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3월 26일까지, ‘여인’이라는 주제로 원본 작품 47점 전시
인상주의 회화의 대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생전 50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이 가운데 2000여점이 여성 인물화였을 정도로 르누아르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전 세계 30여곳의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에게 흩어져 있는 르누아르의 원본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르누아르의 작품 47점을 ‘여인’이라는 주제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그에게 여인은 창작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라는 미술사가 플라비 무로 뒤랑-뤼엘의 말처럼, 르누아르는 어린 소녀부터 파리의 여성노동자, 농사 짓는 여인, 부르주아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여성 인물화에 대한 독보적인 표현양식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 동행한 미술평론가 권혁빈씨는 “인상파는 전통주의의 엄격한 규칙에서 이탈했던, 당시로서는 ‘서브 컬처’이자 상류층과 구분됐던 ‘19세기 힙스터’들”이라며 “작가의 주관적 체험과 느낌을 드러내는 게 인상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여인, 그 안의 이야기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하듯 따뜻한 색채와 빛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여인의 초상들은 3월 2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만날 수 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하나의 주제로 단일 작가를 조명한 최초의 전시로, ‘르누아르가 사랑한 여성’을 중심으로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됐다. 르누아르의 뮤즈였던 그림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르누아르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두 소녀, 모자 장식하기>(1893)가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조카이자 베르트 모리조의 딸인 줄리 마네가 사촌인 폴 고비야르의 모자에 꽃 장식을 다는 모습을 담은 2인 초상화다. 어렸을 때부터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자란 줄리 마네는 부모를 잃은 뒤 르누아르가 후견인 역할을 해주며 각별히 돌봤다고 한다. 줄리 마네의 일기를 모은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이숙연 옮김, 다빈치 펴냄)이 2002년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르누아르 특유의 풍요로운 색감이 그림 속 소녀들과 어우러져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이름은 미시아 세르(1872~1954).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당시 파리 문화예술계의 유명인사였다. 기자들 사이에선 ‘파리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사교계의 명사였다고 한다. 말라르메, 프루스트 등 동시대 문학인들과 코코 샤넬, 피카소 등 문화예술계 인물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특히 샤넬에서 출시한 향수 ‘미시아’는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딴 것이다.
미시아는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에 모델로 자주 등장했는데, 르누아르는 물론 툴루즈 로트렉, 오딜롱 르동, 에두아르 뷔야르의 그림 속에서 그녀를 찾아볼 수 있다. 르누아르가 미시아와 친분을 쌓게 된 것은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타데 나탄손과 미시아가 1890년 후반 결혼한 이후부터였다. 초상은 미시아와 르누아르가 알게 된 지 한참 지난 1904년부터 그렸다. 1903년 미시아가 나탄손과의 두 번째 이혼 뒤 언론재벌 알프레드 에드바르와 결혼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르누아르에게 초상화를 주문하면서부터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모두 7~8점 정도를 그렸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작품은 3점이고, 그 중 한 점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인물의 특징보다는 화면 전체 구성과 조화에 집중한 듯한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를 느낄 수 있다.
2대에 걸친 르누아르가(家)의 뮤즈
작품의 제목은 <장미꽃을 꽂은 금발여인>, 모델은 앙드레 외쉴링(1900~1979)이다. 르누아르의 마지막 모델로, ‘데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니스에 피난을 왔던 그는 화가 마티스의 소개로 르누아르의 젊은 모델이 됐다. 1915년부터 르누아르가 사망하는 1919년까지 그의 주요 모델이었으며, 르누아르 사망 이듬해엔 그의 둘째아들인 장 르누아르와 결혼하게 되는 인물이다. 결혼 후 외쉴링은 ‘카트린느 에슬링’이라는 예명으로 192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해 남편 장 르누아르의 영화에도 다수 출연한다.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르누아르가의 ‘뮤즈’였던 셈이다. 머리에 꽂은 활짝 핀 장미꽃은 르누아르의 여성 인물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로, 르누아르 그림에서 곧 여성미의 상징과도 같다.
‘어린아이와 소녀’(1전시실), ‘일상의 여인’(2전시실)을 관람한 뒤 전시 후반부인 3전시실에서는 르누아르가 그린 가족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던 르누아르의 말이 가장 따뜻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이 초상들이다. 이번 전시로 한국에 처음 선보인 <어린아이와 장난감, 가브리엘과 르누아르의 아들 장>(1895~1896)은 그런 가족의 한순간을 포착했다. 훗날 영화감독이 되는 장을 돌보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은 르누아르의 부인 알린 샤리고의 사촌동생인 가브리엘 르나르(1878~1959)다. 장이 태어나던 해 집안일을 돕기 위해 르누아르의 집으로 들어온 뒤 20년 넘게 함께 살며 그의 작품 속 모델로 무수하게 많이 등장했다. 어린 장이 가브리엘의 품에서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는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비슷한 구도로 데생 여러 점을 남길 만큼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안에 걸려 있던 그림 중 하나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