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이성이 아니라 성이 없는 ‘무성’인 것처럼 행동한다. 부모들의 자연스런 애정 표현을 보지 못하고 자라난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애정 표현에 서툴거나 안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성욕은 식욕과 함께 가장 강한 본능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장 강하다는 말은 그 본능을 만족시키려는 동력 역시 강하다는 말이고, 그 본능이 적당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긴장이 누적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한다는 뜻이다.
결혼한 경우에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 만족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부 간에 성관계를 적게 맺는다. 섹스리스(sexless)는 최근 1년간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인 상태를 말한다. 해외 논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평균 2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36%)은 일본(45%)에 이어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나라로 드러났다. 더구나 50대 이상 부부는 43.9%가 섹스리스인 것으로 파악됐다.
성욕성의 특징 보여주는 서양 가족관계
부부관계는 단지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친밀감을 돈독하게 해주는 핵심 수단이다. 부부관계를 통해 서로 애정을 확인하고, 즐거운 일이나 괴로운 일을 당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이 세계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분명히 일본과 한국에 공통적인 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족구조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축으로 하는 소위 ‘부(父)-자(子) 중심’의 문화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축으로 하는 가족관계에서는 무성욕성, 즉 가족 간에는 성적인 면이 무시되거나 억압되는 속성이 강하다. 우선 아버지와 아들은 동성일 뿐만 아니라 부자지간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는 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성욕은 이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는 부-자 간의 유대관계를 계속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한 아들이 부인보다는 아버지에게 더 친밀감을 느껴야 한다. 따라서 부-부 간의 애정관계는 억제될 필요가 있다. 만약 아들이 아버지보다 부인과 더 친밀해진다면 부인과 연대하여 아버지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서도 성적인 것이 무시되거나 억압된다.
이 특징은 남편과 부인을 중심축으로 하는 서구, 즉 ‘부(夫)-부(婦)’ 중심의 가족관계와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부지간은 남자와 여자, 즉 이성 간의 관계다. 그리고 성인 이성을 맺어주는 가장 강력한 힘은 성적인 매력이다. 따라서 서양의 가족관계는 성욕성의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가족관계는 성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부부 두 사람이 사용하는 침실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고, 어린 자녀라도 가능하면 일찍 다른 방을 사용하도록 교육 받는다. 이 침실에서 부부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서로의 성적 매력을 즐기고 또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한국 남성 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자녀들은, 설령 너무나 사랑하는 신혼부부라고 할지라도, 부모가 보는 앞에서는 그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 오히려 서로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덤덤하게 생활해야 한다. 동시에 부모도 자녀들 앞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을 한다거나 애정 표현을 삼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이성이 아니라 성이 없는 ‘무성’인 것처럼 행동한다. 부모들의 자연스런 애정 표현을 보지 못하고 자라난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애정 표현에 서툴거나 안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부부 간의 성적인 관계를 억압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에서 성욕은 결국 가정 밖으로 나가게 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 가정 안에서 해결 못한 성욕을 푸는 배출구를 가정 밖에서 찾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을 축으로 하는 가족문화를 가진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기생문화’ ‘첩문화’가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흥문화’가 번성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강동우성의학클리닉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같은 혼외 성관계를 외도라고 생각하지 않는 남성의 35.1%는 성관계를 쾌락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었다. 혼외 성관계 섹스에 관대한 남성일수록 쾌락 위주의 성관계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부인과의 성관계를 통한 친밀감과 유대감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외도했다는 비중은 남자(50.8%)가 여자(9.3%)보다 훨씬 높았다. 30대 남성(42.3%)보다는 40대 남성(48.4%)이 외도를 훨씬 많이 경험했고, 50대·60대로 갈수록 높아졌다.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일부 한국 남성들에게는 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가 있다. 우선 집안의 여성, 즉 어머니와 누이, 딸, 그리고 부인은 ‘성녀(聖女)’다. 이들은 성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또한 집안의 여자는 함부로 외간 남자에게 접대하는 것이 금지된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가정 밖의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대상, 즉 ‘성녀(性女)’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여성, 즉 성욕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다. 집안의 여성을 ‘성녀(聖女)’로 필요 이상으로 성적인 면을 배제시켜 놓은 대신 그 외의 여성은 지나치게 성의 색깔을 덧칠해 ‘성녀(性女)’로 인식한다. 그래서 외부의 여성들에게는 직장에서나 다른 사석에서 성적인 농담을 건네거나 추근대는 것이 오히려 남자다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남성들이 있다.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부인의 성은 억압되거나 집안의 남자 즉 아들과의 관계에서 간접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만족을 요구하거나 성욕을 표현하는 것은 ‘정숙한’ 여성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교육 받는다. 은연중에 이런 교육을 받은 여성은 집안일이나 육아로 피곤한 경우 쉽게 자신의 성욕을 억제하고 성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현재 한국 문화는 전통적인 부-자 중심의 문화에서 부-부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남녀 간의 애정 표현이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공공의 장소에서도 애정 표현을 하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부부 사이의 건강한 성관계는 삶의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 조사에 의하면 섹스리스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이고 성관계를 즐기는 부부의 결혼 만족도는 6.6점인 것으로 확인된다. 부부 간의 성은 단순한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본질적 요인이자 지름길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