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씨 인터뷰에 앞서 그가 지난해 말 낸 책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를 읽었다. SNS 상에 올리는 퍼포먼스와 달리 박씨의 글은 그가 여리고, 내성적이며, 다른 사람과 소통을 갈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3월 18일, 전라북도 군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실존’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개인을 넘어선 실존. 그의 42살 생애를 관통하는 화두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초등학교 신학기에 맞춰 그의 전국 유랑이 시작되어야 한다. 군 단위로 전국 대부분을 섭렵했다. 남은 곳은 강원도와 경기도 일부.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씨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스크랩북을 꺼냈다. 사법당국의 주목을 받은 최근 박 대통령 비판 전단지부터,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온 ‘나’에 대한 팸플릿까지. 전단지, 스티커, 엽서, 명함…. 인쇄선전물의 모든 종목을 다 시도해본 듯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인물은 두 종류다. 저학년용은 ‘지구를 구하자’는 제목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그림을 곁들여 쉽게 설명한 내용이다. 고학년용은 뉴라이트 교과서의 역사왜곡에 대한 것이다. 유랑활동에서 캠페인 내용이 초등학생으로 집중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군산 핵폐기장 유치 반대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사비를 털어 전단을 만들었어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웬만한 상가는 다 전단을 나눠줬습니다. 왜 반대하는지 원래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알려줄 필요가 없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폐기장 유치로 한몫 보고 싶다는 사람은 ‘반대하는 놈들은 쳐죽여야 해’ 이런 식으로 말하며 면전에서 전단을 구겨 버렸어요. 그때 깨달았죠. 나이 든 양반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나눠준 수만 장의 유인물 중 “단 몇 장이라도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나홀로 캠페인 넘어 용산, 강정으로
앞의 박씨 책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캠페인이 이명박 정부 들어 용산사건, 제주 강정마을 활동까지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도 현재 논란이 된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까지에는 ‘비약’이 있어 보인다. “한 종편에서 출연자들이 종북 콘서트를 한 신은미, 황선씨의 배후세력을 뒤져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제가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지 않습니까. 황선씨는 17년 전에 쓴 일기까지 뒤져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 그렇다면 2002년 방북해서 ‘김정일은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말한 박 대통령은 왜 수사대상이 아닙니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 적용을 해야지요. 그래서 전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박씨의 전력, 많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비리혐의로 공무원을 그만둔 인물이 출마하자 그의 출마를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전단을 뿌렸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을 받았다. 5년 동안 피선거권도 박탈됐다.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니 올해 지명수배가 되었어요. 박근혜 정권에 월급 주기 싫어 벌금도 안 냈습니다. 그래서 15일 노역형을 받았어요. 하루에 10만원씩 까고.”

솔직히, 지금의 상황이 겁나진 않을까. “사실 정권에서 압수수색이 들어오고 이 사건으로 공안정국을 만들려는 목적은 비판하는 사람들을 겁주려 하는 거잖아요. 겁을 안 먹으면 됩니다. 심지어 구속될 때도 그냥 웃으며 가면 돼요. 실제로 웃기잖아요. 큰일이라도 벌어진 양 호들갑 떠는 모습이. 까놓고 말해, 20~30년 전처럼 끌려가서 고문받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벌금형 받는 것인데…. 정말로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고민하는 분은 그 벌금고지서를 계속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자식이나 손자들이 컸을 때 애들이 이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말을 이어가던 박씨가 갑자기 울먹인다.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가 되도록 싸워 얻은 훈장이라고 말해줘야지요.” 역시 여린 사람이었다.

<군산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