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가 발흥하면서 세계가 얻은 게 있다면 쿠르드 민족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터키와 이웃 나라들은 쿠르드 민족의 존재를 지금까지 덮어 왔지만 IS로 인해 그 베일이 벗겨졌다. IS에 핍박당하면서도 끝까지 맞서 싸워 승리한 쿠르드 민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올해 초 시리아의 ‘코바니’에서 IS를 물리치면서 세상에 알려진 쿠르드 민족은 오랫동안 민족국가 수립을 염원해 왔다. 그리고 코바니에서 아랍세계에서는 최초로 민주주의적인 정치제도를 실험적으로 실천하면서 성공한 사례를 남겼다. 코바니에서 민주화 사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나가자 IS가 침공해 파괴해버린 것이다.

쿠르드족 국가건설 결사 방해하는 터키
이라크 북부의 마수드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디스탄 정부는 국제적인 승인만 받지 않았을 뿐 정부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행하고 있다. 단지 IS와의 충돌로 인해 국가로서 갖춰야 할 영토가 제대로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쿠르드 민족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은 모두 IS의 침공에 의한 것이다.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던 게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브르 협정’에서 논의됐다가 무산됐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다시 논의가 재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이 무너지고 시리아와 이라크, 터키에 사는 쿠르드 민족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지금의 상황에서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에 대한 전망은 어느 때보다도 밝은 편이다.

그럼에도 쿠르드 민족의 국가 건설을 결사적으로 방해하고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터키다. 코바니에서 쿠르드민병대와 IS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터키가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쿠르드 민족에 대한 적대성 그 자체였다. 쿠르드 민족이 IS에 패배당해 모두 학살당하기를 바라는 듯한 저주 섞인 말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현재 터키로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터키 동부지역에 사는 쿠르드 민족에 자치권을 주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서로 사이좋게 사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전처럼 쿠르드 민족에 대한 억압정책을 계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결과적으로 터키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계속 실추시켜 터키라는 국가가 붕괴하는 지름길이다.

IS 지원하는 사우디도 붕괴시킬 대상
그럼에도 터키는 후자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군부가 실세인 터키에서 전자의 정치적이며 타협적인 방법으로 쿠르드 민족의 분리 또는 독립을 막는다는 건 오토만제국의 전통을 이어온 터키 군인의 길이 아니다. 오토만제국의 위대한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터키의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계속 실책을 저질러 왔다. 쿠르드 민족에 대한 강도 높은 억압정책은 곧 세계에서의 고립을 의미하며, 내부적으로는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는 터키의 완전한 붕괴를 목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받는 IS의 교육제도나 형법체계도 사실상 사우디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현재 IS가 점령한 땅도 사우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이어서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국경이 확정되면 IS는 사상적 모국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사우디와 통합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단지 남는 문제라면 IS가 이슬람제국인 ‘칼리파’를 선언했고,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칼리프’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우디 왕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다.

외부의 시각에서는 샤리아법을 적용하는 IS나 사우디나 거의 비슷해 보여도 내부의 시각에서 보면 사우디와 IS는 큰 차이가 있다. IS가 추구하는 권력은 순수한 이슬람의 종교권력이지만, IS와 같은 지하드(이슬람에서의 성전) 분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사우디 왕조는 단지 세속적인 권력일 따름이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세속적 권력은 적이며 붕괴시켜야 될 대상일 뿐이다. 당연히 서구세계와의 교류를 통한 지나친 세속화를 이유로 들어 사우디 왕조를 붕괴시키려 할 것이다.

사우디 왕실이 미국이나 영국과 밀착돼 있는 이유도 바로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슬람제국이나 이슬람국가를 목표로 하는 지하드 단체들의 목표는 이슬람세계와 서구세계의 완전한 단절이다. 서구세계와의 교류로 인해 순수한 이슬람문화가 변질되고 오염된다고 보고 있다.

1970년대 말에 발생한 ‘메카 점령사건’을 살펴보면 지하드 운동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다. 1979년 11월 20일, 이슬람 세계에서는 가장 신성한 도시이자 매년 수백만의 이슬람 세계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하지’의 도시 메카가 지하드 그룹들에 점령당했다. 약 500명의 무장 그룹이 ‘주하이만 알우테비’의 주도에 의해 메카의 그랜드모스크를 점거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의 진행 상황은 몇 주 동안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으로 다뤄졌다. 그랜드모스크의 점거를 주도했던 지도자 주하이만은 이를 점거하면서 “부패했고 사우디 문화를 서구화된 문화로 대체하려는 사우디 왕가의 퇴진”과 “이슬람의 원리주의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서구세계와의 단절, 여성들에 대한 교육 철폐, TV의 폐지, 비무슬림들의 추방 등도 이들이 요구한 내용들이었다.

메카의 무장 점거는 2주 이상 계속됐는데, 프랑스 정보부의 도움을 받은 사우디군이 점거당한 모스크를 공격하면서 끝을 맺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질로 잡혀 있던 민간인들과 급진적 이슬람 분자들, 사우디 군인 등 수백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진압이 끝난 뒤 체포된 67명 중 63명에게 참수형이 선고됐다. 1980년 1월 9일, 사우디 8개 도시의 광장에서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참수형이 실행됐다.

당시 점거에 참가했다가 탈출한 지하드 분자들은 소비에트에 대항한 아프간전에도 참전하면서 미래의 지하드운동의 지도자들로 성장했다. 반면에 사우디 왕조는 그랜드모스크를 점거당한 뒤, 무슬림 세계에서는 이미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깨닫고서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서방세계에 더욱 밀착하기 시작했고, 더욱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가장 원리주의에 가까운 길을 걸어온 사우디까지도 지하드주의자들의 눈에는 세속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지하드그룹들을 단지 테러단체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2003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알자르카위’가 주도하는 ‘이라크 알카이다’를 오랫동안 배후에서 지원했다는 이유를 추가로 들면서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려 시도했다. 부시 정부는 지하드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인들을 향해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지하드운동의 목표는 순수한 이슬람국가의 건설이며, 사담 후세인 정권 같은 세속적인 권력은 지하드에 의해 붕괴돼야 할 권력에 다름 아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당연히 지하드그룹과는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소극대응에 대한 의혹
IS의 테러공격은 지하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시리아나 이라크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국가들에서도 계속 서구세계와의 단절을 목표로 한 테러공격을 실행해 왔다.

지난 10월 말에 있었던 러시아 민간항공기에 대한 폭탄테러사건은 이집트나 시나이 반도로 오던 외국관광객들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에 튀니지에서 발생한 테러공격으로 38명의 영국인 관광객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튀니지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사라진 텅 빈 관광국가로 변했다. IS의 테러공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IS는 아랍국가들과 서구세계의 단절을 계속적으로 시도해나가기 위해 아랍국가 내에서의 테러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물론 IS를 완전히 격퇴시키는 길만이 해결책이지만, 완전한 격퇴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 기류가 형성돼 있다. 1년 반 이상을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중간지역을 점령하면서 계속 확장을 시도해 왔지만 미국과 유럽은 IS를 격퇴시키지 못했다. 격퇴시킬 수 있는데 격퇴시키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격퇴시킬 수 없는지가 많은 중동 전문가들이 던지던 의혹이었다. 아니면 IS의 격퇴보다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에 더 관심이 있는지.

그러나 올해부터 시작된 시리아 난민들의 대규모 유럽행은 시리아전과 IS 문제를 다시 전면에 부각시켰고, IS 격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미국과 유럽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틈을 타서 평화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러시아가 시리아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IS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시리아전에 대한 본격적인 개입은 시리아전의 양상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공습으로 IS의 많은 근거지가 실질적으로 파괴되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면서 영국에서조차도 러시아의 공습에 대한 지지율이 70% 이상에 달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일주일간의 공습이 미국이 1년 동안 해왔던 공습의 성과를 능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영국 정부가 12월 2일부터 IS에 대한 공습에 참여한 것도 바로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전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열강들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IS가 단기간 내에 붕괴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터키와 사우디 두 나라가 계속적으로 IS를 방어해주고 지원해주는 한 무너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IS도 안정된 영토를 확보할 때까지는 절대로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진행되는 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IS가 평화협상을 원한다는 소리는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평화협상이란 영토를 분할하는 협상으로, IS에 영토를 떼어주고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지금 IS의 잔인한 공세로 인해 세계가 처한 난민문제도 만만찮다. 수백만의 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불어나면서 유럽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들의 유럽행을 저지할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게 현실이다. 11월 29일 유럽연합은 터키에 30억 유로를 지급하는 대가로 터키 정부가 난민들의 유럽행을 막아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다. 터키가 자금을 난민들을 위해 사용할지도 미지수이며, 터키가 과연 적극적으로 난민들의 유럽행을 저지할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동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더욱 어렵다. 이라크가 수니파 무장그룹인 IS에 의해 계속 수세에 몰리면서 바그다드가 넘어간다고 가정할 때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시아파의 총본산인 이란이 IS와의 전쟁에 개입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중동 일대는 거대한 전화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앙숙인 이란이 IS를 공격하면 사우디도 이란에 맞서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두 열강들이 싸우게 되면 한 쪽이 쉽게 다른 한 쪽을 파멸시키기는 어렵다. 몇 년 동안 양쪽이 큰 진전 없이 줄다리기만 계속할 경우 평화협상이라는 명목으로 국경선을 그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전의 시리아나 이라크는 사라지고 거대한 IS가 대신 들어설 것이다. 반면에 아주 작게 축소된 이라크와 아사드의 시리아,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이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IS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시리아의 절반 이상의 영토가 이미 IS에 넘어갔다. 사실상 이전의 시리아는 사라졌고, 이전의 시리아를 회복하기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사우디와 IS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IS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요르단의 미래도 굉장히 불투명해지고 있다. 요르단도 IS의 침공을 받고 함락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단지 요르단의 안보문제는 이스라엘의 안보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예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IS를 둘러싼 세계 열강들의 불신
물론 현실성은 크게 없지만 다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가령 IS가 쿠르드나 이라크군, 그리고 러시아와 유럽, 미국의 맹공격으로 격퇴당하면서 움츠러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IS가 움츠러든다는 의미는 터키나 사우디가 움츠러든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 상황에서는 쿠르드 민족이 가장 큰 변수가 된다. 이라크 북부의 작은 영토만 가진 쿠르드 민족의 영토가 IS가 점령했던 시리아나 터키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독립국가의 수립 가능성은 현재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또한 IS와 맞붙어 승리한 이란의 세력이 당연히 중동에서 커지는 반면, IS를 지원해 왔던 터키나 사우디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미국의 중동에서의 지배력도 약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진다고 전망할 수 있다. 물론 IS가 평정되고 중동에서 전쟁이 끝났을 경우를 가정하지만 현실성은 매우 희박하다.

또 다른 하나의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더 큰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다. 세계 열강들이 모두 IS의 격퇴를 위해 중동에 모였지만 상호간에 IS라는 존재를 둘러싼 불신은 강하게 남아 있다. IS를 공격하겠다는 나라지만 IS를 지원하는 나라는 아닌지, 아니면 IS를 폭격한다면서 정보나 빼돌리지는 않는지 등의 불신을 여전히 갖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이 모두 협력해서 IS를 격퇴하기보다는 IS를 어떻게 격퇴할 것인가로 분열되면서 중동에서 맞붙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터키가 러시아 폭격기를 격추시킨 상황이 재발할 경우에는 러시아와 미국, 유럽이 모두 전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는 세계 전체가 핵전쟁의 위기에 노출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아랍의 민주화 바람은 IS의 발흥으로 인해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이 때문에 IS가 발흥하면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쇠퇴한 데 대해 의혹이 존재한다. 사실 IS가 점령한 곳에서는 민주주의나 자유, 평등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게 됐으며, 아예 이런 단어들은 금지어로 지정됐다. 당연히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왕정이나 독재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던 중동의 지배세력들은 민주화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IS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IS가 흥하게 되면 당연히 중동에서는 민주화니 자유니 하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오직 전쟁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간혹 IS와 같은 반동적인 세력이 등장해 인류의 전진을 가로막았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인류의 역사 발전이 후퇴하는 법은 없었다.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일시적인 후퇴였고, 다시 전진은 계속돼 왔다. 무엇보다도 IS의 발흥으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이 절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종교적 맹신이라는 사실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연재 끝

<하영식 분쟁전문 저널리스트(<분쟁전문기자 하영식 IS를 말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