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적인 근무가 시작된 10월 10일 오후 1시36분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2지구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공사현장을 굉음이 덮쳤다. 해체작업 중이던 20층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쓰러진 것이다. 한 달 뒤면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던 김모씨(56)를 비롯해 해체작업 중이던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김씨를 비롯한 4명의 해체작업자들은 작업 중 크레인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1명은 추락 중 줄에 걸린 상태로 구조됐지만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 3명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청 노동자들 열악한 노동환경 내몰려

타워크레인 사고로 올해 들어서만 12명이 사망했다. 최근 5년간 발생한 타워크레인 중대재해는 23건에 달한다. 올해는 아직 10월인데도 사망자 수는 이 기간 중 가장 많았다. 연도별로 보면 2012년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타워크레인 중대재해가 2013년 5건, 2014년 6건, 2016년 9건이 발생하는 등 점차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에는 건설업 경기가 회복되면서 노후 크레인의 사용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잦은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 노후 크레인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없으면 또 비슷한 비극이 재발될 우려가 높은 것이다.

특히 의정부 타워크레인 사고로 숨진 3명 모두 하청업체 소속으로, 하청에 하청을 준 재하청 구조 속에서 일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27년 된 노후 크레인을 해체하면서 내구연한에 관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은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들만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이 점은 올해 들어 발생한 대형 타워크레인 사고에서도 공통되게 드러난 문제점이었다. 지난 5월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등 역대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의 타워크레인 사고나, 3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 남양주 아파트 건설현장 크레인 사고에서도 사상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현장의 안전 감독과 관리가 미흡했던 것 역시 공통점이었다.

타워크레인은 붕괴되거나 휘어지는 등의 사고가 일어날 경우 사실상 인명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장비이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감독과 관리는 사고 발생 전부터 꾸준히 강조되어온 바 있다. 2015년 9월 경인국철 부평역과 백운역 사이 선로에 대형 크레인이 쓰러진 사고의 경우 다행히 사고 당시 전동차가 지나가지 않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킬 뻔한 사고였다.

이러한 재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 두 달 동안 타워크레인을 활용하는 공사현장 1400여곳에 기획감독도 실시했다. 법 위반이 적발된 414곳 중 일부는 사법처리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도 뒤따랐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의정부 LH 현장 역시 정부의 감독을 받을 당시 6개월마다 받아야 하는 안전검사에 시기를 놓친 사실이 드러나 크레인 1대마다 20만원씩, 총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바 있다. 뒤늦게 안전검사를 받았지만 이때서라도 보다 확실한 안전점검을 했다면 3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과태료 부과 중심의 정부 감독은 현장에서 사고를 막는 데엔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사고 우려는 현장을 여전히 맴돌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삼화 의원(국민의당)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노후 크레인 운용현황’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크레인 중 연한이 20년을 넘은 크레인의 비율은 무려 21.3%에 달했다. 의정부 현장에서 붕괴된 27년 된 노후 타워크레인과 같은 크레인들이 1271대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중국산 중고 크레인 등은 제작일자를 조작한 경우도 많아 실제 노후 타워크레인은 조사된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리모컨 무인조종, 너무 쉽게 허가

전국 17개 시·도에서 운용 중인 크레인은 모두 5980대다. 이 가운데 연식 20년 이상 노후 크레인은 경기도에서 381대로 가장 많았고, 서울 249대, 충북 124대, 부산 123대 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만들어진 지 10년 미만인 신형 크레인은 3272대(54%)로 절반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남양주 크레인 사고에선 정품 크레인 구조물을 사용하는 대신 사제 대용품을 바꿔 끼워넣어 사고가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아직 연식이 짧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해외 제조 크레인이 다수인 상황에서 정품 부품을 구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용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현장의 분위기상 사고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크레인 사고 중 발생하는 인명피해는 이번 의정부 현장에서처럼 설치와 해체작업을 할 때가 가장 많았다. 최근 5년간 사망자가 발생한 크레인 사고에서 직접적으로 설치 및 해체작업과 관련돼 사망한 인원은 22명으로 크레인 사용작업 중 사망자 12명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설치 및 사용단계에서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감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구조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를 낳는다는 점이다. 실제 타워크레인을 조종하고 있는 10년 경력의 건설노조 소속 한 조합원은 “건설현장에 설치되는 크레인은 원청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타워크레인 업체가 설치나 해체는 따로 하청을 주는 식으로 여러 번 다단계 하청을 줘서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가능한 한 인력도 장비도 싸게 후려쳐서 쓸 수밖에 없다”며 “원청에게도 강한 책임을 지우는 한편 실제 현장에서 감독이 이뤄져야 안전관리를 막는 관행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청은 감독책임을 손쉽게 회피하고 결국 하청 소속의 노동자들만 목숨을 잃는 건설현장의 산업재해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등의 자료를 보면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서 최근 3년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98%가 하청노동자일 정도로 건설산업에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중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자의 비율은 2014년 39.9%에서 지난해 42.5%로 증가할 정도로 이러한 추세는 전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사고 내면 원청에도 강한 책임 물어야

타워크레인 사고의 경우 ‘외주화’를 넘어 ‘무인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점도 우려가 높아지는 지점이다. 타워크레인을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단계에서부터 아예 조종석이 없는 크레인을 만드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전문성 때문에 인건비가 높은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들에게 나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건설자재를 들어올리고 옮기는 등의 작동은 연결된 리모컨으로 크레인 아래에 자리잡은 작업자들이 대신한다. 건설현장 사정에 밝은 건설노조의 한 간부는 “보통 지금까지는 타워크레인 조종 면허를 따는 데 학원을 다니는 기간이 1년 정도 걸리고, 그 후 2~3년 정도 보조 역할을 하는 기간이 있다”면서 “무인화 크레인 조종은 자동차 운전면허시험보다 더 쉽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인 크레인의 경우 조종에 필요한 수료증만 받으면 된다는 점도 문제지만, 실제 무인 크레인이 설치된 현장에서는 이런 면허 보유자 외에도 사실상 아무나 작동을 할 수 있게 해버린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도 주택가 등 3톤 이하의 소형 크레인을 사용하거나 무인 크레인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크레인 조종 면허가 없는 작업자도 신호수 역할을 하다가 크레인을 조종하는 등 안전대책이 미흡한 형편이다.

사고가 집중되는 설치·해체작업뿐만 아니라 타워크레인을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총체적으로 ‘외주화’ 때문에 안전은 뒷전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10년간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로 근무한 박종국 시민안전감시센터 대표는 “설치·해체 절차만 잘 지켜도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현장에 공사가 잡혀 있다면서 빨리 작업을 끝내라고 강요하다보니 작업절차를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엔 타워크레인 업체가 설치·해체작업자를 다 보유하고 있어 장비의 기계적 특성이나 노후화 여부를 잘 알아서 바로바로 교체나 보수조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모두 외주화로 돌려 버려서 장비에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주화로 인한 타워크레인 설치·해체과정의 안전관리 미흡은 연쇄적이다. 최대한 많은 일감을 따내야 하는 하청업체는 연달아 잡힌 일정 때문에 현장에서 특정 기기에 고장이나 이상을 발견해도 다음날 잡혀 있는 다른 현장의 설치·해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두려워 지적하기를 꺼리게 된다. 박 대표는 “크레인에서 발견한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도 원청이나 발주업체들이 ‘왜 저렇게 까다롭냐’면서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외주화는 사고의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의 남양주 사고 이후 크레인 작업 위험경보를 발령하고, 크레인을 사용하는 전국 사업장을 기획감독했음에도 또다시 발생한 크레인 사고를 막지 못한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20년 이상 된 노후 타워크레인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의무화하고, 사망사고 발생 시 임대업체 영업정지와 설치·해체 노동자 자격 취소 등의 강도 높은 대책도 포함될 전망이다. 설치에서 해체까지 전 과정에 대해서도 원청이 필수적으로 감독할 것을 강제화하는 의무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현재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을 진행하는 설치·해체 팀은 건설현장에서 철저히 외주화된 노동자들로, 외주화 속에서 타워크레인 설치·해체업은 신고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적 허점이 존재하게 됐다”며 “현재 국토교통부가 민간업체에 위탁해 진행하고 있는 타워크레인 검사는 안전검사와 완성검사 모두 국가기관에서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