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별것 아님을 똑똑히 파악하고 그것을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달관의 태도가 ‘병멋’이다.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새콤달콤한 병맛을 문화, 작품, 현상, 유머, 인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쏙쏙 뽑아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병맛통신’의 골자다.

병맛이란? 딸기맛, 바나나맛 같은 맛을 생각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 즉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니까. 병신이라니,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면 그러진 마시길. 장애인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좀 모자라지만 어째 마음이 가는 친구를 향해 아휴 저런 병신, 이럴 때의 다소 정이 담긴 용어다.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에서 맨처음 무악공고가 등장하면서 ‘병신 같은 맛’이라는 말이 처음 생겼고, 잉위 등의 병신 같은 맛 전문 만화가들이 나타나면서 ‘병맛’으로 줄여졌다. ‘루저’나 ‘잉여’ 혹은 더 크게 보면 ‘덕후’ 같은, 총체적 사회 개념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지 몰라도 자신이 이 중에 속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동정 섞인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 공감을 아예 유머코드로 승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너’들은 이 대화를 아예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병맛’의 진정한 매력이다. 병신 아닌 것들은 모르는 맛, 병맛. ‘2개 국어 가능, 토익 800점 이상, OA 능숙자’인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연봉 1700만원을 제시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중 자신이 ‘병신’이 아니라고 느껴본 청춘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 병맛은 다양한 문화코드 중에서도 가장 기성세대가 이해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비교적 ‘병신’으로서의 삶을 덜 살아본 삶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해지는 정화 효과
이런 병맛 코드들은 기승전결, 육하원칙에 충실한 내러티브의 기본 골자를 깨뜨리는 것이 기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상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가다가 끝에 가서 갑자기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희한한 결말을 맞는 것이 병맛 스토리텔링의 핵심. 이걸 웃기려고 이러는 건지, 진지하려고 이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병맛의 특징 중 하나다. 언뜻 인터넷 서브컬처 유행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점점 자신이 원치 않게 ‘병맛’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느끼며 자포자기의 유머로 ‘삼포 세대’ 혹은 ‘7포 세대’라고까지 불리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달관해 버리는 청년들이 늘어날수록 이 맛은 점점 다시다처럼 젊은이들에게 빠지고 넘어갈 수 없는 조미료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이러한 ‘병맛’의 치명적인 매력은 별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무슨 생각을 해도 ‘기승전병’으로 끝나기 때문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뭐야, 하고 ‘빵’ 터지면서 머릿속이 탄산을 터뜨린 듯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해지는 정화 효과까지 맛볼 수 있다. 이러한 매력도 병맛이 단순히 반짝 하는 마이너 코드가 아닌 당당한 우리 사회의 맛으로 정착할 수 있을 가능성이기도 하다. 심지어 2015학년도 숙명여대 논술에는 인문계열 문항으로 ‘병맛’에 대한 내용이 출제되었다. 제시문에는 병맛의 시작과 병맛으로 유명한 웹툰들이 언급되었으며 다른 제시문의 논지를 이용해 병맛이 유행하는 현상을 분석하라는 문제였다고 한다.

‘병맛’의 친구 중에는 ‘병멋’이 있다. 이것은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뜻으로, 도저히 기성세대가 알아먹을 수가 없는 표현 중 하나다. 병신 같은데 어떻게 멋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굳이 의역해 보자면 자신의 처지나 형편이 병신 같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상황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재미있게 해보려는 태도, 이런 게 아마 병신 같은데 멋진 것이다. 단, 자신의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승자 독식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마치 짚신벌레마냥 별것 아님을 똑똑히 파악하고 그것을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달관의 태도가 ‘병멋’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새콤달콤한 병맛을 문화, 작품, 현상, 유머, 인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쏙쏙 뽑아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병맛통신’의 골자다.

특이한 게스트하우스 <인간실격패~>
그 중 첫 번째로 전하는 ‘병맛’, 혹은 ‘병멋’은 지난해 가을 홍대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삐라를 뿌려 마포경찰서 강력계에 끌려가 ‘무단건조물침입죄’를 선고받은 강드림이라는 30세 청년이다. 강력계에 끌려갔다 와서도 그는 쫄지 않고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에 <초보자를 위한 경찰 조사 대처법>이라는 발랄한 첫 검거 뒷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알고보니 군복무 때에도 소원수리에 요망사항을 적는 것이 아니라 휴가 때 불만사항을 인터넷 청와대 신문고에 올려 희대의 관심병사 취급을 받았다고. 이외에도 신춘문예에 셀 수 없이 탈락, KBS 개그맨 공채 세 번 내리 탈락, 진보신당·노동당 등 3당 내리 탈당,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1차 탈락, 2014년도 마포구의원 선거에 ‘선거비용을 50만원만 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체념과 포기의 한 표, 마포의 헛꿈 강드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출마에 임했으나 중도 포기 등 다채로운 ‘병맛’의 소유자였다.

이 장황한 실패의 연대기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에 대문짝만하게 붙여져 있다. 뭐가 자랑이라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근성 없고 불성실해 보이는 경력들을 자랑하고 다니느냐면 그는 ‘패배는 결과가 아닌 선택’이라고 대답한다. 넌 실패자야, 넌 실패했어, 이렇게 인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선택 중 하나였구나,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다. 사회가 나보고 죽자고 덤비건만 나까지 나와 싸워 되겠느냐며 ‘부전승’을 또래들에게 촉구하는 그의 게스트하우스도 ‘병맛’ 마케팅으로 화제가 되었다. ‘패자전문 게스트하우스’라는 부제를 단 <인간실격패(이후 생략)>는 온갖 루저를 환영한다. 심지어 이혼, 해고, 자퇴, 실직, 이별 등을 겪은 손님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

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에게는 ‘작품깡’이라는 독특한 요금 지불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요금 대신 작품을 받는 것으로, 다소 민망한 얼굴로 ‘작품깡’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그는 늘 진지한 얼굴로 이 작품이 명작으로 인정받도록 당신을 응원하겠다, 라며 정중하게 접수한다고. 이 작품깡 시스템은 게스트하우스 전에 동일한 이름으로 그가 홍대, 신촌에서 운영했던 술집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며 앞으로도 예술가 후원의 개념으로 반드시 유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홍대 앞에서 작품을 내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술이 고픈 예술가들의 많은 각광을 받았다고.

술집 <인간실격패>에서는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 제3세계 악기 연주로 한 명 한 명을 환영해 주었는데, 주류는 있지만 안주는 그날 내키는 한 가지만 만들어 내놓았다. 주는 대로 먹으라는 것이다. 대신 가게에서 뭘 사오든, 치킨을 시켜 먹든 상관하지 않았다. 게다가 장사가 제법 되기 시작하자 같은 골목의 동일 상권을 응원한다며 ‘주 2일 근무제’를 채택해 5일은 길거리에서 버스킹 공연 등을 하며 싸돌아다녔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 살았다며 이제 춘천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이미 포화상태인 제주, 그것도 하필 여름에 말똥 냄새가 진동한다는 목장 근처에 새로운 <인간실격패> 게스트하우스를 연다면서도 그는 태평하다. 역사 이래 이 나라가 각설이를 굶겨 죽인 적은 없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루저를 응원하겠다는 이 청년의 ‘병맛’ 혹은 ‘병멋’은 어디까지 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병맛’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살아남을 길도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김현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