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등이 국교 정상화의 조건으로 카타르에 ‘이란과의 단교’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렸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이란은 걸프왕국들에 역내 최대의 불안요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에 아랍국이 아닌 몰디브와 모리셔스, 모리타니, 가봉과 세네갈까지 동참했다. 인도양 작은 섬나라들과 서아프리카 국가들까지 ‘반 카타르’ 전선에 뛰어들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아프리카 모리타니는 근래 아랍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지만, 몰디브와 모리셔스는 예상밖의 행보다. 공통점이라면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곳이다. 몰디브는 2015년 사우디와 대사관을 상호 개설한 뒤 투자협상을 시작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지난해엔 40년간 이어온 이란과의 국교를 끊었다. 최근 몰디브 남부 파아후환초에 대한 사우디 왕실의 100억 달러(약 11조원) 투자설도 흘러나왔다. 살만 국왕은 지난 3월 해외순방 때 몰디브를 방문하려 했으나 이곳에 신종플루가 돌자 일정을 취소했는데, 정부가 산호섬을 사우디에 팔아버리려 한다며 몰디브 내에서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알자지라 출범하면서 갈등의 골 깊어져

모리셔스는 지난해 사우디에 대사관을 열었다. 금융·통신·관광 육성정책을 펴는 모리셔스 정부는 바닷가 토지를 공짜로 내주겠다며 사우디 왕가를 상대로 한 투자유치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예멘을 공격하는 사우디를 도와 지상군을 보낸 모리타니도 2015년 파병 시점과 맞물려 대규모 투자 논의가 흘러나왔다.

사우디가 오일달러를 무기로 카타르 고립을 위한 외교 총력전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종교는 다르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이자 아프리카 자원부국인 가봉도 카타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세네갈 역시 카타르에 주재 중인 자국 대사들의 소환을 결정했다. 요르단은 카타르와 외교관계의 수준을 낮췄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3월 아시아 순방에서도 이미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규합에 나섰다. 사우디 국왕이 해외 여러 나라를 한 번에 방문한 것은 1970년 이후 처음이었는데 살만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몰디브, 요르단을 들렀고 일본과 중국까지 들렀다. 알자지라는 일본과 중국을 뺀 다른 순방국들은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인 동시에 수십년간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등 수니파 무장단체가 기승하는 나라들”이라고 보도했다. 몰디브의 경우 인구당 IS 전투원 가담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살만 국왕이 이 순방 때 이슬람군사동맹 가입도 요구했다”며 “테러 대응을 주도하는 나라로서의 위치를 굳히려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해외순방지로 지난달 사우디를 찾아 1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팔기로 계약하고, 이란을 비난하며 사우디에 힘을 실어줬다. 카타르를 따돌리면서 사우디가 내세운 것도 테러에 대항한 안보문제다.

주변 걸프국들과 오랜 기간 대립해 온 카타르는 1996년 카타르 왕실 지원 속에 알자지라가 출범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2014년 사우디가 주축이 된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이 카타르에 나가 있던 대사들을 소환했다. 당시 오만과 쿠웨이트가 중재에 나서 관계를 회복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

카타르-이란,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 공유

사우디·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집트·바레인 등은 카타르에 알자지라 축소를 포함, 국교 정상화를 위한 10대 요구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걸프의 ‘치부’를 밝혀내는 언론의 보도를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에겐 알자지라와 미들이스트아이(MEE) 등 카타르의 지원을 받는 매체들의 문제가 그만큼 중대한 셈이다. 이면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해온 카타르 왕실에 대한 불만도 있다. 카타르는 알타니 가문이 지배하는 군주국이지만 이 나라 왕실은 승계문제로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사우디 왕실과는 다르다.

개방정책을 도입한 전임 국왕 셰이크 하마드는 수도 도하에 서방 대학과 싱크탱크 등을 들여오는 한편, 각종 국제회의와 아시안게임, 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20년 월드컵까지 유치했다. 무엇보다 사우디를 거스른 것은 하마드가 2013년 ‘젊은 리더십’을 강조하며 1980년생 아들 타밈에게 생전 양위를 한 것이다. 사우디의 노쇠한 왕실은 자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우디 등이 국교 정상화의 조건으로 카타르에 ‘이란과의 단교’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렸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이란은 걸프왕국들에게 역내 최대의 불안요인이다. 하지만 이란과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전을 공유하고 있는 카타르로서는 이란과의 외교 단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대테러전을 앞세운 살만의 외교가 시아파 이란과 대척점을 만들어 사우디 이슬람권에서 위상을 제고하는 동시에, 국방장관인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MBS·32)의 후계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슬람군사동맹을 주도한 MBS는 사우디의 예멘 공격도 지휘하고 있으며, 사우디를 탈석유 국가로 만들기 위한 개혁 프로그램도 책임지고 있다. 왕위 계승 서열은 내무장관인 사촌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자(58)에 이은 2위이지만 ‘실세 왕자’로 불린다. 독일의 이슬람 전문매체 칸타라는 살만이 최근 인사를 통해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다면서 “MBS가 왕세자의 계승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걸프국에 힘 싣는 형국

카타르의 고립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이 표면상 중재에 나섰지만 사우디와 1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거래를 성사시키며 친밀감을 높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걸프국에 힘을 싣는 형국이다. 또 다른 중재자로 나선 쿠웨이트 측에 사우디는 “우리가 양보할 건 없다”고 선언하는 등 협상 분위기도 좀처럼 조성되지 않고 있다. UAE는 카타르에 우호적인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람은 최고 징역 15년형이나 50만 디르함(약 1억5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카타르에 대한 경제 금수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김보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bomi8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