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주48시간, 연장근로까지 60시간의 노동을 한도로 정했다. 이것이 주40시간, 연장근로까지 주52시간제로 바뀐 것이 2004년이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불타는 금요일’이 된 지 어언 17년인데, 주40시간도 아닌 주52시간제가 여전히 논란이다. 얼마 전 유엔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일주일에 120시간’ 발언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스타트업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한 것이라는 해명을 했지만, 결국 그들도 사용자다. 스타트업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청년들도 바짝 일하고 쉬는 걸 원할지, 아니 바짝 일한 뒤에 쉴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 특성상 노동법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은 스타트업 대표들뿐 아니라 모든 업계와 사장님의 하소연이다. 업계의 어려움은 산업정책으로 풀어야지, 노동자들을 쥐어짜게 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노사합의를 전제로’라는 부연도 있었지만,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나라에서 사업장 내의 노사합의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노동자들은 안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 대표와 합의’라는 문구가 수도 없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우리 사업장의 근로자 대표가 누군지도 모른다.

민주당도 윤석열 비판에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주52시간제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은 정부여당이다. 사실 주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였다기보다는 대법원 판결 일정에 떠밀린 것이었다. “연장근로는 1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조항에 대해 노동부는 ‘1주일은 5일’이라고 해석했고, 휴일근로를 별도로 쳐서 주68시간 근로가 가능했다. 법해석에 대한 소송이 있었고, 2심까지는 1주일은 7일이며 현행법상 주52시간이 한도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국회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1주일이 5일에서 7일이 된다는 입법을 했다. 대법원은 국회의 입법이 있었으니 그전까지는 1주일이 5일이 맞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주68시간제에서 주52시간제로의 급격한 변화를 현실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웠다는 고충을 이해할 만도 하지만, 상식에는 맞지 않는 입법과 판결이었다.

주52시간제가 입법된 후 기존의 장시간 노동에 익숙했던 ‘업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고, 정부여당은 이에 호응했다.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처벌을 유예했다. 사실상 법은 만들었지만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합의하라며 노동계를 밀어붙였고, 노동계는 이에 반발해 이탈했다. 결국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말한 주120시간까지는 아니어도 주64시간까지 바짝 일할 수 있다. 기준기간이 6개월로 확대됐으니, 4개월간 주64시간 일하고 2개월은 주28시간 일하는 게 가능하다. 주120시간이 무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주64시간은 괜찮은 걸까. 고용노동부는 ‘12주간 주60시간 이상 일했거나 4주간 주64시간 이상 일한 경우’를 과로사의 기준으로 인정한다. 주64시간 일해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민주당의 64시간과 윤석열의 120시간은 그야말로 ‘오십보백보’다.

이기중은 3수 끝에 당선된 정의당 관악구의원. 선거권을 갖기 전부터 진보정당 당원이었다. 만 40세로 청년은 아니지만 X세대와 묶이고 싶진 않은 1980년생이다.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핑계로 대학을 10년 넘게 다녔다. 공인노무사 자격증이 있지만 8년 넘게 야인생활이 이어져 마이너스통장으로 버텼다.

<이기중 정의당 관악구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