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수출해서 번 돈 유학으로 샌다

2007.02.27

조기유학 열풍으로 무역수지 악영향… 빚내서 공부시키는 가정도

한 유학박람회에서 유학예정자가 관계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 유학박람회에서 유학예정자가 관계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청수 사장(가명·45)은 요즘 은행 출입이 잦다. 풍부한 유동성(회사 운영자금)으로 그동안 은행대출과 거리가 멀었던 그가 은행을 자주 찾는 것은 두 아들의 유학비용 마련 때문이다.

지난해 봄 중학교 3년과 2학년생 두 아들을 호주로 유학보낼 당시만 해도 학비와 체류비용에 대한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다. 2억 원에 가까운 연간 수입이 있어 두 아들의 유학비용(연간 8000만 원 가량) 조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20여 년 간 노력한 끝에 자수성가해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 됐고, 자녀에 대한 교육만 잘하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누구보다 컸다.

중국 조기 유학생 5년 전의 5배

문제는 지난해 여름 터졌다. 납품업체로부터 청천병력 같은 납품 철회 통보를 받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거래처로부터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난 것이다. 잘 나가던 사업은 기울기 시작해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 할 형편으로 전락했다. 지난 연말까지 근근이 버텼지만 올해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렵게 조기유학을 보낸 두 아들과 함께 출국한 아내를 귀국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박 사장은 “조기유학에서 이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유학생활을 하는 두 아들과 아내에게 귀국하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면서 “빚을 내서라도 유학생활을 마무리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장함마저 엿보이는 그의 이런 행동은 자신이 고졸 출신이라는 학력 콤플렉스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은행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사업비용 마련이 아닌 자녀의 유학비용 마련을 위해서다. 한때 수시로 호주와 한국을 오갔던 ‘독수리 아빠’에서 ‘펭귄 아빠’로 전락했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적지 않은 유학생 부모들이 경제침체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유학컨설턴트 김석관씨(40)는 “경제침체로 인한 사업부진 등으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녀의 유학 비용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면서 “한때 잘 나가던 중견업체들이 스러지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유학생 자녀들도 덩달아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조기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난 아이는 모두 2만400명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조기유학 열풍에 힘입어 미국의 경우 한국 출신 조기유학생 수가 중국과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다. 이런 우수한(?) 성적은 우리나라의 조기유학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에서 10여 명이 빠져나간 초등학교 학급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관광객이 늘면서 여행수지적자 폭이 커졌다. 해외로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항. <김영민 기자>

유학·관광객이 늘면서 여행수지적자 폭이 커졌다. 해외로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항. <김영민 기자>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조기유학 대상지가 미국 등지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관련업계에 따르면 2005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초·중·고생은 모두 63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2000년에 비해 5.4배 이상 늘어난 숫자다. 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도 5년 전에 비해 4.2배 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지역으로 조기유학이 급증하는 것은 비교적 미국 등지에 비해 저렴한 경비와 중국어 등 영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생각이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조기유학 준비를 대행해주는 유학원이 유학특수를 누리고 있다. 현재 종로유학원과 유학닷컴, IAE유학네트 등 3∼5개의 대형 유학원과 중소 유학원 500여 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달러 적금’ 가입고객도 늘어

유학 관련 산업도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금융권의 유학 관련 상품이다. 실제로 최근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부모 사이에서 ‘달러적금’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자녀의 조기유학이나 해외연수에 대비해 필요한 자금을 달러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상품이다. 씨티은행 이지혜 PB팀장은 “달러 적금은 투자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추천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자도 연 5% 안팎(1년 만기 기준)으로, 원화 정기예금보다 0.4~0.5%포인트 높다.

알리안츠생명의 ‘뉴파워 리치연금보험’(연 5%)은 보험이지만 달러적금에 해당하는 상품이다. 지난해 3월 출시 후 석 달 간 수입보험료(매출)는 매달 1만 달러 내외였지만, 10월 37만 달러, 11월 34만 달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자녀의 해외유학이나 연수에 대비하려는 30~40대 샐러리맨이 전체 가입자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 ING생명은 자녀의 어학연수 및 자립자금 마련은 물론 성장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질병 및 재해, 암보장까지 가능한 ‘무배당 다이렉트 엘리트 키즈보험’을 연초부터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최근 조기유학 및 어학연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가중된 자녀의 교육 자금도 준비하면서 어린이들의 질병 및 재해 시 수술 및 입원비까지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을 원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한 것이다.

조기유학생이 늘면서 무역수지적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비스수지 적자가 187억 달러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치이자 8년 내리 적자다. 유학·여행 경비로 해외에서 쓴 돈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학·연수를 포함한 여행수지는 129억 달러 적자를 냈다. 서비스수지 전체 적자의 3분의 2에 달한다. 이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도 60억 달러에 그쳤다. 수출로 번 돈을 해외여행과 유학에 쏟아부은 셈이다. 원화 환율마저 강세여서 이런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경상수지가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에도 조기유학 열풍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과 교육환경으로 어린 나이에 차라리 해외로 보내겠다는 부모들의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부모들은 유학비용 지원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 자신들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녀를 영국에 조기유학시켰다가 최근 가정형편으로 귀국시킨 김미현 주부(가명·41)는 “무리한 유학비용 부담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가족의 해체로 인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면서 “경제적인 지원으로 모든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