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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대란’ 기름붓는 최악 경제위기

2009.02.10

수출·투자·소비 모두 침체… IMF 올 성장률 -3.7%로 조정

수출용 자동차 선적장 인천항 제5부두가 한산하다. <김영민 기자>

수출용 자동차 선적장 인천항 제5부두가 한산하다. <김영민 기자>

정부 입장에서 경제 마이너스(-) 성장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부는 패달을 밟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와 같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정부 조직은 늙고 병든다. 건전한 펀더맨털 없는 경제 성장은 공허하다. 결국 경제 체력의 약화가 곧 국가 노화의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9월 1일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 앞에서 현저한 체력 저하 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 위기가 돌발한 뒤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2008년 4분기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실질 기준)은 전기 대비 5.6% 감소했다. 1998년 이후 최저치다. 여기에 마이너스 성장에 가장 영향을 미친 부문은 수출이다. 지난해 11월 18.3%, 12월 17.4% 감소했다.

1% 하락 때 일자리 5만 3000개 줄어
올 상반기에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수출·투자·소비 모두 침체의 구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장률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상반기 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또 상반기 민간 소비는 3.2%(이하 전년 동기 대비), 설비 투자는 무려 15.2% 준다고 예상했다. 아직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수·수출 부진, 투자·소비·생산 위축 등으로 성장 중단 상태가 초래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연구소의 경제전망치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이동걸 금융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 “올해 경제예상치를 정치변수화했다”고 밝혔다. 경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정치적 판단으로 비관적 전망을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 더욱 냉정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한국 경제성장률을 종전 2%에서 -3.7%로 조정했다. IMF가 1월 28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는 한국만 특정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신흥공업국(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의 전망치를 함께 수정 발표한 것이다. 이는 IMF가 성장율 전망을 발표했던 지난 60년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IMF는 “미국발 금융 위기 손실이 지난해 10월 1조4000억 달러에서 현재 2조2000억 달러로 늘어나면서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조정 이유를 밝혔다.

노동연구원은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질 때는 일자리가 5만3000개 줄어들고, 0% 성장 때와 -1% 성장 때는 각각 9만 개와 12만 개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이 -2%로 떨어지면 일자리는 18만 개가 준다. IMF의 전망치만큼 추락한다면 일자리는 거의 40만 개 이상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 수는 78만 명(2008년 12월 말 현재)이다. 다음 달 중 국내 실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 실업자 200만 명 넘을 듯
이는 공식실업자일 뿐이다. 구직단념자 등 구직 노력을 보이지 않는 비경제활동 인구는 제외된 숫자다. 실질적인 실업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

제조업이 경제 위기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통계청이 밝힌 제조업 취업자는 402만8000명(2008년 12월 말 현재)으로 전년 같은 달의 412만7000명에 비해 9만9000명(-2.5%) 줄어 3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제조업체 345개가 부도를 냈다. 이런 추세라면 제조업 취업자는 올해 1분기 중 월별로 400만 명 아래로 내려갈 것이 확실하다.

경제 한파 속에서도 언제 경기가 회복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조기 극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은행은 IMF 직후인 1999년 2%대의 성장률을 전망했다. 하지만 그해 우리 경제는 무려 10%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IT붐과 세계시장의 호황이 성장엔진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세계경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장시복 경상대 교수는 “통상적으로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1이 3%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하면 세계적 불황기로 본다”면서 “더욱이 전 세계 시장에서 5000만 명이 넘는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 실업의 증가 역시 국제 수요 창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세계 경제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내수시장으로 유효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면서 “욕조 모양의 U자 혹은 L자형 회복 사이클을 그릴 것 ”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물론 다른 견해를 보이는 학자도 적지 않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경제개발협력연구실장은 “U자형 회복세를 보일지 아니면 V자형 회복세를 보일지 알 수 없다”면서 “미국의 부동산 재고가 9개월분까지 감소한 만큼 올 하반기에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경기침체기에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커지게 마련이다. 많은 학자는 정부의 경제 위기 대처 방향과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4대 강 정비사업(사업비 18조 원) 등 ‘그린뉴딜정책’ 추진이 그것이다.

한 대학교수는 “청와대가 지식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면서 “청와대 참모들이 배운 공급경제학(신자유주의)이 무효화됐음을 인식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여전히 시대착오적 공급경제학 논리에 기초한 정책기조를 펴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상조 교수도 “금융 위기 상황에서 금융규제 완화를 한다든지, 고용 위기 상황에서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한다든지, 수입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고환율정책을 쓴다든지, 재정 확대의 필요성이 커가는 상황에서 감세정책을 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위기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토건 중심의 재정정책은 위기 극복 정책이 아니라 파국 촉진 정책”이라면서 “토건 건축 사업에 막대한 자원을 탕진하는 기형적 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개발사업은 투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후진적 산업구조를 고착시킬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오불관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용식 21세기경제연구소장도 “정책 실행 결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차리 창출 자체가 목표인 정책이 성공하겠느냐”면서 “재원 낭비”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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