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이루다는 그동안 내심 좋아하던 강 대리와 점점 좋은 사이가 된다. 하지만 백 과장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여지없이 백 과장이 죽고 다시 그 날짜가 반복된다. 루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백 과장을 죽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리님은 혹시 타임리프를 믿으시나요?” <죽어도 좋아♡>의 주인공 루다에게 어느 날부터 같은 날이 반복된다. 주인공이 대놓고 물었으니, <죽어도 좋아♡>는 타임리프, 타임슬립이라 부르는 시간여행물이다. 시간여행물은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 과학적 장치를 활용할 수도 있고, 불가사의한 힘에 기댈 수도 있다. <죽어도 좋아♡>는 후자에 해당한다. 여기에 한 가지 트릭이 더 추가되는데, 특정한 날짜가 반복된다. 이런 장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타임루프라고 부른다. 타임루프는 다른 장르와 이종결합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맨스와 결합하면 맛깔스럽다. 생각해 보라.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사람이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실을 맺는다 해도 다시 시간이 반복되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이라는 영화가 타임리프 로맨스물이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 ‘타임리프’
<죽어도 좋아♡>는 시간을 미끄러지고, 반복되는 타임슬립, 루프 장르의 틀을 가져왔고 여기에 로맨스를 결합시켰다. 구조만으로 보자면 <사랑의 블랙홀>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지만 다르다. <죽어도 좋아♡>는 <우리집 새새끼>의 작가 골드키위새의 작품이니까. <우리집 새새끼>는 작가와 사촌언니가 문조 두 마리를 기르며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생활·개그만화다. 골드키위새는 강렬한 제목처럼, 문조를 키우는 과정이 얼마나 고행인가에 대하여 말장난, 슬랩스틱, 패러디 등 다양한 개그를 동원해 설명한다. 반려동물이 나오는 생활툰의 감동 대신 고행의 개그를 선택한 <우리집 새새끼>의 작가 골드키위새가 타임리프 로맨스 장르를 그린다? 당연하게도 평범할 순 없다.

주인공 이루다 주임의 직장 상사 백 과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로맨스 만화의 흔한 주인공처럼 생긴 멋진 미중년이다. 그런데 백 과장은 생긴 거와 달리 심각한 여성 차별주의자다.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퇴물이라 말하고, 남자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게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튼 얼굴에 손대는 것들은 진정성이 없어” 같은 막말을 대놓고 한다. 백 과장에게 “눈매 더러운 여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 이루다는 백 과장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죽어도 좋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백 과장은 “생긴 것만 멀쩡하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악덕상사”다.

여직원들은 모여서 “진짜 마음만 같아선 살인청부라도 해서 죽여버리고 싶어!!”라고 말한다.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한 백 과장을 데리고 강 대리와 함께 나오게 된 루다. 한창 분위기가 좋았는데 술에 취한 백 과장이 차도로 달려나가 차에 치여 죽는다. 루다는 “차라리 이게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이 된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백 과장은 어제처럼 화를 내고, 어제처럼 회식을 하고, 어제처럼 필름이 끊긴다. 루다는 구토하는 타이밍을 맞춰 피하는 데 성공하지만, 백 과장은 다른 방법으로 죽고 만다. 계속 같은 날이 반복되고, 백 과장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상황이 조금 더 좋게 개선된다. 백 과장은 죽지 않고, 다음날을 맞이한다.

한국 ‘유리천장 지수’ 25.6점으로 꼴찌
여기까지가 2화에 전개된 이야기다. 이후 루다는 그동안 내심 좋아하던 강 대리와 점점 좋은 사이가 된다. 하지만 백 과장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여지없이 백 과장이 죽고 다시 그 날짜가 반복된다. 루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백 과장을 죽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러 가설이 나오고, 여러 번 상황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밑밥으로 깔았던 로맨스를 딛고 개그가 전개된다.

<죽어도 좋아♡>는 타임리프 로맨스 장르의 탈을 쓴 개그만화다. 이제 겨우 6화지만, <죽어도 좋아♡>는 웃긴다. 골드키위새 특유의 맛깔나는 대사도, 상황도, 상상력도 뻔한 장르를 다시 보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죽어도 좋아♡>의 힘은 뼈가 있는 웃음,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듯 신입 여사원들에게 ‘제레미 아이언스’를 닮았다고 좋은 평가를 받은 백 과장은 알고 보니 여성차별, 혐오의 아이콘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차별이 문제라는 건 구체적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고등교육과 임금격차, 회사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종합해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5.6점을 받았다. 25.6점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29.6점보다 낮은 점수로, 꼴찌다. 구체적인 여성차별을 개선해야 하지만, 오히려 사회는 여성혐오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결국 여성차별, 혐오의 문제는 합리적 이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죽어도 좋아♡>는 여성차별과 혐오를 타임리프 로맨스 장르를 가져와 풍자한다. 희극이 지닌 풍자의 힘은 <죽어도 좋아♡>의 뼈대를 세운다. 희극이 흐느적거리지 않고, 뼈대를 갖고 서 있기 위해서는 풍자가 있어야 한다. 풍자는 희극의 뼈대다. 세련된 풍자는 카타르시스를 넘어 변화를 가져온다. <죽어도 좋아♡>가 풍자한 여성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비난을 넘어서지 못하는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죽어도 좋아♡>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웃음은 민감함을 덮고, 그 안에서 공감을 끌어낸다. 적어도 <죽어도 좋아♡>를 보는 남자들이라면, 백 과장이 “알뜰하게 못돼 처먹은 새끼”라는 루다의 평가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

<죽어도 좋아♡>가 설계한 타임리프, 로맨스, 코미디 혼성 장르는 약간의 현실적 풍자를 비현실적 상황으로 흥미롭게 끌어간다. 누구라도 이 만화를 유쾌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말도 안 되는 백 과장이 <죽어도 좋아♡>의 칸 바깥에도 있는 걸 자꾸 목격하게 된다. 섬뜩하다. 국내 유수 재벌 총수로 중앙대의 전 이사장이었던 분은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보도되었다. 여성차별과 혐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대가성 금품을 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가는 박 전 이사장에게 여학생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난 도통 모르겠다. 루다의 골치 아픈 타임루프만큼 우리 세상도 이해할 수 없게 루프되어 돌아가는 것 같다. 아니, 이해할 수 있겠다. 루프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본이 있었으니까.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