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일베의 호남 비아냥, ‘보수의 품격’ 깎아내린다

2013.01.22

“또래 사이에서 압력이 존재한다. 당연히 청년이면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무언의 분위기 아니냐.” 올해 24살의 대학생이라고 밝힌 일간베스트저장소(줄여서 일베·이하 일베) 게시판 이용자(줄여서 ‘일게이’라고 그들 스스로 지칭한다) ‘춘풍’의 말이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1년 정도 일베의 성장과정을 지켜봤다는 ‘춘풍’은 오프라인에서 일베 사용자들을 만나기 힘든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했다. 일베 사용자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그 또래로부터 고립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베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대학생의 일베 ‘친구’에 대한 인식은 이랬다.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까이는 편이다. 약간 사회 부적응자 느낌이 나기는 했다. 대학교 익명 게시판에 가면 ‘지려부렸소’와 같은 이른바 ‘홍어드립’(전라도 말투를 흉내내어 비꼬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넘친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

일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인터넷에서 이들이 보이는 행태가 보수 혹은 수꼴(수구꼴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앞에서 언급한 홍어드립이나 고인드립(죽은 사람들을 유머의 소재로 삼는 것이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로 사용되며, 간혹 프로야구선수 이호성씨와 같은 전라도와 관련한 유명인사의 사망 전 행동이 유머의 소재로 사용된다)이다. 이 드립(애드립의 줄인 말)의 기원은 일베가 아니다. 디시인사이드 코미디갤러리, 정치사회갤러리 등이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오프라인에서는 보기 힘든 ‘지역드립’
‘지역드립’이 본격화한 곳은 우파 사이트 노노데모에서 떨어져 나온 ‘라도코드’다. 춘풍씨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네이버의 커뮤니티 ‘라도코드’가 접근제한조치를 당하면서, 갈 데가 없어진 라도코드 사용자들이 유입되면서 이런 ‘드립’들이 대거 늘었다. “이를테면 영화배우 한혜진씨가 영화 <26년>의 주연을 맡았는데, 한씨의 ‘80년 광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중, 과거 그가 전남 담양 출신의 유명인이라고 보도한 그 지역의 인터넷 신문을 찾아내 자료를 제시하는 식이다. ‘싸움’은 네이버 인물정보나 위키피디아에서 벌어졌다. 종전에 배우 한혜진씨의 출신지가 그냥 대한민국이었다면, ‘전남 담양’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수정된 정보에 대해 일베 사이트의 댓글 반응은 이렇다. “한혜진이 전남 담양 출신이라 5·18 폭동 영화를 찍었구나.ㅋㅋ”

그러나 ‘춘풍’씨는 “‘웃기면 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너 홍어지’라고 하는 순간 논리적 대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며 “이런 논리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번에 기자가 접촉한 일베 사용자의 대부분은 ‘지역드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보수 인터넷 팟캐스트 ‘떡볶이 수사대’를 제작한 대학생 황교영씨는 “스스로 보수의 ‘품격’을 깎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문화는 이제는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베 문화가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현재는 일베 문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부분이지만, 원색적인 비난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고 방종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보통 ‘보수=기득권을 가진 세력’으로 생각하는데, 일베를 쓰는 대학생들도 똑같은 대학생이다. 대부분의 보수 대학생들은 일베를 알기 때문에 모여 있는 공간인데, 앞으로 보수의 이미지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베에는 10대에서 20대의 젊은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베에서 ‘늘근으새’라는 필명을 쓰는 의사 조용일씨(가명)는 1970년대 대학을 다녔다. 서면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일베문화의 긍정성을 다음과 같이 뽑았다. 첫째, 사이트 내에서 ‘친목질’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나이나 직업과 같은 모든 기성 권위가 무시된다는 점. 둘째, 팩트·근거와 좌표로 상징되는 소스의 철저한 검증. 셋째, 자신의 주장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베 사용자에 대한 격려. 넷째,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일베 사이트 내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때는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게이들아’ 식으로 말한다. 일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사용자들이 서로를 지칭할 때 ‘(형)’이라는 반존칭을 사용한 것에 비해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조씨는 “기존 오프라인처럼 연령, 학벌, 고향, 군대와 같은 것이 개입한다면 자유로운 소통과 의사개진에 방해된다는, 일베 사용자 사이에 은연중에 합의된 풍토”라고 말했다.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팩트와 정보가 가장 숭상되는 가치라는 것이다.

일베의 팩트 존중, 사실일까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평등 지향 문화가 과거에는 전형적인 좌파적 가치로 생각되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좌파 학생·노동운동 조직에서 ‘존칭을 서로 생략하고 출신학교를 묻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의 것으로 굳은 ‘동무’라는 말이 단적인 사례다. 조씨에 따르면 2012년 대선을 경유하면서 새로운 일베 용어로 등장한 ‘행게이’, 즉 ‘행동하는 일게이’라는 말도 실은 ‘고인드립’의 주인공에서 따왔다. “‘행게이는 일베로!’라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씹선비’라는 단어에서 보듯 옳은 말은 입으로 다하지만 실제 개선이나 개혁을 위한 실천에 나서지 않는 논객을 경멸하는 분위기다. 이를테면 선거법 위반 사례를 선관위에 신고하거나 간첩이라고 의심되는 이를 직접 신고하는 등의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올린 글은 자연스럽게 추천을 받아 일베로 올라가게 된다. 즉 ‘행동하는 양심’을 말한 슨상님, 참여정부의 ‘참여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소명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베가 ‘사실을 존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대학생 오창동씨(23)는 “북한 특수군의 5·18 시민군 위장설의 경우, 당시 현장을 취재한 보수논객 조갑제씨가 ‘근거 없다’고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일베 게시판에서는 팩트라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올라온다”며 “자신이 옹호하고 지지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사실을 조작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앞의 일베 사용자 조씨는 “광주의 문제는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며, 조갑제씨의 주장과 지만원씨의 주장이 다른데, 최근 지만원씨의 주장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라며 “집단의 생각 흐름이 ‘불리한 사실의 외면’으로 흐른다면 할 말은 없지만 건강한 사이트는 그런 경향을 수정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넷평론가 주동식씨는 일베뿐 아니라 한국 우파의 담론구조에서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지역드립에서부터 ‘영남 우월주의/호남 혐오’로 표면화한 지역주의는 사실상 ‘특정 개인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선택이나 행동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기준으로 사람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해석하는 태도’로서의 인종주의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베와 같은 인터넷 우파 사이트가 과거처럼 사회적 루저의 배설공간으로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인종주의적 태도는 몇몇 사회이탈자들의 병적인 양태 정도로 치부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서 보이듯 인터넷 우파·우파담론이 상당한 정치적 성과와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것은 동시에 본격적인 검증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확실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 보수세력이 원초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것”이라며 “보수세력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산업화나 경제개발의 성과도 모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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