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술 속에 사회 변화가 녹아 있다

2007.03.27

한국 대중주 소사… 경제발전·생활상 변화 따라 고급·대중화로 이어져

위_ 20년대 술 저장고. 가운데_ 20년대 양조장 술배달원들. 아래_ 1976년부터 각 시·도의 주류도매상들이 지역 내 제조사의 소주를 일정비율 이상 사들이는 자도주 구입제도가 시행되었다. 1992년 이 제도가 폐지되기까지 국내 소주시장은 업체들의 지역 분할 시대가 이어졌다.

위_ 20년대 술 저장고. 가운데_ 20년대 양조장 술배달원들. 아래_ 1976년부터 각 시·도의 주류도매상들이 지역 내 제조사의 소주를 일정비율 이상 사들이는 자도주 구입제도가 시행되었다. 1992년 이 제도가 폐지되기까지 국내 소주시장은 업체들의 지역 분할 시대가 이어졌다.

만약 술이 근대 이후에 발명되어 등장했다면 틀림없이 마약류 등 금지식품 목록에 포함되었으리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술이 내포한 쾌락과 중독성이 강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은 인류 역사의 출발과 함께, 아니 역사 시대 이전부터 인간의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동반자의 위상을 유지해왔다.

생명을 앗아가고 돌려주는 술

술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술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만남이 메아리를 울리지 못하고 밋밋한 일상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까? 이런 점에서 술은 자신이 앗아간 만큼의 생명을 인류에게 되돌려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술 속에는 인간의 삶이 녹아 있다. 술이 변해온 모습을 따라가보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함께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서민들이 즐기는 술은 점차 고급화되는 경향을 띠어 왔다. 일제시대를 거쳐 1960년대까지 가장 대중적인 술이었던 탁주(막걸리)가 소주에 그 영광을 내준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 초반까지도 소주는 순곡을 이용해 증류방식으로 제조, 서민들이 쉽게 마시기 어려운 술 가운데 하나였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맥주의 고향인 유럽에서야 음료수 대신 마시는, 대중적인 술이었지만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는 엄청난 고가였다. 그나마 주로 명동이나 무교동 등 번화가 술집에서 소량의 생맥주가 팔리거나 선물용으로 소비되는 술이었다. 당시 맥주 3상자 반이 쌀 1섬 값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서민들로서는 맥주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주류시장에서 먼저 서민주의 위상을 차지한 것은 소주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50~60년대 들어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경쟁 등 사회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소주가 대중의 정서와 취향에 잘 들어맞는 술로 등장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국민들의 육류 소비가 늘어난 것도 소주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포장마차나 선술집에서 고기 불판을 둘러싸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당시의 ‘국민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의 대중주라고 할 수 있었던 막걸리는 운반과 보관이 어렵다는 약점이 있었고 고기보다는 김치 등 야채류 안주에 더 적합한 술이었다. 말하자면 도시보다는 농촌의 환경에 맞는 술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도시형으로 바뀌는 것과 함께 즐겨 마시는 술도 소주로 바뀐 것이다.

왼쪽_ 1965년 진로가 희석식 소주를 출시하면서 희석식 소주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삼학과 사활을 건 총력전에 들어갔다. 가운데_ 소주 제조를 규제하고 지방의 영세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주정 배정제도가 1974년부터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1993년에 폐지되었다. 오른쪽_ 참이슬fresh는 우리나라 소주 시장에 본격적인 저도주의 시대를 열었다. 소주의 쓰고 강한 맛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을까?

왼쪽_ 1965년 진로가 희석식 소주를 출시하면서 희석식 소주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삼학과 사활을 건 총력전에 들어갔다. 가운데_ 소주 제조를 규제하고 지방의 영세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주정 배정제도가 1974년부터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1993년에 폐지되었다. 오른쪽_ 참이슬fresh는 우리나라 소주 시장에 본격적인 저도주의 시대를 열었다. 소주의 쓰고 강한 맛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을까?

카~ 소리도 안 나오는 게 소주?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국민주로서 소주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는 해외시장에도 진출, 전 세계 주당들의 미각에 또 다른 ‘한류’를 불러 일으키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소주가 앞으로 계속 국민주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을지 회의하게 만드는 현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주의 ‘저도화’ 현상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의 알코올도수는 35%가 일반적이었다. 진로소주의 경우 알코올 30%의 희석식 소주가 나온 것이 1965년이다. 소위 ‘두꺼비’가 막걸리를 밀어내고 완전히 한국의 국민주로 자리잡은 데는 1973년에 알코올도수를 25%로 내리는 상품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4반세기 이상 지속되던 25% 소주의 시대는 1999년 진로가 23도 소주 ‘참眞이슬露’을 내놓으면서 막을 내린다. ‘참이슬’이 불러온 돌풍은 소주의 저도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두산과 보해 등이 23도 소주를 출시했고, 이후 소주 메이커들은 22→21→20→19.8도의 순으로 계속해서 ‘소주 순하게 만들기’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알코올 20%는 소주 도수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진로가 ‘참이슬 fresh’로 과감하게 이 마지노선을 깨뜨린 시도는 일단 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소주 애호가들의 ‘용납’이 19.8도 소주에 대한 것인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진로’ 브랜드에 대한 ‘참작’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일단 소주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의성어, 쓰디쓴 액체를 입안에 털어넣고 소주잔을 탁자 위에 타악 내리치며 목구멍 깊숙이 가래 끓듯 내뱉는 ‘카아~’ 소리가 저도 소주에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소주는 쓰고, 강하고, 남성적인 술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분위기와 웰빙이 강조되는 시대에 소주는 어쩐지 머쓱하다. 이런 시대의 코드에 가장 어울리는 주류는 ‘와인’이라는 것에 이미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에 맞추어 소주도 변신해야 하지만 너무 많이 변하면 그것은 더 이상 ‘소주’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시대에 맞출 수 있는 그 지점이 누구인지는 소주 자신도 잘 모를 것 같다. 그것이 19.8일지 아니면 19.7일지 그도저도 아니면 15.0 이하일지.

다양하지만 개성도 약한 맥주

맥주의 경우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오비맥주는 경쟁사들보다 한 발 앞서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시설 신축과 증설을 통해 설비 근대화를 이루며 시장 경쟁에서 앞서나갔다. 다른 주종에 비해 품질의 균일화가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맥주 제조업에서 오비맥주의 그러한 작업은 결정적으로 품질을 차별화하고 시장에서 앞서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중동 건설경기 등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맥주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소주에 이어 맥주가 또 하나의 국민주로 자리잡은 것이다. 오비맥주 영업부 직원들은 주문을 피해 몸을 숨기고, 대리점 직원들은 현금을 싸들고 오비맥주 앞에 줄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던 것도 당시의 일이라고 한다.

맥주의 대중화에 또 하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 1980년대 ‘오비호프’의 등장이었다. 병맥주에 이어 생맥주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고안한, 대중적인 맥주 판매업소였다. 국민들의 소득수준 향상에 맞추어 시설을 대형화·고급화한 것이 주효했다. 1986년 11월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1호점을 개장한 이후 젊은이들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주가들을 소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는 요즘은 완전히 보통명사화된 ‘호프집’이라는 표현이 생겨난 계기가 됐다.

맥주는 또 하나의 국민주로 등장했지만 소주에 비해 ‘개성’이 약한 편이다. 소주는 메이커와 브랜드가 달라도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품질의 차이는 있어도 성격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맥주는 다르다. 맥주는 엄청나게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만큼 다양한 기호층이 존재한다. 1993년 ‘하이트’가 등장해 순식간에 시장구도를 뒤집었던 것도 그만큼 다양한 변종, 신참자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 아닐까.

[여행&레저]술 속에 사회 변화가 녹아 있다

라벨1960 _ 1952년 5월 22일 오비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의 출범과 함께 소비자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도입한 새로운 상표 디자인.
라벨1970 _ 1965년 처음으로 맥주판매 100만 상자를 돌파하는 등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자 오비맥주는 생산능력을 3배로 확장하는 증설을 서둘렀다.
라벨1980 _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중동 건설경기 붐으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맥주 판매량이 급증하고, 품귀현상까지 초래됐다.
라벨2003 _ 소비자, 특히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분석하고 연구하여 출시한 오비맥주. 탁월한 목넘김을 위해 3.56g의 쌀을 첨가하였고,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 강화 발효 공법으로 만들었다.

<자료제공:(주)진로·(주)OB>

주동식〈르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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