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알고 싶은데…보상 합의만 재촉하는 아리셀에 참담”

2024.08.12

아리셀 참사 40여일…한국의 혐오·차별과 싸우는 유족대표 인터뷰

“빨리 끝내라” 일부 닦달엔 “한국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봐달라”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의 김태윤 공동대표(가운데)와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이순희씨(오른쪽), 처조카를 잃은 공민규씨가 지난 7월 29일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의 김태윤 공동대표(가운데)와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이순희씨(오른쪽), 처조카를 잃은 공민규씨가 지난 7월 29일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아리셀 희생자 지원 그만, 행정 정상화”, “분향소는 아리셀 공장으로, 시민들은 화성시청을 이용하고 싶다”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유족들이 지난 7월 25일 마주한 피켓 문구다. 유족들은 희생자 분향소가 있는 화성시청 앞에 모여 있다가 20여명의 화성시 통장·이장협의회와 맞닥뜨렸다. “우리는 (화성시의) 업무를 방해한 적이 없다”, “아직 진상규명도 안 됐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유족의 울분이 쏟아지자 “세금 축내지 말고 나가라”고 대꾸하는 이도 있었다. 유족 중 누군가는 피켓을 찢었고, 통장·이장들 중 누군가는 찢어진 피켓을 유족 머리 위로 던졌다.

아리셀 화재참사로 딸을 잃은 재외동포 이순희씨도 이 자리에 있었다. “제가 막 소리쳤어요. 한국 법, 한국말 모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요. 아무도 말을 안 해요. 우리도 몸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에요. 한국인과 똑같은 사람이라고요.”

지난 6월 24일 발생한 아리셀 화재참사에서는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23명 중 18명은 이주노동자다. 저임금 이주노동자에게 위험 업무를 떠넘기면서도 안전관리엔 손을 놓은 한국 산업현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참사였다.

참사 직후엔 애도와 사죄, 반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리셀은 기자회견을 열어 “유족에게 진심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경기도는 참사 원인부터 대처까지 모든 과정을 담아 백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화성시는 유족 체류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지나는 동안 부끄러움은 증발했다. 유족들은 가족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 싶은데 아리셀은 “신속 합의하면 5000만원을 더 주겠다”며 노골적으로 보상 합의를 재촉한다. 이들은 ‘박순관 대표이사 등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까지 요구한다.

사측의 비인간적 태도와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주민 차별·혐오 정서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리셀 화재참사를 다룬 보도엔 ‘중국인에게 세금 낭비 반대’, ‘빨리 장례 치르고 끝내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유족에게 지원된 긴급생계비·숙박비 등은 지자체가 가해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 모두 회수할 텐데도 일부 언론은 이 사실을 감추고 ‘눈먼 돈 논란’을 제기해 혐오를 부채질했다. 위험이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된 구조를 파헤쳐 성찰해야 할 시간에 한국사회는 아리셀 유족들에게 ‘빨리 끝내라’는 닦달을 하는 셈이다.

화성시 통리장협의회가 아리셀 화재참사 분향소가 위치한 화성시청 앞에서 ‘희생자 지원 그만’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화성시 통리장협의회가 아리셀 화재참사 분향소가 위치한 화성시청 앞에서 ‘희생자 지원 그만’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지금 아리셀 참사 유족은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7월 29일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김태윤 공동대표를 만났다. 지역언론 ‘충북인뉴스’의 대표인 김태윤씨는 아리셀 참사로 남편을 잃은 소속 기자를 돕다가 가족협의회 일원이 됐다. 유족 대표 3인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대외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엔 아리셀 화재참사로 딸을 잃은 이순희씨, 처조카를 잃은 공민규씨가 함께해 각자의 경험을 보탰다.

-참사 직후 사측인 아리셀은 ‘사고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등 후속 조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측과 유족 간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김태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사측 간 대화는 지난 7월 5일 30분 만에 파한 첫 교섭 이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족들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가족이 왜 죽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1차 교섭 때 가족협의회는 참사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했다. 희생자들의 근로계약서를 비롯해 업무 형태·범위, 고용 형태에 관한 자료, 안전교육 관련 자료 등이다. 제조업에서 법으로 금지된 ‘파견’ 형식으로 노동자들을 공급받아 안전교육 없이 위험한 일을 맡긴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기초 자료들이었고, 유족들은 이런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아리셀은 첫 교섭 이후 가족협의회와는 연락을 끊고 유족 개개인들에게 ‘보상 합의안’ 문자를 보내왔다. 참사의 진실을 얘기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어떤 내용의 문자였나.

김태윤 “‘아리셀 화재 사고 보상 관련 사측 합의 제시안’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얼만큼의 합의금을 주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희생자 중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가 11명으로 가장 많은데, 문자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은 단순 노무 행위를 할 수 없으며 단순 노무 행위를 한 경우 강제퇴거 대상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있다. 희생자가 살아 있을 경우 한국에 체류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자기들이 일을 시켜놓고 이제 와 불법 운운하고 있다. ‘7월 19일까지 합의하면 추가로 50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흥정하는 내용도 있고, 한국인 직원 유족에게 ‘길림성 제조공 평균임금으로 손해배상금을 산정하겠다’는 제시안을 보낼 만큼 성의도 없다. 지난 7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족들은 진실규명이 되기 전에는 보상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는 입장’임을 밝히고, ‘유족 개별 접촉을 중단하고 대표단(가족협의회)과의 교섭에 임하라’고 사측에 공개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답이 없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아리셀은 진상규명을 위한 교섭은 피하면서 개별유족들에게 보상 합의안 문서를 문자를 보내고 있다. 어느 유족에게 전달된 사측의 합의안 일부.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아리셀은 진상규명을 위한 교섭은 피하면서 개별유족들에게 보상 합의안 문서를 문자를 보내고 있다. 어느 유족에게 전달된 사측의 합의안 일부.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아리셀이 유족들에게 개별적으로 보낸 보상안 내용의 일부. 유족 개별접촉 시도를 중단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교섭에 나서라는 것이 유족들의 입장이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아리셀이 유족들에게 개별적으로 보낸 보상안 내용의 일부. 유족 개별접촉 시도를 중단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교섭에 나서라는 것이 유족들의 입장이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참사 발생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보면, 불꽃은 아리셀 공장 3동 2층의 리튬배터리 상자 한곳에서 시작됐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노동자들은 배터리 상자를 맨손으로 옮기고 분말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 그러는 사이 몇 차례 작은 폭발이 이어졌고, 연기는 점차 커져 이내 작업장을 가득 메웠다. 첫 발화 후 42초 만이었다. 그 후 3만5000개의 배터리가 연쇄 폭발하면서 공장 일대에선 전쟁이 난 것 같은 굉음이 계속됐다고 한다. 불은 22시간 만에 꺼졌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대부분 출구 반대편 막다른 곳에서 발견됐다.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당시 직원들이 분말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려는 모습이 공장 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제공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당시 직원들이 분말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려는 모습이 공장 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제공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고 김재형씨의 고모부 공민규씨는 참사 당일 뉴스를 통해 이 영상을 봤다. “‘왜들 저러고 있어. 그 시간에 도망가면 되는데’ 했죠. 며칠 후 중국동포인 처남에게 연락이 와서 우리 가족의 일인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희생자들이 왜 대피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사측으로부터 들은 게 없어요. 그들이 나오지 못한 이유를 유족들은 아직도 모릅니다.”

희생자들의 안전을 책임졌어야 할 ‘사용자’는 누구이며, 왜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나. 참사 초기부터 제기된 의문에 대한 답변은 회피한 채 보상 합의를 재촉하는 아리셀 태도에 유족은 “참담하다”고 했다. 이순희씨는 말했다. “(재외동포 비자는) 강제 출국 대상이라는 문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박순관(아리셀 대표이사)한테 얘기하고 싶어요. 합의안에 나와 있는 그 돈 내가 당신에게 줄 테니까 내 딸 내놓으라고….”

-아리셀은 참사 직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깊이 사죄한다’고 했다. 이후 유족과의 대화에선 태도가 어땠나.

김태윤 “우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 그 시작은 자신들의 잘못부터 인정하는 것이다. 아리셀은 첫 교섭에서 유족들에게 ‘메이셀과 도급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인력(희생자들)을 모른다고 했다. 메이셀은 참사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력만 공급했지 아리셀과 도급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나. 아리셀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업무지시는 아리셀이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으로 허용된 도급(일정한 업무 전체를 하청업체에 발주하는 것으로 노동자 업무지시는 하청업체가 해야 한다)이 아니라 불법 파견으로 인력 공급만 받아온 것이다. 즉 ‘실제 사용자’는 아리셀이다. 그런데도 아리셀은 개별 보상 합의안 등에 ‘메이셀 ○○○(희생자 이름)’이라는 표현을 슬쩍 끼워 넣어 희생자들이 메이셀 직원인 것처럼 문서를 만들어 문자로 보내고 있다. ‘도급계약을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발뺌하고 싶은데 관련 자료가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뒤늦게 자료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이건 ‘증거조작’ 아닌가.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본부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본다.”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이사가 지난 6월 25일 화재참사 현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이사가 지난 6월 25일 화재참사 현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메이셀은 인력공급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는 아리셀의 하청업체다.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메이셀에 넘기려는 것으로 보나.

김태윤 “그렇다. 아리셀은 일부 유족에게 합의를 종용하면서 처벌불원서에도 서명하라고 했다. 그들이 제시한 처벌불원서엔 아리셀 대표이사와 본부장인 박순관, 박중언 등 여러 이름이 나열돼 있고, ‘유족은 이들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쓰여 있다. 그러고는 맨 끝에 이렇게 덧붙여져 있다. ‘단 메이셀,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 대표이사와 임직원은 (처벌불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법적 책임을 지울 대상이 필요하니까 (서명을 요구한 처벌불원서에서 그들을) 제외한 것으로 본다.”

아리셀이 일부 유족에게 사인을 요구한 처벌불원서. 아리셀 대표이사와 본부장인 박순관, 박중언 등 이름이 나열돼 있고, ‘유족은 이들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쓰여 있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아리셀이 일부 유족에게 사인을 요구한 처벌불원서. 아리셀 대표이사와 본부장인 박순관, 박중언 등 이름이 나열돼 있고, ‘유족은 이들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쓰여 있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제공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참사 발생 32일 만인 지난 7월 25일 처음으로 고용노동부 아리셀 수사전담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그의 아들 박중언 본부장 역시 처음으로 경찰 조사에 임했다. 두 사람은 각각 중대재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노동부·경찰에 입건돼 있다.

세월호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재난참사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은 늘 언론보도를 통해서야 수습과 조사·수사 과정을 알게 됐다. 아리셀 참사에서도 이런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김 대표는 “유족 상대로 한 브리핑은 지난 7월 8일 단 한 차례뿐이었다. 이후에는 노동부 지청장 등의 면담 자리에서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곤 했는데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그나마 한차례 이뤄졌던 경찰의 브리핑마저 유족에겐 ‘상처’였다. 참사 이전에 일어났던 아리셀 내 4차례의 화재 사고의 시점 등에 대해 경찰은 유족 브리핑에선 답하지 않았으나 같은 날 언론 상대 브리핑에서는 구체적으로 답했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재난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정보를 언제 제공할지는 우리가 선택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고, 이것은 유족과 피해자의 알권리, 의견을 피력할 권리의 침해로 이어졌다”면서 “신속하고 정기적인 수사·조사 브리핑은 유족의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4일 화성시청에서 열린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위패식 중 유족이 엎드려 울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7월 4일 화성시청에서 열린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위패식 중 유족이 엎드려 울고 있다. 한수빈 기자

-얼마 전 ‘아리셀 희생자 지원 중단’ 등의 피켓을 든 화성시 통장, 이장들과 마주했다.

김태윤 “사실 통합지원센터, 심리치료 지원, 법률지원, 공무원과 유족·피해자의 1:1 매칭 등 모두 의미가 없으니 안 해도 된다는 의사를 화성시, 경기도에 전달했다. 유족들은 ‘가족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다’고 얘기하는데 지자체 변호사·노무사, 공무원들은 산재 처리와 장례절차 안내만 반복하더라. 참사 발생 이튿날 첫 심리상담이 있었는데 ‘뭐가 제일 힘드냐’는 질문부터 나와 유족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진상규명이 우선인 상황엔 맞지 않는 지원들은 굳이 할 필요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은 것이 더욱더 답답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유족에게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족을 빨리 정리해 버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긴급생계비 지원(경기도는 가해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 지원금을 모두 받아낸다)을 안내하면서 분향소의 지하 2층 이전 동의 서류도 함께 나눠주는 식이다. 유족들에겐 이런 메시지로 다가온다. ‘우리는 충분히 시혜를 베풀었으니까 장례 빨리 치르고 나가.’ 진상이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나가냐는 유족의 외침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김 대표는 충북인뉴스 대표로 유족이 된 소속 기자를 돕다가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김태윤 “충북인뉴스도 참사를 여러 차례 보도해 왔지만 진짜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동료 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이곳에 왔다. 그런데 사측이나 영사관 등이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 유족들을 상대로 빨리 합의를 끌어내 끝내려 하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참사 직후엔 보상금 수수료를 노린 브로커도 많았다. 처음엔 ‘우리가 널 어떻게 믿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한 달 넘게 아픔을 함께하다 보니 저 혼자 떠날 수 없게 됐다. 진상규명 등이 제대로 매듭지어질 때까지 유족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 1일 경기 화성시청 추모분향소 앞에서 열린 첫 시민추모제에서 한 유족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문제원 기자

지난 7월 1일 경기 화성시청 추모분향소 앞에서 열린 첫 시민추모제에서 한 유족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문제원 기자

-화성 아리셀 참사를 추모하고픈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울러 유족으로서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김태윤 “제대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면 합당한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한국어가 가능한 유족들은 매일같이 ‘아리셀’을 검색해 댓글을 읽어본다. 응원의 댓글 하나라도 달아주시면 도움이 된다. 추모 집회엔 오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 함께한다’는 말만이라도 큰 힘이 된다.”

공민규 “하루빨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 중국동포인 처남은 하나뿐인 스물셋 아들을 잃고 한 달째 잠도 못 자고 밥도 안 먹고 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이었다. 억울함이 빨리 풀리길 원한다.”

이순희 “우리 딸은 퇴근할 때마다 ‘엄마 오늘 저녁에는 우리 뭐 먹을까’라며 문자를 보내던 애교 많은 아이였다. 중국에서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엄마, 아빠와 있고 싶다면서 올해 한국에 들어왔다. 아리셀엔 아는 언니의 소개로 들어갔다. 처음엔 주급을 받다가 나중엔 월급을 받게 되자 ‘나 일 잘하나 봐’ 하면서 좋아했다. 아이를 잃고 나니 날마다 꽉 막혀서 사는 게 진짜 힘들다. 바라는 것은 다른 것 없다. 한국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봐 달라.”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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