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 대전고검 검사… 소영웅주의자인가, 검찰의 자존심인가

원희복 선임기자
2016.02.23

4·13 총선을 앞두고 창당과 인재영입이 한창인 요즘, 야권에서 영입 1순위로 꼽는 인물은 누구일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관계자에 따르면 영입 1순위에 있던 인물은 대전고검 윤석렬 검사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 불법개입 사건에 항거했던 인물이다. 경찰대 교수직 신분을 던지며 국정원 댓글수사를 촉구했던 표 전 교수는 더민주당에 입당했지만 윤 검사는 끝까지 정치 입문을 고사했다.

정치판에서,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스타 검사’는 매우 유용하다. 검사란 인기 요소가 많다. ‘악의 무리’를 쓸어버리는 속 시원함, 시대를 광정하는 정의감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특히 구조적 부정과 권력형 비리와 싸우는 시원한 이미지는 곧 ‘표’이고 ‘지지율’이다. 사회가 암울할수록 권력형 비리와 맞서는 스타 검사(요즘 젊은이 표현으로는 ‘사이다 검사’)는 매우 유용하다.

정치권 러브콜 마다하고 평검사로 버텨
1996년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당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제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정치 실세 박철언씨를 구속시켜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해진 홍준표 검사(현 경남지사)를 공천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요즘 YS의 차남인 김현철씨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때의 공천을 놓고 설전을 벌였는데, 이때 공천은 김현철씨가 주도해 개혁인물을 대거 공천해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서울 송파에 출마했던 홍준표 후보는 TV 드라마 <모래시계> 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은 유세차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선거운동을 해도 당선됐다.

2013년 10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던 윤석렬 여주지청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13년 10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던 윤석렬 여주지청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과거 홍준표 검사를 능가하는 ‘사이다 검사’가 바로 윤석렬 검사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사망한 사건 이후 ‘견(犬)찰’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최근에는 정치인에 대한 선별 기소로 ‘검찰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졌다. 이렇게 신뢰와 권위를 잃은 검찰에서 윤석렬 검사의 등장은 의외였다.

그는 지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직원을 체포했다. 게다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를 주도했던 윤 검사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2013년 11월 그는 상부에 보고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고검 평검사는 별로 할 일이 없는 한직이다. 특수부 부장검사로 자타가 인정하는 수사능력을 발휘했고. 지청장을 거쳐 행정능력도 쌓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를 바라보던 그가 졸지에 평검사로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지난 1월 인사에서 다시 대전고검 검사로 또 한 번 짐을 쌌다. 한직으로 계속 돌림빵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지역 법조계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해 검찰총장이 대학 동기일 정도로 나이가 많은, 말 그대로 ‘끝물’이다. 선배가 상급자가 되면 퇴직하는 것이 관례인 검찰 풍토에서 쉽지 않은 처신이다. 윤 검사와 대학 동기동창으로 절친한 문강배 변호사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에도 연락을 하고 사는데, (윤 검사는) 열심히 고검 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후배 밑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초월했고, 후배도 선배인 그를 존중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검사라면 ‘돈이나 벌자’고 일찌감치 박차고 나와 변호사를 개업했거나 정치권을 기웃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의 집요한 러브콜을 마다하고 검찰에 남아 있다. 환영해주지 않는 검찰에 남아 쓰디쓴 끝물을 마시고 있는 그는 분명 남다르다. 연구대상이다.

9전10기 끝에 사시 합격, ‘형’으로 통해
윤 검사는 1960년 서울 출신이다. 한때 윤 검사의 ‘출신지’가 인터넷 검색어 상위 순위로 나오고 출신지가 전라도일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 소문은 ‘그런 대형사고를 칠 기질을 가진 사람은 전라도 출신일 것’이라는 선입감을 가진 편협한 지역주의자들이 퍼뜨렸을 것이다. 윤 검사는 서울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부친 윤기중 전 연세대 교수의 고향은 충남 공주다. 윤 전 교수는 연세대와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을 나와 모교에서 통계학과를 만들어 후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다. 윤 전 교수는 한국통계학회를 만들고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의 정회원으로 있다. 윤 검사의 모친도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던 중 결혼, 교수직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윤 검사의 출신은 호남과는 관련이 없다. 단지 윤 검사는 흙수저나 동수저가 아닌 ‘은수저’ 정도의 집안에서 자랐다.

윤 검사는 서대문에 있는 충암고를 나와 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다. 동기동창으로 절친인 문강배 변호사는 “그는 재학 중 친구와 잘 어울리며 활달했고, 특히 의리가 있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관련한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출연해 현직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고 한다. 비록 모의재판이지만 유인물 몇 장 뿌려도 잡혀가던 서슬 퍼런 당시 현직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하기는 쉽지 않았다. 윤석렬 학생은 이 모의재판 후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법시험 운이 없었다.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에 합격하고 2차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후 9년간 계속 낙방했다. 당시에는 각종 고시에서 시위 전력이 있으면 탈락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가 전두환 정권에서 사시에 계속 낙방한 이유가 앞서 모의재판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9전10기 끝인 1991년 제33회 사시에 합격했다. 다른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형’으로 통한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더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렬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윤석렬 검사는 연이은 징계와 좌천에도 불구하고 끗꿋하게 검찰에 남아 있다. / 강윤중 기자

윤석렬 검사는 연이은 징계와 좌천에도 불구하고 끗꿋하게 검찰에 남아 있다. / 강윤중 기자

1994년 윤 검사는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첫 검사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특수부 검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수부는 비리사건, 특히 대검 중수부는 권력형 비리사건을 다뤘다. 그와 같이 특검을 했던 한 인사는 “특수부 검사는 단순히 법률만 알아서는 안 되고 범죄현상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한다”면서 “보통 검사들은 수사기록과 판례만 보는데,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등 경제흐름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윗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세인 경찰청 정보국장을 구속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그는 안희정(현 충남지사)·강금원 등 권력 실세를 구속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BBK특검팀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리고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니까 그는 역대 최고 정치권력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수사했던 것이다. 게다가 현대 정몽구 회장, SK 최태원 회장 등 굴지의 재벌 총수도 예외 없이 구속시켰다.

그는 최고 정치권력의 속성과 부정수법, 재벌권력의 속성을 모두 꿰고 있는 몇 안 되는 검사다. 그 정도 전문성을 가진 그를 징계하고 좌천시킨 이유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는 상관의 의지와 다른, 즉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찌든 검찰 수뇌부 입장에서 그는 ‘꼴통’으로 보였을 터이다.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들춰 찍어내린 권력의 입장에서 일개 부장검사를 ‘소영웅주의자’ 혹은 ‘돈키호테’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실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와 약간의 꼴통끼는 백지 한 장 차이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성향은 오히려 보수적이란 평가
그렇다면 인간 윤석렬, 검사 윤석렬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검사생활은 50이 넘어서까지 독신으로 산 두주불사형(재작년 결혼을 한 그는 요즘은 술을 많이 자제한다고 한다)의 수사검사다. 검사 시절 그의 별명은 ‘대윤’이다.(같은 특수부 윤대진 검사의 별명 ‘소윤’과 대비해 그렇게 불렀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같이 술을 먹어본 기자들은 대부분 ‘찌질하지 않은 통 큰 검사’라는 것에 동의한다.

문강배 변호사는 “그가 맡았던 주요 보직은 운동을 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능력으로 맡았던 보직”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조차 “윤석렬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검사”라며 “소영웅주의자라고 몰아가지 말라”고 일갈했다.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새누리당 의원조차 이렇게 평가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빅데이터로 분석하면 ‘사나이’, ‘기개’, ‘오기’, ‘정의’ ‘강직’라는 단어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의식은? 권력형 비리를 추적해 단죄해야 하는 특수부 검사로서 정무적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항명파동 직후 검찰 수뇌부는 그를 ‘정치검사’ ‘좌파검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013년 10월 민주당 박지원 의원(현 무소속)은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그를 증인으로 불러 “국정원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검사다, 친민주당이다라는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은 ‘제로’이며, 오히려 보수적 입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이재화 변호사(민변 사법위원장)는 “그는 민변 쪽 성향이 아닌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이라며 “검찰 독립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천상 검사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절친인 문 변호사는 “그는 외골수 검사라 하지만 아이디어도 많고, 정무적 감각도 있는 검사”라면서 “단지 권력에 순응하지 않을 뿐 정치를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향후 다른 행보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제 마지막 남는 의문이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찌질하게’ 검찰에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오히려 나가서 변호사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게다가 50세 넘어 처음 결혼한 부인이 대단한 재산가다. 그러니 찌질하게 검사 월급을 받자고, 지금 굴욕을 버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강배 변호사는 “그가 잠시 변호사를 하다 검찰로 돌아가면서 ‘그전에 나는 검사생활을 하며 보직·승진에 연연했는데 앞으로 어떤 자리, 어떤 보직이라도 개의치 않고 검사 본연의 일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아마 지금 심경도 그럴 것”이라고 전했다.

2014년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표를 내서는 안 된다”며 검찰에 남아 있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변호사를 같이 했던 이재화 변호사도 “지금 꼴보기 싫다고 나가 버리면 검찰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버티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진정 검사 윤석렬이 이 수모를 당하며 버티는 것은 검찰조직의 자존심을 위해서일까. 오히려 이 정권이 가면 이기리라는 믿음 때문은 아닐까. 정의는 결국 이긴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아마 윤석렬 검사는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진실을 확인코자 지금의 굴욕을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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