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한국의 남성들에게 가장 흔한 악몽은 ‘재입대’하는 꿈입니다. 농담 같지만 진담입니다. 저도 몇 번 꿔봤는데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미 군대를 다녀왔다”라고 소리쳐봐도 저승사자 버금가는 징집관들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10년 전쯤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을 때도 꿔 봤습니다. 역시나 끌려가면서 “내가 국방부 장관도 알고, 병무청장도 잘 안다(취재하면서 몇 번 만나본 것이 다였지만)”라고 호기롭게 외쳤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끌려가다가 깰 때도 있고, 신병교육대까지 입소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일찍 꿈에서 깨면 다행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악몽도 현실보다는 나은 삶인가 봅니다. 경향신문 보도 등을 보면 강원도 춘천지검 형사2부는 최근 병역법 위반, 위계공무집행방해,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구속기소했습니다. A씨는 지난 7월 원래 입대해야 할 B씨 대신 입대해 두 달 넘게 군 생활을 했습니다. B씨의 신분증을 들고 강원 홍천의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훈련을 마친 뒤 자대배치까지 받은 모양입니다. 이들의 범행은 B씨가 지난 9월 병무청에 자수하면서야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한 온갖 비리가 있었지만, 아예 입대자를 바꿔치기하는 ‘대리 입영’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A씨가 병역을 대신 치르면서 받은 대가를 보고 또 놀랐습니다. “월급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는 말을 처음에는 ‘B씨가 원래 병역을 치러야 하는 기간 사회에서 버는 돈의 절반’으로 이해했습니다. 당연히 A씨가 군대에서 받는 월급은 다 가져가고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월급은 군대에서 받는 월급이었습니다. A씨는 “군대에서 월급을 많이 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입영했다. 명의자와 반반씩 나누기로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병사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정부가 정해 준 곳에서 정해 준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단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다시 가는 사람이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20대 청년이 말입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시교육감과 4곳의 기초단체장을 새로 뽑는 재보궐선거가 진행됐습니다. 투표율은 24.62%에 그쳤습니다. 기초단체장 투표율만 따로 떼어봐도 53.9%로 절반을 간신히 넘었습니다. 한국 유권자들이 지금 한국 정치에 기대하는 수준이 이만큼밖에 안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대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대리입영’ 사건이 보여주듯이, 여전히 한국사회는 살펴야 할 곳이 많습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