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청전 이상범 화백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이 없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도난문화재’ 목록에 ‘소재불명’으로 청전 이상범 작 충무공 영정이 등재됐다.

문화재청이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김태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충사 관리소는 청전 이상범 작 충무공 영정을 비롯한 우의정 증직교지, 감결, 을미일기 등 4건의 유물을 도난문화재로 등재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의정 증직교지와 감결, 을미일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미 없어진 것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청전 이상범의 충무공 영정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도난문화재 등재 요청은 지난 4월의 <충민공계초> 유출 사건과 관련이 있다. <충민공계초>가 종가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충사는 그동안 탐문을 통해 추적해 왔으나 소재가 불분명했던 4건의 유물에 대해 지난 6월 18일 도난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충무공 이순신 종가서 보관 중 없어져
1932년 현충사 중건 당시 그려진 청전 이상범의 충무공 영정은 융복 좌상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1949년 이당 김은호 화백의 충무공 영정으로 교체됐다. 1953년에는 이 자리에 월전 장우성 화백의 충무공 영정이 걸렸다.

이상범 작 충무공 영정은 충무공 이순신 종가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현충사 관계자는 “2009년 충무공 종가의 유물을 조사한 후 일부 유물을 현충사가 위탁 관리하게 되면서 이상범 작 영정의 행방에 대해 종가에 문의한 결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종가의) 컨테이너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는 종가의 이야기가 있어서 직접 컨테이너에서 영정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충민공계초> 유출 사건으로 경찰에 압수된 피의자의 물품을 둘러봤으나 여기에도 이순신 영정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1972년 작고한 청전 이상범 화백은 동양화 산수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이상범은 1931년 춘원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이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때 삽화를 그렸다. 당시 현충사의 토지가 경매시장에 나와 일본인에게 팔릴 위기에 처하자,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국민 성금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 2만명의 인원으로부터 1만6000원을 모금해 이순신 종가의 빚을 갚고 현충사를 중건하는 과정에서 이 영정이 만들어졌다. 위당 정인보와 춘원 이광수가 이 영정 제작을 청전 이상범에게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1932년 5월 29일자에는 ‘현충사를 중건한 후 그곳에 모실 충무공의 영정은 이상범 화백이 통영에 출장하여 충렬사와 한산도 제승당에 안치한 영정을 대본 삼아 전후 2개월 동안 정력을 들여 완성했다’고 나타나 있다. 해방 이후 동아일보에 보도된 회고에서 이상범은 “일본 연호를 쓰기 싫어 이 영정 뒤쪽을 살짝 뜯고 단기로 연대(4265년)를 기입하고 다시 풀로 붙인 것은 당시의 편집국장이던 춘원과 나만이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충사 관계자는 “(이상범 작 충무공 영정이) 비록 지정 문화재는 아니지만 청전 이상범 화백이 한국 화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면서 “게다가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영정인 만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청전 이상범이 고증을 열심히 해서 그린 영정에는 무관의 늠름한 모습이 잘 표현됐다”면서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한을 모아 그린 작품인데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