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고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겉은 옛날 그대로지만 내장과 성능은 현대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이도 있다.

포니, 각그랜저, 티코. 모두 생산된 지 20년 이상, 40년이 넘은 차들이다. 이제는 폐차장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이 차량들을 새것처럼 고쳐 타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올드카 마니아. 이들을 위해 낡아 부서진 부품을 구하고 새로 칠을 해 말끔히 만들어주는 작업을 올드카 리스토어라 부른다. 국내에도 자기 이름을 걸고 낡은 차를 고치는 전문업체들이 자리를 잡았다. CJ가라지의 김창조씨도 그 중의 한 명이다.

고수라 부르기엔 앳된 얼굴로 보이지만 차를 만진 지 10년. 이름을 걸고 낡은 차를 만진 지 수년이 지났다. 새롭게 판을 키워가는 그 바닥에서 이미 신뢰를 얻었다. 지금 보기에는 불편하고 촌스러운 디자인의 티코며 각그랜저를 굳이 고쳐서 새것처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창조씨는 “차에 대해 일종의 로망을 가진 이들이 많다. 단순히 탈것으로 보지 않고 추억이나 어린 시절의 동경을 차를 통해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만족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자신이 타는 차가 가장 좋다는 마음이 올드카 마니아들을 열광의 길로 이끈다.

수십 년 된 차를 새것처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게는 서너 달에서 1년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비용도 새 차를 사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들 수 있다. 여러 모로 불편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추억을 되찾으려 한다. “낡은 차를 처음 가져왔을 때 주인과 상의를 한다. 어떤 차로 만들고 싶은가를 서로 의논하고 최대한 그 사람의 꿈에 맞추어 작업을 한다.” 하나의 차를 차주가 바라는 대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 올드카 복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기간 오래 걸리고 새차 값보다 더 들기도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은 대부분 부품 때문. 단종된 지 오래라 구할 수 있는 부품은 거의 없고, 폐차장을 뒤지거나 그것도 안 되면 수출했던 외국으로부터 거꾸로 수입해야 한다. 김창조씨의 경우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폐차장과 나름의 안면을 트고 있어 큰 자산이 됐다. 그는 “티코의 경우 중앙아시아로 수출이 많이 됐었다. 때문에 그쪽에서 부품을 수입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전국의 티코 마니아들은 대륙을 건너 부품을 공수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국내법상 한 번 폐차된 차는 되살릴 수 없다. 번호판이 살아있고 차대의 번호가 일치해야 도로 운행이 가능하다. 때문에 단순한 취미 용도나 박물관 전시 목적이 아닌 실사용 용도의 올드카 복원은 한계가 분명하다.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굴러갈 정도의 올드카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정비되고 복원된 올드카들은 단순한 고물차가 아니라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는 차량이다. “국내에는 구형차 복원문화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차의 성능과 안전에 이상이 없으면 운행이 허가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차량의 생산·운영·폐차 등에 엄격한 규제가 따른다. 전문업체들이 생기는 추세지만 일부 마니아층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어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올드카 복원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그가 현재 만지고 있는 차는 79년식 벤츠 450. 차 바닥이 부식돼 구멍이 뚫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차를 몇 달째 복원하고 있다. 겉 부분의 골격은 거의 마무리됐지만 내부 복원이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 반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김창조씨는 오래됐지만 성능과 구조는 감탄할 만하다고 설명한다. “시대를 건너뛰어 지금 기준으로 봐도 잘 만든 차다. 전자식 부품은 거의 없어도 모든 기능이 기계적으로 가능하도록 이루어졌다. 운전자의 의지가 기계를 통해 그대로 반영되도록 설계한 것이 어떤 점에서는 놀랍다”는 것이다. 차 자체의 완성도는 결국 운전자의 안전과 승차감, 주행성능으로 귀결되는데 그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차라고 이야기했다. “마치 외계인이 만든 것 같다”는 말 한마디가 그의 소감을 드러낸다.

오래된 차일수록 제조사 철학 엿보여
오래된 차일수록 제조사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기계적 정밀성을 우선으로 삼는 독일차나 생산성과 편의성을 내세운 일본차, 그리고 내구성과 힘을 내세운 미국차들의 노선은 분명히 달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외제차는 국산차에 비해 복원이 훨씬 쉽다고 했다. “단종된 차라도 대부분의 부품을 구할 수 있다. 외국 부품가게들에 수배를 하면 거의 구할 수 있고, 더러는 이베이를 통해 구하는 것도 있다.” 반면에 국산 차량들 중에는 폐차장에서도 부품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신차 위주의 자동차 정책으로 부품의 생산과 유통에 제약이 있다. 오래 된 차를 고쳐 타기보다는 새로운 차를 빨리빨리 만들어 파는 정책이 앞서다 보니 국산 올드카 부품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 아직도 1세대 포니를 운행하는 차주는 2대의 차량을 부품용으로 확보해두고 있단다.

차량을 복원하는 차주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막대하지만 수리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돈벌 수 있는 사업은 아닌 편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정비공장들은 돈 안 되고 복잡한 올드카 복원 일에 손대지 않는다. “1년이 걸리는 작업도 있고, 그 이상도 걸린다. 부품을 구하는 경비도 새 차에 비해 몇 배가 든다. 그러니 총비용에 인건비 비중을 너무 높일 수 없는 게 실정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이 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김창조씨도 본업은 자동차 정비팀의 일원이다. 그의 팀이 처리하는 작업들은 하루에 9대 이상, 한 달이면 200대 가까운 차량들을 고쳐서 먹고사는 일을 해결한다.

맡겨진 차량들처럼 그의 인생도 크게 궤도를 이탈했던 적이 있었다. 태권도 선수로 승승장구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어릴 때부터 흔들리지 않던 목표와 희망이 10대가 끝날 무렵 함께 사라져버렸다. 방황하던 시절 이른 결혼까지 했다. “집안 어른을 따라 건축 일을 배우러 따라다녔는데, 적성이 아니더라. 이 일 저 일 전전긍긍하다가 우연히 차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딱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고 차량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좋아서 할 수 있는 일, 기꺼이 걸어갈 길이 생긴 것이다. 그 와중에 눈 뜬 것이 올드카 복원이었다. “차의 원리는 옛날 차나 지금이나 똑같다. 옛 차들이 오히려 기계적인 원리에 충실하다. 처음 보는 차도 차근차근 원리를 따져 살펴보면 어렵지 않다.” 그는 가족들도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찍 결혼해서 일찌감치 아이 둘을 낳았는데, 올드카를 좋아한다. 집사람도 내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것이 고맙다”고 했다. 차는 망가지면 고쳐야 하고 인생에서 넘어지면 곧바로 일어서야 한다. 그는 다행히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복원하려는 차마다 저마다의 사연
먹고사는 일이 많은 사람의 꿈을 빼앗는다. 일터에서 하기 싫은 일들과 마주쳐야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용케도 생계의 곤란함을 비켜간 셈이다. 자기 꿈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꿈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김창조씨는 “정말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차량을 사온다. 그 불편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꿈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를 찾아오는 차들은 대부분 달리기를 멈춘 상태이다. 간신히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지난 세월과 고장의 흔적들은 차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김창조씨는 “엔진부터 겉칠까지 다 해야 하는데 제일 표가 많이 나는 작업은 판금 도색이다. 다른 것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겉모습은 즉시 평가를 받는다”고 말한다. 구멍 난 철판은 잘라서 때우고 겉이 평평해질 때까지 면을 고르고 밑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차주와 상의를 하고 색을 고른다. 원래의 색으로 갈 것인지, 현대적인 색으로 색다른 표현을 할 것인지 차량의 운명은 몇 차례나 바뀔 수 있다.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찾아와 새로운 운명의 색깔을 더한 채 돌아가는 것이 이 작업의 매력이다.

“이 차는 국내에 단 한 대밖에 없다. 1965년산 머스탱, 번호판을 가지고 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로는 유일하다. 다행히 엔진상태는 좋은 편이다.” 이제까지 했던 어떤 작업보다 그를 설레게 하는 작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1965년은 포드의 대중 스포츠카인 머스탱이 처음 생산된 해.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며 팍스아메리카나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던 시절이다. 그 속에서 머스탱은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스포츠카로 열광 받던 차량이다. 미국인의 영혼으로, 옛 시절의 영광이라 표현되는 차를 그의 손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창조씨의 설명은 “차마다 사연이 있는데 이 차의 주인이 너무 좋아해서 캐나다에서 타던 차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복원을 위해 여러 업체를 찾다가 그를 찾아온 것도 인연인 셈이다.

차를 고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겉은 옛날 그대로지만 내장과 성능은 현대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이도 있다고 했다. 머스탱의 경우 최대한 예전 상태대로 복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다만 아직도 차주와 어떤 차로 완성할 것이지 구상 중이라는 것이다. 예상 시간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약 1년.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는 “엔진 소리가 정말 우람한 차다. 8기통 엔진으로 말 달리는 소리가 난다”며 엔진을 살려 시동을 처음 터뜨릴 때의 충격과 감동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고 표현했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썼지만 차량 내부는 멀쩡한 편이었다. 이미 구해 둔 수리용 부품들이 차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올드카 복원을 하고 있지만, 결국 마이바흐나 AMG처럼 내 이름을 걸고 차를 조립하여 만드는 길을 가고 싶다. 계속하다 보면 국내에서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 김창조씨의 바람이다. 올드카 복원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 가고 있듯이 언젠가는 양산차량도 주문에 의해 갖가지 사양을 조합하여 만드는 때가 오리라는 것을 그는 믿고 있다.

편한 차, 비싼 차, 고급 차가 대중의 환심을 사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래되고 불편한 차를 고집한다. 저마다 따르는 가치의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얻는 길보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와 전진이 가능할 것이다. 한 분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연륜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진정 좋아하고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고수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들은 캄캄한 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자기 길을 만들며 걸어가기 때문이다. 김창조씨도 올드카 복원이라는 새로운 길을 통해 고수의 세계로 가고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