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로운 것이 다 그렇듯 <아웃사이더> 역시 몽상에서 출발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9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전투적인 글쓰기를 하는 지식인들이 힘을 모으는 잡지가 있으면 좋겠구나, 그게 가능만 하다면 세상에 참 유익하겠구나, 혼자 생각했던 게 <아웃사이더>의 시작이었다. 한국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극우 집단주의라는 데 전적으로 뜻을 같이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싸움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연대한다.”

2000년 4월 격월간지 <아웃사이더> 창간사다. ‘전투적인 글쓰기’ ‘유익’ ‘지식인’ ‘싸움’이라는 단어는 당시 글쓰기의 형식을 짐작케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소위 ‘논객’들은 반공주의에 기반한 구체제와 싸우며 유익한 계몽과 새로운 도덕과 규범을 지향했다. ‘지식인’의 의미는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가 아니라 성역과 금기를 깨는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논객시대’의 저자 노정태 칼럼니스트는 당시의 전투적 글쓰기를 했던 ‘논객’들을 “‘사회과학’이 몰락한 후에 담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로 언론매체의 지면을 이용해 논지를 펼쳐온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적 양극화서 비롯된 일베 등장
실제로 이들의 전투적인 글쓰기를 통해 극우 이데올로기가 균열하고, 새로운 담론과 규범들이 싹을 틔우는 모태가 됐다.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에서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겨냥해 비판한다. 그는 <인물과 사상> 2권 ‘왜 박정희 유령이 떠도는가’에서 박정희를 모델로 쓴 소설가 이인화의 <인간의 길>을 작가의 영웅 콤플렉스 투사로 비판한다. 진중권은 한국 사회의 극우 이데올로기와 반여성주의, 군대문화 등을 비판한다. 2001년 부산대 여성 웹진 <월장>이 예비역을 상징적으로 내세워 군대문화를 비판하자 ‘예비역’ 지목에 분개한 남성 네티즌들이 월장을 공격한다. 진중권은 이들의 공격이 반여성주의라고 비판한다.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문화’나 ‘딴지일보’는 운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설파한다. 논객들의 글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는 부지런히 오래된 좌표를 지우고 새로운 좌표를 찍어 나갔다. 노정태 칼럼니스트는 논객시대에서 당시를 “시대와 온몸으로 호흡하고 교감하는 사람들이 한 수 한 수 돌을 놓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논객들의 시대라는 큰 바둑판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말과 글이 풍성했던 이 시기는 한국 사회에서 인쇄문화와 담론문화가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에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1990년대 중·후반에 구축됐다”고 정의하며 당시 폭발적인 문자문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천 교수는 “출판의 클라이맥스도 1990년대가 절정이었다. 1990년대가 갖는 의미가 있는데, 해방 이후에 계속된 분단, 전쟁, 독재, 가난 이런 것들에서 한꺼번에 탈출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모순들은 계속 작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이나 운동들로부터 풀려나는 듯한 느낌들이 실제 있었다”고 말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와 정권교체로 자유민주주의가 본격화됐고 미디어 환경이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 중·후반을 시작점으로 이어져 내려온 오늘날에도 당시를 추동했던 문화적 다양성이나 민주화가 명맥을 잇고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이것들의 의미는 결국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고 많이 희석됐다는 지적이다. 노정태 칼럼니스트는 그의 책에서 “논객시대를 지배하던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인터넷이 발달하고 대중이 지식의 소비자이자 창조자로 등장하게 되면서 한때 엘리트 시대를 지나 ‘대중지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지식인의 수직적 계몽에서 벗어나 대중이 수평적으로 지식을 창출하고 향유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였다. <대중지성의 시대>를 쓴 천정환 교수는 “블로그 등이 보편화되고 대중지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동시에 믿을 만한 권위가 사라졌다. 계몽의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다. 대중이 과잉계몽됐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마디로 대중이 모르는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이 아는 만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계몽주의자들은 교육과 대화와 토론으로 일깨워야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 있다는 기조 아래 대중지성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한때 대중지성의 시대
인터넷의 만개로 잠깐 촉발됐던 대중지성의 시대는 ‘지성의 대중화’나 ‘다원화’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보편화시키는 데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보다는 인터넷이 지역과 계층 간 차이를 확대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영국의 조셉론트리재단은 한 연구보고서에서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역과 개인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고 있지만, 이 같은 정보들은 같은 계층끼리 모이고 다른 계층들을 배제시키는 데 이용되는 경향이 높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백지운 교수는 글로벌 발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글로벌한 정보인프라의 출현을 통해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은 지구촌이 형성되는 듯하지만, 사실상 사이버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정치적·문화적·경제적 관점과 입장이 비슷한 사람과 공동체를 형성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인터넷은 자기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키우기보다 상대를 적대하는 소국들로 분열되는 ‘발칸화’의 위험을 더 많이 낳는다.”

한국 사회에서 공론장의 ‘글로벌 발칸화’는 정치적 양극화에서 비롯된 적대와 혐오의 언어에서 드러난다. ‘일베’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씨는 일베의 사상은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는 “일베는 자신만의 고유한 지역적·성적·인종적·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며 “성별과 지역, 정치적 지향에 대한 혐오감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문화적 해방구 기능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베의 기원을 진보좌파가 인터넷 공론장을 전유했던 데에서 찾는다. 일베가 강경진보의 거울이라는 것이다.

노정태 “새로운 것 나타나지 않았다”
양극화된 언어들은 실제 정치적 층위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정치언어의 양극화가 반정치담론만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에서 중도층이 증가했다. 이들 중도층은 진보나 보수가 너무 극단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온건 성향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정치의 공론장에서 드러나지 않으면서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세비를 줄여 특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정치혐오에 기반한 반정치담론이 여전히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언어의 양극화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정치권을 좋게 만드는 압력으로 유도하기보다는 민주주의 제도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이다.

전선을 긋고 기존의 구체제와 대립했던 논리와 이성의 언어들은 인터넷 시대를 통과하면서 다원화·다중화되는 흐름 속에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언어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고 전투적 글쓰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그 시기의 성취들 또한 무색해졌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1990년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인터넷이 공론장의 역할을 해줬고 인터넷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규범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이를 기반으로 시민사회의 역할들이 있었지만 그게 이제는 사라져버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여성의 권익 향상이 채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페미니스트’는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됐고, 극우 이데올로기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투쟁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여전히 그 모습을 강화시키고 있다.

쪼개지고 갈라진 SNS에서 파편화된 적대적 언어를 넘어선 새로운 언어를 발견할 수 있을까. 강준만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당파성이 강화돼 쪼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차이를 바탕으로 연대와 화합을 기대해볼 수 있을 거라고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판 자체가 심하게 파편화되어 있고 다원화된 가운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세상이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 지식인이라는 말도 이제는 좀 멋쩍어진 느낌이다. 책들도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처럼 거대담론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분열과 갈등이 심해 보이지만 과거처럼 단일대오 일심동체라는 발상 자체가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장기적으로는 쪼개진 후에 그 바탕에서 연대와 화합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멀리 보면 그렇게 갈 것이라고 본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