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때문인 줄만 알았다. 한 번 기침했다 하면 몇 분을 계속할 때도 생겼다. 흡연의 흔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로 나타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고 병원에서 들었다. 물론 담배 탓도 크겠지만, 따로 짚이는 게 있었다. 도로 가운데 교통섬에 서서 차량 운전자들에게 전단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더욱 심해졌던 기억이 났다. “의사한테 물어보니 그 일 해서 더 악화됐을 거래. 배기가스나 담배연기나 몸에 안 좋은 걸 들이마셔서 생기는 병이 이 병이라고.” 아직 50대지만 심모씨의 목소리는 여느 할머니보다도 더 쉬어 있었다. “그 먼지 덩어리를 매일마다 마셔댔으니. 일 마치고 코 파면 코딱지가 새까맸거든.”

심씨가 마신 미세먼지는 대부분 자동차 배기가스와 타이어 분진 등에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 미세먼지·초미세먼지의 출처는 다양하다. 공업단지에서 나오는 굴뚝 연기,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고 대기중에 배출한 각종 화합물,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비산먼지에 국경을 넘어 날아온 미세먼지까지. 입자의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를 미세먼지(PM10), 2.5㎛ 이하를 초미세먼지(PM2.5)라고 부른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짙은 스모그로 덮인 뿌연 하늘을 보는 일이 다반사였던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연간 평균보다 더 나쁜 봄철 수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국민들의 삶의 질을 비교해 업데이트하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가장 최근인 2013년 국제비교 자료 기준)은 36개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나빴다. 한국의 대기중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1㎥ 30.3마이크로그램(㎍)으로 칠레, 터키, 폴란드의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인 20.1㎍/㎥, 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인 20㎍/㎥에 비해 1.5배를 넘는 수치다.

그나마 30.3㎍/㎥라는 수치도 연간 평균일 뿐이다. 봄철의 실시간 미세먼지 수치는 훨씬 더 높다. 5월 15일 오후 5시 현재 한국환경공단이 발표하는 실시간 도시대기측정망 자료를 보면 세종을 제외한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국내 대기환경기준인 100㎍/㎥ 이상을 기록한 지자체는 6곳에 달했다. 이날 가장 낮은 오염도를 보인 제주와 전남에서도 평균 미세먼지 수치는 각각 34·36㎍/㎥를 기록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외에 강원·충북 등의 지역에서도 미세먼지 기준치가 훌쩍 넘어간다는 사실은 사실상 국내에서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장기적인 시점에서 보면 대기오염은 점차 나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개선되는 속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데다, 최근 들어 개선의 여지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불안요인이다. 서울 기준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2011년 47㎍/㎥에서 2012년 41㎍/㎥까지 떨어졌지만 2013년에는 다시 45㎍/㎥로 오르내리는 양상을 보였다. 2013년 미국 LA는 30㎍/㎥, 프랑스 파리가 26㎍/㎥, 영국 런던이 18㎍/㎥였던 점과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셈이다.

게다가 어두운 전망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피부로도 침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초미세먼지 배출원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59%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까지 에너지 소비량의 40% 이상을 담당해오던 무연탄 사용은 2012년 2.1%까지 줄어든 반면 발전용으로 쓰이는 유연탄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총 53기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만드는 전기가 총 전력 생산량의 39%를 책임지고 있다. 석탄발전 증가세는 최소 2020년까지 계속된다. 현재 건설 중인 11기의 석탄화력발전소에 더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의 13기 추가 건설계획까지 마무리되는 2020년이 되면 총 77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될 예정이다.

석탄 사용량 증가에 따라 초미세먼지 배출량도 늘어날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2013년 10월에야 실시간 수치 공개를 시작해 아직 초미세먼지에 대한 확정통계자료도 없는 상태다. 미세·초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내세우는 한편으로 사실상 정반대의 정책을 굽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로 계획된 ‘제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에서는 총 4조5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도권 미세먼지 연간 배출량을 35%, 초미세먼지는 45%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 증설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선 나와 있지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 통계를 보면 석탄을 비롯해 휘발유·경유 등을 연소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PM10)의 비율이 전체 미세먼지 배출량의 약 50%였다. 초미세먼지(PM2.5)의 경우 그 비율은 더욱 높아져 약 65%에 달했다. 여기에 이미 배출된 대기중 오염물질들이 화학적 반응을 거쳐 생성되는 2차 미세먼지 역시 대부분 연소 과정에서 나온 황산화물·질소산화물이 황산암모늄·질산암모늄 등으로 바뀐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서울 지역의 미세먼지 중 41.7%가 이런 2차 미세먼지라는 점에서 미세·초미세먼지를 줄이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발전용 석탄 사용 늘어 초미세먼지 증가
실생활에서 느끼는 미세먼지의 영향은 작지 않다. “코털을 자주 깎아줘야 되더라고요.” 지난해 4월부터 여건이 되는 한 빼먹지 않고 자전거 출근을 계속해 왔다는 이신우씨(37)의 말이다. 이씨는 서울 마포에서 강남까지 왕복 22㎞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코털이 길어진다는 것은 호흡하는 공기 중 걸러내야 할 오염물질이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늘어난 오염물질에 적응하려는 인체의 자연스런 반응이기 때문에 여기까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곤란을 겪는 건 이 다음부터다. “원래 아토피가 있긴 했는데 어느날부턴가 잘 안 가라앉더라고요. 처음엔 먹는 음식이 잘못됐나 생각하다가 의사 선생님한테 나쁜 공기 마셔서 그럴 거란 얘길 들은 뒤론 한여름에도 마스크 끼고 다니죠.”

미세먼지는 외부물질에 대한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생기는 천식·아토피 등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인체가 자연스레 이겨낼 수 있는 정도 이상의 미세먼지가 들어오면 도리어 자기 몸을 공격하는 등 교란된 면역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초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WHO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올라가면 단기간만 노출될 경우에도 사망률이 0.9% 올라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호흡기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1.3%,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1.1% 증가했다. 국제보건단체 세계질병부담이 집계한 자료에서도 2010년 한 해에만 초미세먼지 때문에 조기사망한 인구가 3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최신 연구에서도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 탓에 수도권에서만 1년에 성인 1만5000여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교수, 김순태 아주대 교수 등 공동연구진이 통계청·기상청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대기오염이 사망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대기오염의 영향으로 인한 성인 사망자는 수도권 30세 이상 연간 사망자 수의 15.9%에 달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미세먼지 때문에 내원 치료받은 환자를 질환 유형에 따라 분석한 결과 호흡기계 질환이 1만2511명, 심혈관계 질환 1만2351명, 폐암 1403명 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임종한 교수는 “국내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유럽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높기 때문에 특히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사망률을 낮추는 핵심이다”라고 지적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발표한 다니엘 제이콥 하버드대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진의 조기사망자 예측 모델도 미세먼지를 심각한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연구 결과 전체 대기오염 사망자 가운데 석탄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초미세먼지만으로 국내 연간 사망자 수는 최고 16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가 77개까지 늘어나는 2020년 무렵에는 연간 사망자 수가 최대 28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규 건설되는 석탄화력발전소가 평균 40년 동안의 가동연한 내내 3만2000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수도권 사망자 15.9%가 대기오염 영향
미세먼지가 치명적인 이유는 그 복합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외에도 카드뮴·비소·크롬 등의 중금속이 섞이는 데다, 고체와 액체 상태를 오가는 미세 입자에 달라붙은 바이러스나 세균까지 몸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피부나 안구, 호흡기계 외에도 핏속으로 들어가 심혈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도 그 미세한 크기의 영향이다. 노인들에게는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혈압이 높아지게 하는 등의 문제를, 성장기 아동·청소년들에게는 호흡기관 발달 장애, 신경계 및 뇌 기능 저하를 낳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는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중국의 공업지대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은 높지만 실제 중국발 미세먼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서울 기준 38% 안팎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62%, 더 많은 양의 미세먼지가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주변의 자동차나 멀리 떨어진 발전소나 마찬가지다. 서울에 국한해서 보면 서울시내에서 발생하는 27%의 미세먼지를 줄인다 해도 가까운 경기·인천 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만 25%나 된다. 지난해 제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에 실린 2024년 초미세먼지 전망에서도 2010년 대비 1차 생성 미세먼지는 줄어들지만, 2차 미세먼지 생성량의 증가로 대기오염도는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공기청정기처럼 실내공기를 정화시키는 제품은 물론 실내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일반 가정의 실내에서 시간대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가 높게 측정되는 경우는 대부분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를 통해 연료를 연소하면서 발생한 미세먼지일 확률이 가장 높다. 연료의 불완전 연소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외에도 고기 또는 생선 구이 중 입자 형태로 나오는 미세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 조리 중인 음식에 가까이 대고 호흡하지 말고 자주 환기를 시켜야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밖에 건물이 노후해지는 탓에 유입되는 내장·단열재 및 시멘트 성분에 대해서는 건물의 유지·보수를 통해 발생 가능성을 막으라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집진 필터를 사용하는 공기청정기는 제품에 따라 성능 차이는 있지만 공기 정화의 기능은 유효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한정된 공간 내의 미세먼지와 오염물질 외에 집안 구석구석까지는 효과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때문에 미세먼지 경보가 발표되는 때에는 외출 시는 물론 실내에서도 청소 등 미세먼지에 노출될 수 있는 활동을 할 경우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특히 사용량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석탄 사용을 규제하는 데서 시작해 풍력·태양열 등 대체에너지 이용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환경단체와 대기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울러 당장의 시급하게 일어나고 있는 미세먼지 발생 문제에 대해서는 점차 늘고 있는 2차 미세먼지 생성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국내 발전소에서 배출되고 있는 질소산화물은 그 자체로 오염원이면서 2차 미세먼지로 바뀌어 더 큰 피해를 입히는 주요 물질임에도 기준치 초과 배출시 정부의 과징금 부과 방침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손민우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정부는 주요 배출원인 석탄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수도권 대기질 개선을 위해 청정연료 사용이 의무화된 인천에서 진행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영흥석탄화력발전소 추가 증설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