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네이버 지식 iN에 올라온 질문 하나. “금리에도 마이너스가 있나요?”

한 네티즌은 “시장금리에는 마이너스가 있을 수 없겠지요. 0도 아니고 마이너스는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친절히(?) 답했다. 돈을 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준다. 반대로 돈을 빌리면 은행에 이자를 줘야 한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돈을 은행에 맡길 때 이자를 줘야 한다면, 반대로 빌리면 이자를 더 받는다면?

‘마이너스’의 요정 ‘지니’가 세계 금융권을 덥쳤다. 지니(ZYNY)란 채권 금리가 제로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현상(zero-yield to negative-yield)을 말한다. 금리뿐이 아니다. 경제성장률, 소비자물가 심지어 인구까지 줄줄이 마이너스 지표를 기록하면서 저성장을 넘어 ‘역성장 시대’가 열리고 있다.

3월 18일 스웨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인 레포금리를 마이너스 0.1%에서 마이너스 0.25%로 0.15%포인트 낮췄다. 2월 기준금리를 0.0%에서 마이너스 0.1%로 낮춘 뒤 한 달 만의 금리인하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춘 이유는 자국 화폐인 크로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유럽이 유로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하자 스웨덴 화페인 크로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크로나 가치가 올라가면 스웨덴 기업들의 수출 가격경쟁력이 나빠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스웨덴은 마이너스 금리로 대응하고 있다. 또 스웨덴 중앙은행은 300억 크로나 규모의 국채를 매입한다고 밝혔다. 유로존이 돈을 풀면 스웨덴도 돈을 풀겠다는 의미다.

스웨덴 중앙은행 기준금리 마이너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웨덴은 다음달에 금리를 또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ING는 “국내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스웨덴은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BNP파리바도 “이번 추가조치는 예상했던 것으로, 스웨덴 중앙은행이 낮은 인플레이션을 최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양적완화가 추가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통화가치 절하를 막고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웨덴의 몸부림이 만만찮아 보인다.

스웨덴이 금리를 내린 다음날인 3월 19일 아일랜드도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다. 구제금융에서 졸업한 지 1년 만이다. 아일랜드가 실시한 국채 입찰에서 6개월 만기 5억 유로는 마이너스 금리였다. 발행 계획물량보다 5배가 많은 금액이 몰려 발행금리가 떨어졌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은 국채를 사들인 투자자가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보다 적은 금액을 돌려받게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마이너스 3% 5년물 국채 1만원짜리를 사면 5년 뒤 9700원만 받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웃돈을 주고 채권을 사는 셈이다.

앞서 2월 4일에는 핀란드가 5년 만기 국채 10억 유로를 발행했는데, 이때도 발행 예정금액의 1.5배가 넘는 투자자금이 몰렸다. 국채 발행금리는 -0.0017%로 확정됐다. 핀란드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유가하락으로 러시아가 어려워지면서 러시아와 교역규모가 큰 핀란드의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럽에 불어닥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 열풍을 짐작할 만하다.

2월 초 현재 유럽 국채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 비중은 4분의 1에 달한다. 금액으로 보자면 1조9000억 달러에 이른다. 블룸버그통신 자료를 보면 독일,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일본 등 10개국에서 마이너스 국채 금리가 존재한다. 독일은 전체 국채의 60%가 마이너스 금리다. 폴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는 40% 이상 채권이 마이너스권에서 머물고 있다.

회사채도 마이너스 금리가 나왔다. 2월 3일 스위스 기업인 네슬레가 발행한 채권은 유럽 회사채 중 처음으로 마이너스 0.002%로 거래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회사채가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임에도 불구하고 네슬레만의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로열더치셀의 2016년 만기 채권 금리는 2월 10일 마이너스 0.008%를 기록했다.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 독일의 화학회사인 바스프 등의 회사채도 0%대로 마이너스를 목전에 뒀다.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너스 금리는 이제 채권시장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고 밝혔다. 마이너스 금리가 특정 국가의 순간적인 변종이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듣도 보도 못한 마이너스 금리가 발생한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통화전쟁이다. 미국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유로존과 일본, 호주 등이 돈풀기에 나서면서 금리 제로 벽이 무너졌다. 3월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2%에서 1.75%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4월에도 기준금리를 1.5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경기침체다. 생산성 둔화, 투자 감소, 소비 축소 등이 이어지면서 투자할 데가 마땅찮아졌고, 돈을 빌리는 수요가 부쩍 줄었다. FT는 마이너스 금리 현상에 대해 “자금을 정부에 빌려주는 대가로 비용을 내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면서도 “글로벌 경제성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투자를 하느니 예금이나 안전자산인 국채나 우량회사채에 묻어두겠다는 심리도 크게 작용했다.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투자해서 손실을 입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특히 거액의 경우 본인이 직접 보관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감안하면 일정 수수료를 내더라도 은행에 맡겨놓는 것이 안전하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마이너스 5%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더 이상 되면 개인이 금고를 사서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국채 4분의 1이 마이너스 금리
시장이 마이너스 금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수익’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성장률 등 다른 지표도 일제히 ‘마이너스’를 보인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예금금리가 마이너스 1%인 상황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3%면 실효금리는 플러스 2%가 된다. 마이너스 1%로 산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3%로 떨어지면 수익률은 플러스 2%가 된다. 1월 EU 평균 소비자물가는 마이너스 0.5%였다. EU 국가의 국채가 마이너스 0.5%까지는 실질금리가 0이라는 의미다.

개별 국가로 보면 마이너스 0.5%인 독일의 경우 3월 13일 현재 국채 3년물 금리는 마이너스 0.2%다. 실질 채권 금리는 플러스 0.3%가 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0.4%인 프랑스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 0.1%다. 소비자물가와 비교하면 실질적으로는 0.3% 높다.

마이너스 지표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지만 담뱃값 인상(0.6%)을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 0.1%였다. 2월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 감소했고, 수입액은 19.6% 줄어들어 무역규모가 축소됐다. 이런 연유로 1월 광공업 생산은 3.7% 줄어들었다. 지난해 백화점 판매액은 전년보다 1.9% 줄어들었고, 의류와 신발 소비도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였다. 모두 다 떨어질 때면 적게 떨어지는 쪽이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아직 ‘대세’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유럽은행이 과도하게 돈을 푸는 바람에 생긴 일시직인 ‘버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현상’이 적어도 올해는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유로존 국가들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올해 3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있다”며 “뉴노멀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끝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