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에는 노벨상이 발표된다. 노벨상은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한다. 올해 노벨상은 한국의 여성 작가에게 문학상을 수여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연구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올해 노벨 물리·화학상에서는 인공지능(AI) 연구자들이 공동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존 홉필드 교수와 제프리 힌튼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 개척자로 학습 알고리즘의 생성은 불가능하다는 기존 견해를 반증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뇌의 연결망을 본뜬 인공지능의 구조를 실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힌튼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의 개척자지만 기술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화학상은 수상자 세 명 중 두 명이 구글 딥마인드 소속의 컴퓨터 과학자다.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예측하는 50년 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AI 모델을 개발”한 것이 이들의 공로다. 구글 딥마인드는 2016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 사이의 대국을 주최한 기업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 이후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인공지능의 거대언어모델(LLM)은 인간 사유의 근본 방식 중 하나인 추론을 해내고 있다.
AI, 연구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는 그로 인한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도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한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인공지능이 과학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사의 관점으로는 새로운 과학연구 패러다임의 등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과학의 역사에서 혁명적 전환은 사실 매우 드물다. 대개는 정상 과학의 틀에서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과학연구의 흐름이다. 다만 드물지만 큰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있다. 기존의 틀을 바꾸거나 기존의 틀은 존속하더라도 새로운 방법과 이론 체계가 등장해 더 높은 설명력을 갖게 되는 경우다.
인공지능의 과학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불과 반세기 남짓인데, 이젠 기존 방법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과학사에서 드문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올해 노벨상은 공식화했다. 인공지능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을 얼마나 대체할지, 얼마나 보완하며 공존할지는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로 세 명의 미국 경제학자에게 수여됐다. 이들은 국가의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혁신적 연구를 수행했다고 스웨덴 학술원은 설명했다. 또 “민주주의와 포용적 제도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하나의 길임을 보여주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노벨상위원회의 발표문과 기자회견에서 설명은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 세 경제학자의 연구에 대한 해석을 다소 좁게 하고, 연구 결과가 경제학 바깥 학문에 어떻게 파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근대화라는 보편적 발전모델로 일반화한 “근대화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열어낸 부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사안은 다음 칼럼에서 자세하게 다루겠다.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과학혁명을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로 설명한다. 학계의 지배적인 사고체계를 대표하는 기존의 정상 과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 즉 이상(anomaly·異狀)에 대해 새로운 이론 체계가 등장하면서 과학혁명은 시작된다.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기존 체계와 새로운 체계 사이의 갈등과 경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에 기존 체계는 본질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기존 체계는 학계에서의 권위와 중심적 지위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방법론과 체계는 이론의 타당성과 더 높은 설명력으로 승리한다. 새로운 체계가 기존 체계를 대체하기도 하고, 양립하기도 한다. 과학은 이렇게 발전해 왔다.
창조적인 연구자는 우상 파괴자
패러다임 전환을 촉발할 정도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창의적인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해 성공을 이루는 걸까. 이 질문은 토머스 쿤의 또 다른 저서 <본질적 긴장>(1977)에서 다루어진다. “성공한 과학자는 전통주의자와 우상파괴자의 특성을 동시에 발휘한다”는 것이 쿤의 주장의 요점이다. 과학연구에서 전통은 학계에서 연구의 기본 틀을 정리한 텍스트북으로 전수된다. 여기에는 학계의 지배적인 연구 방법론도 포함된다. 그러나 주어진 틀에 머물러서는 지식의 최전선이 개척되지 않는다. 당연히 기존 틀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이 요구된다.
여기에 창조적인 연구자는 우상 파괴자가 된다. 성공한 과학자 집단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경계로 나아가는 데는 우상 파괴자가 돼야 한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창조적인 과학자와 그가 속한 과학자 집단의 특성이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본질적 긴장은 과학의 비약적 발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발전 또한 전통에 발을 딛고 혁신을 추진할 때 이뤄진다. 문화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인간 사회 발전의 기본형이 전통과 혁신 사의의 본질적 긴장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언론 보도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공동 번역한 페이지 모리스는 “통념에 맞선 그의 작품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강은 몇 번이고 한국의 검열과 체면 문화에 맞섰으며 매번 더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냈다”라고 말했다(경향신문, “한강 작품 번역가 ‘검열·체면에 맞선 작가···수상은 시적으로 표현된 정의”, 2024년 10월 11일자). 우상 파괴자의 특성은 성공한 과학자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성공한 작가도 이 특성을 공유한다.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낸 강인함과 그가 경험한 세계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창조성이 문학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도 함께 축하한다.
<서중해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