 질문(도정질문, 시정질문 등), 국회 국정감사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행정사무감사, 집행부의 예산안 심의 등을 통해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다. 또한 조례 제정을 통해 집행부의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정당 일색인 지금의 상황에서는 선거로 부여된 이런 권위가 무색할 정도다.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민심을 얻기보다는 국회의원, 단체장 등 자신들의 공천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4년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검정 삼거리에 후보들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 정지윤 기자

2014년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검정 삼거리에 후보들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 정지윤 기자

한국당 반대한 40%의 도민 목소리 외면

장태수 대구 서구의원(정의당)은 “대구 같은 경우 기초의원에 당선되려면 무엇보다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당선된 분들은 조례 제정 등 제도적인 것보다 눈앞의 민원 해결에 더 집중한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의회는 12명의 구의원 중 10명이 자유한국당이며, 민주당과 정의당이 각각 1석을 갖고 있다.

장 구의원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난 3년 반 동안 본회의장에서 구정질문을 14번 했고, 조례 대표발의를 23건 했다. 그런데 다른 의원들은 1년간 평균 조례 발의건수가 1건을 조금 넘고, 구정질문은 아예 하지 않은 의원들도 많다”며 “한 회기 동안 구정질의를 저 혼자 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장 구의원은 “본회의장에서 구정질문을 하면 공무원들이 무척 불편해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구의원의 역할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려면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저 외에는 질문하는 다른 의원도 없으니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저라도 구정질문을 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당 소속 경북 구미시의원을 지낸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소수나마 지방의회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면 지자체의 일방적인 행정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구미시의 낙동강 골프장 백지화 사례를 소개했다. 2012년 구미시는 4대강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의 낙동강변에 골프장, 수상비행장 등의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공원과 오토캠핑장도 계획의 일부에 포함됐다. 당시 김 평론가는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척 보기에도 공원은 끼워넣기용”이라며 “낙동강 보 유실로 5일간 단수사태까지 터졌으나 구미시는 강변 난개발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평론가 등 소수 진보성향 의원들이 꾸준히 집행부에 문제제기를 한 결과 구미시의회의 절대다수였던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의 일부도 골프장 반대에 동참했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구미시민의 80%가 낙동강 골프장 계획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구미시는 골프장 계획을 백지화했다.

김 평론가는 “의회의 견제·감시기능은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의원들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사업도 한 명의 문제제기로 언론에 실릴 수 있다”며 “보수정당 의원이라고 해도 의원마다 성향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명의 문제제기가 도미노 효과처럼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현행 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 지방선거처럼 지역에 따라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모습이 재현될 가능성도 높다. 지난해 12월에 확정되었어야 할 지방선거 선거구 확정이 2월이 되도록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직선거법 개정논의를 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시민사회에서는 공직선거법과 별개로 특별법을 통해 선거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세종시와 제주시에서만큼이라도 민심과 일치하는 선거제도가 도입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주도와 세종시 광역의원 선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낸 바 있다. 현재 이 법안도 국회 헌정특위의 안건으로 올라갔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제주도, 세종시에서라도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런던시의 사례를 들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없어졌던 런던 시장과 시의원 직선제가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의 집권기인 2000년에 부활했다. 부활한 시의회는 소선거구제가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시의원들을 선출했다. 일부 지역이라도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가 검증된다면 전국적인 제도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하 공동대표의 설명이다.

또한 하 공동대표는 지방의회가 바뀌면 그것이 역으로 중앙정치 개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지역구에서 이겨야 지방선거를 이기니까 개혁정당도 득표력만 있는 사람이라면 개혁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천을 줘 왔다”며 “이길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지역 토호들이 지역정치에 많이 들어왔다. 선거제도가 바뀐다면 인물보다 정당 지지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당에서도 공천방식을 개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10분만에 정회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10분만에 정회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지방선거에서 인물보다 정책과 정당을 보는 방향으로 시민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2014년 발간한 ‘제6회 동시지방선거에 관한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당시 두 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정책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비율은 33~40%, 인물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응답은 31~37%였다. 3회 지방선거(2002년)에는 인물을 보고 후보를 뽑았다는 비율이 59~65%였고, 정책은 12~1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게다가 나이가 젊을수록 정책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지방선거는 인물 중심 선거’라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한다는 비율도 2002년 7~8%에서 2014년 14~15%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편 6·13 지방선거와 함께 추진될 예정인 개헌과 맞물려 지방의회의 역할도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의 개헌 논의에서 가장 이견이 적었던 부분이 지방분권이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논의됐던대로 헌법이 고쳐진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정부’가 되어 자체적으로 과세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 외에도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조례가 아닌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되는 등 자율성이 높아진다.

특정 정당의 ‘싹쓸이’ 재현 가능성

신기현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분권이 강조되는 때에 지방의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20년 이상 지방자치가 실현된 만큼, 국회-광역의회-기초의회의 수직적인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지방자치가 이미 성년의 나이에 접어든 만큼 지자체나 지방의회나 자기 책임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 지방의회의 인건비 총액만 고정된 상태에서 지역구 획정이나 의원 숫자는 해당 지방의회에서 알아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현행 제도는 분권의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 완료됐어야 할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자체가 한국의 잘못된 중앙집권적 정치행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이번 지방선거가 촛불혁명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에도 누적된 폐단(적폐)이 많은데 현재 지방의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사실상 일당독재나 양당 독과점으로 되어 있는 지방의 정치구조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 이후에도 시민들의 정치 무관심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 공동대표는 “정치는 효능감이 중요하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도 몰아냈지만 정치가 바뀌어서 실제 자기 삶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못느꼈기에 정치에 대한 불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시민들이 사는 동네의 복지관이 달라지고 도서관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정치가 바뀌면 일차적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걸 체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백철·이하늬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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