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사무장 병원에 관한 추적보도를 방영했다. 수많은 인터넷 언론들이 해당 내용을 갈무리한 기사를 내보냈다.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였던 김선웅 천안메인성형외과 원장(51)은 한 포털기사 밑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여긴 A(병원 이름)이지만 B, C, D, E 등등에서 유령수술하다 죽인 사람 꽤 많다고 알려져 있죠. 복지부는 실태조사도 안 해요. 의사들 사이에서는 대충 200~300명 죽인 걸로 소문 파다함. 수술하다 죽이고 3억5000 쥐어주고 보험처리하고, 보호자들 입막고 병원장은 보험회사에서 3억5000 돌려받고.”

B성형외과는 김 원장을 고소했다. B성형외과는 과거 성형수술 도중 여고생이 숨진 사건으로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던 병원이었다. 현재는 병원장이 바뀐 상태. 검찰은 지난해 12월 김 원장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3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충남 천안지역에서 소위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에게 30만원이라는 돈은 그리 큰 부담이 아니다. 돈만 내면 끝날 일이었다. 그는 그러나 벌금 납부 대신 정식재판을 택했다. 자신이 왜 그 같은 댓글을 작성했는지 재판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벌금의 몇십 배 넘는 변호사 비용도 들였다. 그는 “의사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상실된 유령수술 실태를 폭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성형업계에 독초처럼 자라나기 시작한 유령수술을 폭로하고 근절해야 할 의무가 없다. 다른 병원에서 유령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장애를 입었더라도 그의 책임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그는 스스로 피고인이 되어 9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피고인이 되어 9개월째 재판

그의 8번째 공판기일이 잡혀 있던 지난 9월 2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25호 법정을 찾았다. 오전 10시25분부터 시작된 재판은 낮 12시19분이 돼서야 끝났다. 2명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법정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섰다. 그들 모두 2014년 2월 김 원장과 함께 B성형외과 사망사건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성형외과 전문의들이었다. 그들은 김 원장이 댓글로 거칠게 적은 내용과 동일한 증언을 했다. “유령수술이 존재하고, 유령수술로 사망한 환자는 지난 10여년간 200~300명가량 된다”고. 그리고 “김 원장이 언급한 해당 대형 성형외과 의원은 실제 유령의사가 존재하고, 일부 병원은 100% 유령수술로 진행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사는 “만약 유령수술로 사람이 사망했다면 변사처리돼서 검찰이 인지를 하고 있었어야 한다.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했다. 재판장은 “성형수술로 지난 10여년간 500~600명의 환자가 숨졌고, 그 중 200~300명이 유령수술 피해자라는 명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했다. 주심판사는 “상식적으로 지난 10여년간 수십 명의 환자가 수술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텐데 몇백 명이라는 수치는 납득하기 어렵지 않냐”고도 했다. 김선웅 원장은 “나도 2014년 2월 의사회 자체적으로 유령수술 실태에 대한 사례를 직접 취합하기 전까지 이렇게 끔찍한 살인이 현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판사와 검사가 믿지 못하는 것처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과거 후배가 ‘섀도닥터’라고도 한다길래 ‘레지던트 같은 개념이냐’고 물었을 정도로 무지했었다”고 말했다.

법정에 들어온 3명의 의사(증인 및 피고인)는 환자가 사망했을 때 병원장이 유가족들을 상대로 합의를 진행하고, 적정선에서 합의금을 지급한 뒤 추후 발설시 몇 배의 위약금을 물도록 하는 등의 서약서를 작성하는 행태를 말했지만 검사와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의사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유령수술 실태와 공판검사, 재판장, 주심판사의 이해의 간극은 컸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을 낭독한다.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의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중략)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재판장도 믿지 못한 유령수술 피해자 수

유령수술은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을 정면으로 어기는, 의사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의사는 환자와 상담하면서 환자의 요구사항과 의사로서 가능한 부분 및 한계를 상의한 뒤 수술을 집도한다. 이 과정에는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데 유령수술에서는 환자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의사 또는 무면허 시술자가 유령처럼 등장한다. 합법·불법 여부를 떠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는 의사 정신에 배치된다. 환자는 마취에 든 뒤 깨어날 때까지 자신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자신이 상담한 의사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환자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그의 몸에 칼을 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증인으로 나온 차상면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2014년 5월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국민 사과를 하며 우리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내고, 보건복지부에 고발하고, 검찰에도 고발했지만 검찰이 기소하는 데만 3년이 걸렸고, 그나마도 우리가 고발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상해치사가 아닌 사기죄 단 하나로만 기소했을 뿐이었다”면서 “이게 대한민국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판장은 차 전 회장에게 마지막 발언기회를 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너무 삭막해지는 것 같아요. 책임감 없는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의사들이 점점)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판단하고, 수술하면서 ‘(이 환자는) 얼마 받겠다’는 식으로 돈에 얽매이다보니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 같습니다. 광고규제가 풀리고, 쇼닥터들이 생기면서 유령수술도 많아지게 됐습니다. 유령수술이 발붙일 수 없도록 부디 사법부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해주십시오.”

그렇다 한들 김선웅 원장이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유령수술과의 지난한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본인에게 아무런 실익도 없는 일을 벌이느냐고. 그러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삶이 나에겐 더 지옥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서라도 유령수술의 실태를 폭로할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더 후련하다”고 했다.

-그래도 피고인이 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왜 댓글을 달아 유령수술이 의심되는 병원을 알렸나.

“특정 병원을 비난하려고 작성한 게 아니었다. 유령수술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유령수술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 환자 자신도 모르게 유령수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이다. 내가 언급한 병원들은 이미 의사들 사이에서는 유령수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던 곳이었다.”

-공익적 목적은 이해가 가지만 판결이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다. 환자가 보호받아야 할 수술실 안에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데 그걸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 눌러놓는 게 맞을까. 아니면 내가 조금 다치더라도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게 맞을까. 내 눈앞에서 유령의사들이 근절되지 않고 꽃다운 아이들을 죽이는 현실이 생지옥이다. 이를 묵인하고 묵과하는 세상이 더 무섭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인가.

“사명감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의 양심이다. 수술실에 환자를 눕혀놓고 인간의 양심, 의사의 양심을 접어놓고 유령수술을 하고, 각종 불법적인 언행을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양심이 절대로 굽혀져서는 안 되는 곳 하나를 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수술실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를 믿고 누워 있는 환자들이다. 그 환자들이 의사들의 비양심적 행위로 숨졌다. 그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으로도 용인될 수 없지 않나.”

-결국 법정에 섰다. 재판을 두 차례 방청했지만 검찰과 법원의 인식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여러 의사들의 주장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공론화가 가능해 보이나.

“검찰이 벌금 30만원 약식기소를 했을 때 그보다 수십 배 더 많은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은 나라도 법정 안에서 이 일을 정식으로 말씀드려야겠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사님도, 판사님도 유령수술의 의미, 수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이 아닌 인간의 양심”

-벌금 30만원 약식기소라는 건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참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검찰 조사단계에서 피력을 해보지는 않았나.

“조사받을 때 다 이야기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정식재판 청구를 하고 나니 검사가 ‘법정에서 (진술)하시죠’라고 했다. 검찰에 계속 의견서를 제출하니 ‘당신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법정에서 하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여러 의사들이 수차례 이야기했고, 시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밝히기도 했지만 유령수술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안면윤곽수술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권대희씨도 변형된 유령수술 피해자였다. 나는 2014년 성형외과의사회 특임이사로 있으면서 유령수술에 대한 각종 제보를 수집하고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많은 케이스들을 봐왔다. 이건 공상과학이야기가 아니다. 괴담이 아니다.”

-의사들 내부적으로 자제하도록 권고할 수는 없었나.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차원에서 유령수술을 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공문을 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의사협회는 ‘법적으로 동의 없는 수술을 처벌하지 말자’고 나서고 있지 않나.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이다. 대표원장은 환자에게 자기가 집도할 것처럼 얼굴만 내보이고 봉직의들에게 수술을 돌려가며 맡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렇게 돈맛을 알아버린 사람이 한 번 돈에 미쳐버리면 하지 말라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유령수술이 문제가 된다고? 그러면 동시수술을 하면 되지’라고 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방법을 교묘하게 바꾼다. 이제는 환자 여러 명을 눕혀놓고 돌아가면서 수술을 한다.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 거기다 유령수술로 환자가 죽었을 때 의사를 살인으로 기소한 케이스가 단 한 건도 없다. 상해로 기소한 케이스도 단 한 건도 없다. 그러면 의사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거 처벌 안 되는구나!’”

-그냥 눈 감고 지내는 게 좋지 않나.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수술실 안에서 수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로 25년 이상 일했다. 유령수술은 곧 살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가 없다. 나는 지난 5년이 너무 무서웠다. 칼(메스)을 든 의사가 돈에 미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검찰과 사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줬으면 한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