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송정역에서 내려 차로 한참을 달리다보면 숲길을 따라 조그마한 학교가 나온다. 대안교육기관인 ‘지혜학교’다. 이곳에는 정규교과대로라면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123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학교는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사들여 만들었다.

지난 14일 <주간경향>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텅빈 운동장 한편에 두 마리의 말이 마구간을 지키고 있었다. 장종택 교장은 “4학년 아이들이 어제 60일짜리 인도·네팔 해외 이동학습을 다녀와 오늘 프로젝트 완성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고, 3학년들은 ‘멈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멈춰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학급 안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이나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수업을 멈추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갈등 해결에 필요한 시간에 따라 ‘반일(半日) 멈춰’, ‘종일 멈춰’ 등이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참고 가만히 지켜본다. 장 교장은 “아이들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교내를 설명해줄 수 있느냐’는 기자의 요청에 교장은 “알아서 둘러보면 된다”고 했다.

학교 모든 일은 학생들 결정으로

학생들은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배드민턴을 치는 아이도 있고, 축구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미니 도서관’이라 적힌 교실 한편에 혼자 앉아 책만 보는 아이도 있었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정한 각종 규칙과 회의에서 의결된 내용, 개선해야 할 사안들이 A4용지로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든은 학생이 주체였다. 현장학습 장소도, 심지어 찜질방에 가는 계획도 교사는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곳의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삼삼오오 모여 강당 겸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자신이 먹은 식판은 스스로 씻어 보관했다. 장종택 교장은 “아이들은 입학할 때 자기 식판을 들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메뉴는 시레깃국과 순대볶음이었다. 영양교사는 “네팔에 다녀온 아이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메뉴라서 순대볶음을 준비해 봤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 서로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입소할 때부터 휴대전화를 반납하기 때문에 2주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다. 규칙 역시 학생들이 실험과 토론을 거쳐 정했다.

지혜학교의 건학이념은 ‘지혜와 사랑’이다.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어른(편집자 주: 나이의 개념이 아님)을 키워내는 것이 이곳의 교육 목표다. 스스로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지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때문에 교과도 대부분 철학과 인문학이 중심이다. 끊임없이 읽고, 끊임없이 쓰고, 토론해야 한다. 장종택 교장은 “다른 대안학교에 비해 중도이탈률이 높은 편(4% 안팎)”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이상 책을 읽고, 사유하고, 토론하고, 글로 풀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현재 3학년 학생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아함경>을 배우고 있다.

지혜학교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교육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사실상의 학교’를 운영했다는 혐의다. 현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사실상 학교로 운영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67조 2항).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선 대안학교

장종택 지혜학교 교장이 재판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월 광주시교육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장 교장을 불러 조사한 뒤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지검은 지난 6월 장 교장을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일종의 본보기였다. 이 시기 광주의 한 종교계열 대안학교 기숙사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이 언론에 보도됐다.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대안학교를 비롯한 종교계열 대안학교 2곳과 지혜학교를 경찰에 고발했다. 2010년 설립된 이후 지혜학교가 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장종택 교장은 대안교육 관련 연수차 해외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행정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학교 폐쇄명령이 내려왔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교육청으로 찾아갔더니 초·중등교육법상 ‘학교’라는 문구를 대안교육기관이 써서는 안 되는데 썼기 때문에 폐쇄명령 및 고발조치가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냥 단순한 문서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안학교는 언제나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존재해 왔었다. 초·중등교육법상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인가받지 않은 모든 대안교육기관은 ‘불법’이다.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있는 법이었다. 전국 289개 대안학교(교육부 기준) 가운데 이 법에 따라 처벌받은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교육당국조차 이 법에 따라 대안학교를 처벌하는 것을 꺼려왔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공교육이 수용할 방법이 없는 한계상황에서 대안학교가 20년 가까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초·중등교육법 제65조(학교 등의 폐쇄), 제67조(벌칙), 제68조(과태료) 조항은 지혜학교를 비롯한 각종 대안학교가 설립되던 시점부터 이미 존재하던 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단 한 번도 이 법에 따라 처벌받은 자는 없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지혜학교에 폐쇄명령을 내린 지 7개월 만에 명령을 취소했다. 그러나 재판은 남았다.

광주지법 형사1단독은 장종택 교장에 대한 검찰의 300만원 약식명령을 철회하고 정식재판으로 넘겼다. 검찰의 약식기소 사건을 정식재판으로 넘긴 것은 재판부가 다뤄볼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지혜학교 측은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다. 초·중등교육법 제67조 2항 제1호, 제4조 2항이 헌법이 정한 청소년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 대안교육계 관계자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고 현재 상황을 해석했다. 법의 판단을 받을 기회가 없었을 뿐 사법적 판단을 통해 대안학교의 현 상황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2개의 대안학교는 선고유예

장종택 교장은 그러나 “재판부가 다음 기일에 선고를 하고,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기각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혜학교 외에 검찰에 동일하게 약식기소된 나머지 2개 대안학교 역시 정식재판을 통해 1차 변론기일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항소하지 않았다. 장 교장은 “이미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학교들이 선고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판단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지혜학교는 그러나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하더라도 헌법소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재판부가 이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면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중단된다.

장 교장의 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학교를 교육당국은 ‘미인가 대안학교’라고 불렀다. 교육당국이 대안학교를 ‘미인가’로 부른 이유는 너희(대안학교)가 (공교육에 비해) 모자라서 인가를 못 받는다는 기본적인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당국이 운영하지 않는 학교 외에서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다가 2005년 초·중등교육법 내에 제60조의 3(대안학교)이 신설되면서 교육당국은 ‘비인가’, ‘무인가’ 개념을 쓰기 시작했다. 우스운 게 ‘무인가’라는 개념이다. 예전에 교육청 강의에 나가 ‘무인가’에 대해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 ‘무(無)’라는 것이 불교에서는 상당한 화두이자 중요한 개념이다. 있다고 하자니 없고, 없다고 하자니 있는 것이 무(無)인데, 교육당국자들에게 우리 대안학교는 있다고 하자니 없다고 하고 싶고, 없다고 하자니 있는 그런 존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대안학교가 이제 법 앞에 섰다. 대안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기생하는 하나의 조항으로 존재하지 않고, 독립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법과 체계를 가지기 위해 공론화를 택했다. 앞서 ‘숲나-플레 10년 학교’가 지난해 3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사건을 1년 8개월째 방치하고 있다. 만약 재판부가 지혜학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이거나, 지혜학교가 별도로 헌법소원을 낸다면 2개의 대안학교가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셈이 된다.

지혜학교가 재판부에 제출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국가가 학교 인가주의 및 의무교육제도 등 국가 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인가제도를 수용한 시민만 보호하고, 인가제도를 수용하지 않은 시민은 완전히 배척한다면 인가제도를 배척한 청소년의 교육받을 권리, 보호자의 자녀교육권을 본질적으로 차별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현행 공교육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대안적 교육방식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학생은 매년 5만명에 달한다. 이들 다수가 머무는 ‘미인가 대안학교’는 법의 기준에 따르면 모두가 불법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사법부는 지혜학교가 던진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 지혜학교에 대한 2차 공판은 오는 28일 열린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