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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중시하고 ‘소탈’한 판사

이범준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2011.10.11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빚’ 적은 드문 경우

9월 20일 대법원에서는 원장 부재 상황을 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긴박하게 돌았다. 이용훈 대법원장 임기 종료를 사흘 앞둔 이날까지도 국회가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 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문제와 엮여 여야가 대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승태 후보자는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늦어질 줄 알았으면 참…. 지금쯤이면 ‘존 뮤어 트레일’을 전부 마쳤겠네”라고 말했다.

9월 19일 양승태 대법원장(당시 후보자)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면담을 나눈 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양 원장은 전날 청와대로부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받자마자 “내일 당장 이용훈 대법원장부터 찾아뵙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강윤중 기자

9월 19일 양승태 대법원장(당시 후보자)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면담을 나눈 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양 원장은 전날 청와대로부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받자마자 “내일 당장 이용훈 대법원장부터 찾아뵙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강윤중 기자

세계 3대 도보여행길로 꼽히는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 358㎞ 대자연이 펼쳐진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2월 대법관 퇴임 후 이곳을 여행하다 대법원장직을 맡게 되면서 중도 포기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양 대법원장은 최근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담을 나눌 때도 “대법원장 마치고 나면 칠순인데 그때는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자리에 욕심이 아주 없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법원 안에도 있었다. 지난 2월 퇴임 이후 히말라야와 미국을 산행한 것은 검증 공세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겠냐는 의심을 일부 판사들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양 후보자의 부인 김선경 전 경원대 교수가 지난해 2월 조기 퇴직한 이유가 양 대법관이 다시는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약속한 때문이란 것까지 내부에 알려졌다. 게다가 임명동의안을 앞두고 계속 산행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의심을 접었다.

이런 양 대법원장에 대한 첫째 인물평은 ‘소탈’이다. 8월 18일 청와대가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하자 양 후보자는 “내일 당장 이용훈 대법원장부터 찾아뵙겠다”고 대법원에 말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측은 양 후보자의 승용차가 배기량 1000㏄ ‘모닝’이란 사실을 떠올리고는, 부랴부랴 의전용 차량을 보냈다. 카메라 기자들이 모두 대기하는 상황에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괜히 불필요하게 오해 받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내규를 검토해보니 후보자에게 차량을 보내드리는 게 가능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괜히 후보가 쇼를 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다른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야 다 알지만 괜한 오해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사실 양 대법원장이 모닝 전에 타던 차는 이보다 더 작은 배기량 800㏄ 아토즈”라고 말했다.

배기량 1000cc ‘모닝’ 타고 다녀
199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후배 배석 판사들과 경기도 포천 명성산으로 등산을 갔을 때다. 판사들이 등산에 익숙지 않아 고생한다고 생각한 그는 손수 텐트를 치고 두 판사를 들어가서 자게 했다. 자신은 바깥에 침낭을 펴고 별을 보며 잠들겠다고 했고, 판사들이 만류했지만 결국 그렇게 했다. 다음날 판사들이 일어나 보니 양 부장판사가 먼저 일어나 밥을 지어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 분위기를 생각하면) 배석판사가 부장을 한 데서 자게 하고 더구나 차려주는 밥까지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텐트에서 불안하게 잠든 판사 가운데 한 사람이 훗날 이번 대법원장 청문회 준비를 지휘한 권순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고등법원 부장판사)이다. 9월 27일 대법원장 취임식에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국회 법사위원장, 법무사협회장 등 법조 관련 단체장을 참석시켜 호평을 얻었는데, 권 실장의 아이디어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소통을 강조하고 매사에 소탈한 양 대법원장의 성격을 이해한 데서 나온 건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의 둘째 키워드는 ‘효율’이다.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도산 관련법 정비를 요구했다. 그래서 1999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처음으로 파산부가 생겼다. 초대 파산 수석부장판사를 맡은 사람이 양 대법원장이다. 파산부가 관리한 기업들 자산이 30조원에 달했고, 재계 서열 5위라는 말이 나왔다.

자산 7조8981억원 규모의 기아자동차, 6조3000억원의 한보철강, 1조2052억원의 대한통운 등이 모두 기업정상화에 성공했다. 당시 배석판사이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배현태 변호사는 “어느 것을 회생시키고 어느 것을 정리할지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파산부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데는 양 수석부장의 예리한 판단과 과감한 결정이 주효했다”고 기억했다.

2002년 부산지방법원장 시절에는 크고 작은 데서 이런 능력이 발휘됐다. 전국 법원마다 신용카드사에서 떼인 대금을 청구하는 사건이 판사 1인당 한 달 평균 3000~4000건에 이른다. 쟁점은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일이라고 한다. 양 법원장은 판사들에게 일을 모두 풀어 카드회사별로 묶어서 처리하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면 재판 서류를 보내는 송달 과정이 단숨에 정리된다”고 설명했고, 이런 식으로 부산지법 판사들의 불필요한 업무부담을 상당 부분 줄여줬다.

당시 부산지법 판사였던 이동근 대법원 기획총괄심의관은 “그해 업무평가에서 부산지법이 2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위는 아주 작은 규모의 법원이었을 것이다. 대규모 법원이 그렇게 높은 순위이기가 쉽지 않다. 전년에는 8위인가 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부산지방법원장 시절 불필요한 업무 줄여
양 대법원장은 매일 9시15분에 출근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정시에 출근하면 많은 직원들이 그보다 일찍 나와 준비해야 해 고생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양 대법원장은 당분간 대법원 주요 보직 인사이동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개혁은 수십년째 이어져온 사법개혁의 흐름 위에 있던 것이고 양 대법원장 자신도 큰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법원장은 이른바 ‘인사 운동’을 해서 낙점된 사람과, 인사 운동 없이 자기도 모르게 대법원장이 된 경우로 나뉜다. 여러 인사를 하면서 지역적 역학이 복잡하게 작동한 끝에 중립지대의 사람이 선택되는 경우가 후자다. 하지만 운동 없이 대법원장이 돼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갚아야할 빚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대법관 제청에 대통령의 뜻이 상당히 반영된다고들 본다.

하지만 그 빚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1988년에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가 여소야대 국회에서 부결되고, 노태우 정부가 애원하다시피한 ‘통영 대꼬챙이’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다. 그러고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에 버금갈 만큼 임명권자에게 빚이 적은 드문 경우다. 청와대가 인사검증 동의안을 내달라고 몇 번을 전화하도록 만든 끝에 대법원장이 됐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양 대법원장의 산행이 결과적으로 사법부와 자신에게 상당한 자산으로 되돌아온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범준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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