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알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정신을 기리는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이하 숭모회, 이사장 황인성)를 둘러싸고 차마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친일파 논쟁까지 오가는 등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안 의사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창복-김희선-김원웅 의원 등 참여

고소인 515명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숭모회에 가입한 회원들이다. 이들은 '안중근의사숭모회 개혁을 촉구하는 모임'(이하 개혁모임, 대표 이돈명 변호사)과 의견과 행동을 통일하고 있다. 개혁모임은 지난 6월 10일 프레스센터에서 "수구-냉전 색채를 띠고 있는 숭모회 이사진은 사퇴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기자회견에는 이창복-김희선-김원웅 의원,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법적 공방의 배경에는 이들 개혁모임과 숭모회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개혁모임은 "설립 이후 한 번도 총회를 열지 않고 정관에 나온 교육사업이나 사료 발굴에 관심 없는 숭모회는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려는 움직임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숭모회가 개혁모임에서 운영하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측 이사 7명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음에도 이들 인사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투옥되었던 사실을 들어 "전과자는 이사 자격이 없다"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숭모회에 대한 개혁모임의 불신은 태생적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숭모회가 설립된 이후 이은상-윤치영-백두진씨 등과 같은 친일파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해왔다는 것이다. 안 의사의 동상은 친일작가 김경승씨에 의해 제작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개혁모임측은 이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중근의사기념관 들머리에 '민족정기(民族精氣)'가 아닌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이라는 엉뚱한 휘호비를 남겼고, 최근 숭모회가 펴낸 〈대한민국 안중근〉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전투상황도를 사용하고도 아무 문제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공박하고 있다.

숭모회가 수구-보수적이라는 점도 이들의 불만이다. 개혁모임측은 "2002년 2월 제1차 숭모회 상임이사회에서 '천주교 신부 같은 친북세력 영입 주의'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이는 숭모회가 수구-보수-냉전세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나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현재 용산전쟁기념관에서 'X-file 안중근전'이 열리고 있다"며 "숭모회가 후원하는 이 전시회에 안중근 의사를 피고로 칭하고 있었다"고 분개했다.

숭모회 "윤치영 친일파 매도 지나쳐"

이처럼 개혁모임과 회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는 숭모회측은 이런 주장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김영광 부이사장은 소송에 대해 "대화는 하지 않고 헤게모니 싸움으로 몰아가려 한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개혁모임의 주장에 대해 "보수-진보로 편가르기를 해 분열을 조장한다"면서 "이는 안중근 의사 정신에도 맞지 않으며 선열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립 이래 총회를 한번도 열지 않은 데 대해서도 "회원도 부족했고 이사진의 자율적 헌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총회를 열지 않는 것이 관행화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 임원은 정관 규정에 의거 총회에서 선출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그는 "국가 지원금이 1년에 고작 몇백만원에 불과해 이사들한테 2백만~5백만원을 갹출해 운영하다보니 재정적 기반이 좋지 않아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사실 없다"면서 "그래도 한-영-중국어 등의 도록을 발간하고 사료 발굴을 위해 일본과 교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책자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에 관해서는 "인하대 윤병식 교수가 편집한 책인데 나중에 주위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지적당했다"며 "그 당시는 개정판을 만들고 싶어도 돈이 없어 손을 못 댔으나 지금은 수정 작업이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치영씨 등의 친일 부분에 대해 김 부이사장은 "이승만-이명신 등과 함께 하와이에서 독립운동한 전력이 있다"면서 "윤치영을 친일파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숭모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람이 와서 이사직을 물러나라면 물러날 수 있다"면서 "대화 없이 숫자로 밀어붙이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천주교는 오랫동안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봤는데 1993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복권(그는 이 말이 적당한지 어쩐지 모른다고 했다)시켜 숭모운동이 일어났다"며 "그러나 우리는 1963년 이래 많은 재정적 어려움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끌어왔는데 이제 와서 수구니 뭐니 하면서 몰아내려 한다"고 항변했다.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