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를 덮친 것은 전쟁과 죽음의 공포만이 아니다. 4년 동안 시리아는 전 국민의 80%가 빈곤층인 ‘빈곤국가’로 전락했다. 국민의 30%는 생필품과 기본적인 음식물마저 구할 수 없는 극빈층이고, 57.7%는 실업상태다.

도시는 버려지고 부서진 건물들로 폐허가 됐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건물은 하나도 없고 대부분이 흉측하게 망가졌다. 벽에는 총알 자국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쓰레기와 건물 잔해가 널려 있다. 주민들이 대부분 도망쳐버린 도시는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텅 비었다. 최근 유니세프가 블로그를 통해 전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160㎞ 떨어진 도시 홈스의 풍경이다. 홈스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4년 전 처음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역이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시리아가 3월 15일 내전 발발 4주년을 맞았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15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전국 규모의 시위로 시작됐다. ‘아랍의 봄’ 분위기에 편승한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시리아 내 정정불안은 아사드 정권의 무차별 유혈진압으로 이어지며 내전으로 치닫게 됐다. 그로부터 4년, 아직 전쟁이 끝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는 수백개의 무장단체가 난립하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난장판이 됐다. 이라크에서 일어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시리아 내전을 틈타 세력을 키웠다.

위성사진 속 불빛 83% 줄어들어
통계로 본 시리아 사람들의 삶은 처참함 그 자체다. 세이브더칠드런, 옥스팜 등 전 세계 21개 구호단체 연합이 시리아 내전 4주년을 앞두고 3월 12일 발표한 ‘무너져 가는 시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쟁통에 사망한 시리아 주민은 7만6000명에 달했다. 지난 4년간의 사망자를 합치면 21만명을 넘어선다. 10분마다 한 명씩 죽어나간 셈이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납치된 사람을 포함해 실종자도 수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인 1000만명은 집을 버리고 피란을 떠났다. 그 중 380만명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해외로 나간 시리아 난민 수는 팔레스타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고작 4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난민들이 가까운 미래에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난민들의 생활수준은 시리아에 남은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절반 이상은 불안정한 주거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요르단 도심에 사는 난민의 3분의 2는 절대빈곤선 이하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수많은 난민들이 구걸과 성매매, 미성년 노동과 조혼에 내몰린다.

유엔 시리아정책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주민의 기대수명은 전쟁 4년 만에 76세에서 56세로 20년이나 짧아졌다. 지금 시리아에서 태어난 아이는 환갑을 넘기기도 전에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인구는 전쟁 전 2087만명에서 지난해 말 1765만명으로 15%나 줄어들었다.

시리아를 덮친 것은 전쟁과 죽음의 공포만이 아니다. 4년 동안 시리아는 전 국민의 80%가 빈곤층인 ‘빈곤국가’로 전락했다. 국민의 30%는 생필품과 기본적인 음식물마저 구할 수 없는 극빈층이고, 57.7%는 실업상태다. 시리아의 아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학령기 아동의 절반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시리아에 있는 학교의 4분의 1은 전쟁으로 파괴됐다. 먼 훗날 전쟁이 끝나도 아이들의 미래가 암담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치안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시리아 주민 480만명은 유엔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규정한 지역에 거주했다. 전년에 비해 무려 230만명이나 늘어났다. 구호단체 연합은 “2013년에는 290만명이 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다마스쿠스에서 경호를 받으며 활동한 지역 구호단체들이 110만명의 주민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국경없는의사회도 “치안 악화와 의료시스템 파괴로 시리아의 의료구호가 마비상태”라고 전했다. 시리아의 제2도시 알레포에는 전쟁 전 2500명의 의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100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나머지 의사들은 납치되거나 죽었거나 시리아를 떠났다. 인권의사회(PHR)는 내전 기간 중 의료시설 183곳이 233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며 의료진 61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 것”
정부군과 반군 간의 대립구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극도로 복잡해졌다. 반군 간의 세력다툼과 유혈충돌, 종파갈등이 얽힌 데다 혼란을 틈타 IS가 시리아로 침투하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가고 있다. IS는 미국이 개입을 꺼리는 시리아로 침투해, 북부 도시 라카 등을 근거지로 삼고 정부군과 반군에게서 무기와 물자를 빼앗아가며 세력을 키웠다. 미국이 오는 5월 이라크에 있는 IS 거점 도시인 모술을 공격하면 IS 세력은 시리아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손댈 수 있는 이라크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시리아는 더욱 생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위대를 잔혹하게 유혈진압해 전쟁의 불씨를 만들고,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화학무기까지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아사드 정권은 IS와 적대적 공생관계다. IS의 공격으로 반군의 전력이 약화됐고, 미국의 대시리아 전략이 아사드 정권 축출에서 IS 격퇴로 변한 덕분에 그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그동안 아사드를 압박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임시정부에 권력을 넘기게 함으로써 시리아 내전을 끝내는 방안을 추진해왔지만 지난해 7월 시리아 공습에 나선 이후에는 이런 노력을 중단한 상태다.

최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아사드를 협상테이블에 앉힐 용의가 있다”고 말해 미국이 IS 격퇴를 위해 아사드 정권과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에 앞서 존 브레넌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가장 원치 않는 일은 극단주의 세력이 다마스쿠스로 돌격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꼬여가는 동안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2차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국제사회는 사실상 손을 놓았다.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아사드의 최대 맹방 러시아의 관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냉각된 것도 시리아 유혈사태 종식을 위한 대화를 어렵게 했다.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결의안을 3건 채택했지만 제대로 이행된 것은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리아 내전 4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시리아인들은 전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안보리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mni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