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는 북아프리카, 지중해에 접해 있는 아랍 국가다. 면적은 약 176만㎢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나라이고, 남한 면적(약 10만㎢)에 비해 약 17배나 큰 대국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이 사하라사막이기 때문에 실제 개발 가능한 면적은 해안가에 한정돼 있다. 인구도 약 700만명 정도로 국토면적에 비해 적다.
리비아의 기후는 북부 해안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우 건조하고 작열하는 태양만 있는 전형적인 사막기후다. 강수량이 250㎜ 미만인 지역을 사막기후로 지칭하는데, 리비아의 연평균 강수량은 26㎜로 극단적으로 적다. 참고로 전 세계 연평균 강수량은 약 800㎜이고,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다. 리비아에서는 수십 년째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곳이 많다. 비교적 비 올 가능성이 높은 고원지대에서도 5년에서 10년 사이 겨우 한 번 비 구경을 한다. 당연히 리비아에서 물은 중요성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과거 필자는 물 관련 과제를 수행하며 중동에 거주했다. 비가 오는 날은 중동인들에겐 신의 축복이다. 집 바깥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신께 감사를 드렸다.
의외로 리비아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내륙 사하라사막 지하 깊은 곳에 1만년 이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가 있다. 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 도시들에 물을 공급하는 대수로 공사를 한국의 과거 동아건설이 실행했다. 지름 4m, 총길이 4000㎞가 넘는 거대한 송수관을 사막을 가로질러 매설해 하루에 650만t의 물을 북부 지중해 연안에 공급하는, 20세기 단일 토목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1000만명의 인력과 500만대 분량의 중장비를 동원한 대공사 끝에 성공적으로 대수로 공사를 완공했고, 리비아는 한반도 면적 8배 이상의 땅을 농지로 얻었다. 대수로 공사의 통수식 날 메마른 사막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신기한 광경에 리비아 국민은 열광했다. 당시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는 성공적인 대수로 공사를 세계 8대 불가사의라며 치켜세웠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국기업이 중동에 진출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석유붐을 탄 중동 건설에 한국기업을 홍보하는 단골 수단이기도 했다.
리비아 대홍수
최근 물이 귀중한 리비아에 비가 많이 내렸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다. 지난 9월 11일 월요일 리비아 동북부 해안 도시 데르나에는 하루 만에 무려 414㎜에 이르는 비가 내렸다. 쏟아진 물은 도시 남부의 계곡 골짜기로 몰려들었다. 홍수를 방지하는 두 개의 댐이 존재했지만, 폭우로 인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한 댐이 터졌다. 이어 두 번째 댐도 터졌다. 댐이 터지며 형성된 거대한 물줄기가 쓰나미처럼 해안도시로 쏟아져 내렸다. 데르나 도심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9월 18일 현재 유엔(UN)은 약 1만13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만명 이상이 공식적인 실종자로 남아 있어 최종 사망자 수가 얼마로 집계될진 아직 불분명하다. 데르나 도시 인구가 약 10만명인데, 도시 인구의 10% 이상이 사망했다. 리비아 정부의 오사마 하마드 총리는 재해 복구 능력을 초월한 ‘대재앙’이라고 선언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변이 나타난 이유를 해수면 온도에서 찾고 있다. 올해 지중해 동부와 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3도 올랐기 때문이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량이 증가해 대기로 유입되고 폭우, 폭설,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바닷물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고 그 위력도 강해진다. 올여름 기록적인 더위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보유하며 더 많은 강우량을 가진 폭우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재앙을 단순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인명손실과 피해가 너무 크다. 같은 폭풍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그리스와 튀르키예, 불가리아에서는 약 20명의 희생에 그쳤다.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던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 사태에서도 사망자가 약 1700명(물론 파키스탄의 인명피해도 엄청나지만)으로 데르나 한 도시에 닥친 재앙의 크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이토록 한 도시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재앙의 퍼즐 조작
첫째 지리적인 특수성이 있다. 습한 지역에서 비가 오면 토양이 물을 흡수하고 홍수 위험을 완화하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와 반대로 데르나 같은 건조한 지역에서는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아 지표면에 머물며 빠르게 움직이고 갑작스러운 홍수를 일으킨다. 특히 데르나의 경우 강과 개울을 따라 흘러내린 퇴적물이 산맥 기슭에 형성된 위치에 있다. 마치 깔때기에 비를 모아 한곳으로 흘려보내는 배출구 마지막에 도시가 자리한 형국이다. 홍수로 인한 물이 갑자기 이동하며 많은 퇴적물과 잔해물을 운반하고 도시 중심부의 모든 것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렸다.
둘째,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인류의 큰 도시들은 물의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댐과 같은 홍수 조절 및 상수도 인프라 구축을 통해 물을 다스렸고, 이를 통해 문명의 번영과 활력을 얻었다. 데르나는 두 개의 댐으로 홍수를 방비했다. 이를 믿고 도시 중심지를 지나는 하천 주변으로 건축물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댐은 2002년 이후 유지·보수를 받은 적이 없었다. 댐으로 인해 물이 모이고, 댐의 붕괴로 모였던 물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시가지를 쓸어버렸다. 믿었던 댐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온 셈이다.
셋째, 리비아 정치 리더십의 분열과 무능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으로 카다피 권력이 무너진 이후 정치, 경제, 치안 등이 불안정해지고 전반적인 인프라의 퇴보로 이어졌다. 20년 넘게 수리를 미뤄온 데르나댐이 강력한 폭우로 붕괴할 수 있다는 논문이 2022년 발표됐지만, 정부는 관심이 없었다. 폭우가 강타했을 때 집에 머물라는 당국의 잘못된 지시는 인명 사상자 피해 규모를 키웠다.
데르나의 지형, 인프라 노후화, 폭우에 대한 부적절한 경고가 이미 재앙의 퍼즐 조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비를 했더라면, 댐의 유지·관리를 잘했더라면, 재난 대비 경보가 올바로 작동했더라면 리비아 대홍수의 큰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가속화된 기후위기가 퍼즐을 완성하며 치명적인 홍수 재앙을 일으켰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갈수록 더 많은 폭우가 발생하고 있다. 홍수는 더 위험해지고 큰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 주변의 약한 틈을 찾아내며 재앙의 씨앗을 뿌린다. 뿌려진 씨앗은 우리 무관심 속에 자라나며, 기상이변이 나타날 때 재앙의 꽃을 피운다.
리비아의 슬픈 소식은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