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특별기획드라마 '영웅시대'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MBC는 최근 '영웅시대' 조기 종영을 확정하고 그 배경으로 몇 가지를 내세웠으나 안팎으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MBC가 밝힌 조기 종영 이유는 ▲시청률이 낮고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데다 ▲오는 3월 시작할 정치다큐 '제5공화국'과 시대적 배경이 겹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제작비 부담과 ▲높은 광고단가로 인한 광고매출 부진도 단축방영의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 방침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의 외압설' 때문이다. '영웅시대'의 작가 이환경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서 '정치권 차세대 주자를 다룰 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니 주의하라'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 "방송사가 뭔가에 시달리는 게 뻔하지 않은가"라며 조기 종영 방침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국과 제작진 입장 달라

MBC가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을 확정적으로 발표한 이튿날인 지난 1월 12일 저녁 8시께 기자는 이 작가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으나 그는 속상한 탓인지 이미 술이 많이 오른 상태였다. 이 작가는 "내리라면 내려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정말 죄송한데 이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조기 종영과 관련된 속사정을 털어놓기 어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7월 첫 방영된 '영웅시대'는 100부작으로 기획돼 오는 6월 막을 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미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기 종영설이 흘러나왔다. MBC측은 지난해 말 작가에게 드라마를 2월 중순까지 마무리하라고 통보했고, 지난 1월 2일에는 출연진에도 조기 종영 방침을 전했다. 그리고 조기 종영 이유로 앞의 몇 가지를 들었다. 그러나 MBC의 설명은 정치권의 외압설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옹색한 변명으로 비치고 있다.

당장 이 드라마 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회사측이 밝힌 5가지 이유 모두 말이 되지 않는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시청률. '영웅시대'는 시청률 19.6%(TNS미디어코리아 조사)로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 뒤 25.9%까지 치솟았으나, 한때 13%대에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부 시작에 즈음해 시청률이 15~18%로 점차 올라가는 추세다. 지난 1월 11일 시청률도 17.9%였다. 이는 동시간대 프로그램인 SBS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20%)의 같은 날 시청률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나 KBS 미니시리즈 '쾌걸 춘향'(17.3%)보다는 다소 높은 기록이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20%에 육박하는 드라마를 가리켜 시청률이 저조하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며 "폭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시청률이고 배우들도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도 반론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 실제로 이 드라마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을 둘러보면 온통 조기 종영 방침을 비판하는 글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자 김상홍씨는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주는 드라마"라며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를 강제 종영하는 것은 시청자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주부 이미영씨는 "남편이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조기 종영을 아쉬워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박 전대통령, 이명박 서울시장을 미화한다는 비난이 시청자들 사이에 한때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제작진은 "이 드라마는 1961년 5-16군사정변부터 2003년 8월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까지 40여년을 다루는 드라마"라며 "박정희 전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때와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할 때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고, 상황이나 한 개인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그것을 미화라고 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드라마가 한창 진행중인데 성급하게 미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명박 시장을 모델로 한 박대철도 당초 80회 정도에서 사라질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는 3월 시작하는 '제5공화국'과 일부 내용이 겹친다는 데 대해 '영웅시대' 관계자는 "시대적 배경이나 내용이 겹치면 먼저 시작한 드라마를 끝내고 나중에 시작할 드라마의 방영을 늦추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인 미화로 구설수 겪어

그렇다면 MBC측이 드라마 조기 종영 사유로 새롭게 내세운 제작비 문제와 광고매출 부진은 어떨까. MBC 고위 관계자는 "'영웅시대'의 경우 편당 평균 2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있어 편당 1억원 남짓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일반적인 미니시리즈에 비해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영웅시대'와 같은 대작이 장기적으로 방영될 경우 다른 프로그램들의 제작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영웅시대' 관계자는 "1부에서 제작비를 많이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2부에 들어오면서 제작비를 절감해 오히려 적잖은 제작비가 저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제작비는 '영웅시대'보다 '제5공화국'이 더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반적인 광고시장 침체에다 광고단가가 높아 광고매출이 부진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MBC 고위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창사 특집드라마라는 점과 기업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해 고가의 요금을 책정했으며 일단 책정된 요금을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인데 광고가 부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MBC 광고국에 따르면 광고매출 부진은 '영웅시대'뿐만 아니라 일일드라마를 제외한 거의 모든 드라마에 해당되는 얘기다. 현재 영웅시대 시간대의 광고판매율은 50~60% 수준. '영웅시대'보다는 낫지만 주말드라마인 '한강수 타령'의 판매율도 60% 정도다. 전반적으로 광고시장이 침체된 탓이다.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소원영PD는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에 조연출 이민우PD의 이름을 빌려 이렇게 적어놓았다. "'영웅시대'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지는 드라마로서 허구를 가미한 픽션이지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여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논픽션이 아닙니다." 색깔논쟁에 이어 정치권의 외압이 들어오고, 급기야 조기 종영의 상황까지 치달은 한국의 방송드라마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므로 색안경을 끼지 말고 그저 드라마로만 봐달라는 제작진의 심경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