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고피아’(고용노동부+마피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최근 ‘고피아’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곳이 고용부에 등록돼 있는 사단법인인 한국기술자격검정원이다.

기술자격검정원은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국가기술자격 종목 중 12개 종목의 검정집행업무를 재위탁받아 필기·실기시험 및 자격증 발급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재위탁한 종목은 조리·미용사 등 국민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는 대표적인 국가자격시험이다. 고용부 산하의 산업인력공단은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각종 국가기술자격 검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민간기관인 기술자격검정원에는 고용부와 산업인력공단의 낙하산 인사가 다수 포진돼 있다. 고용부로부터 국가기술자격 업무를 위탁받은 자격검정원의 임직원 대부분이 두 기관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이사장은 유용태 전 노동부 장관(비상근)이며, 기술자격검정원의 인사·행정 등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최수홍 사무총장은 고용부 감사담당관을 지냈고, 최성준 검정사업본부장은 고용부 울산지청장을 역임했다. 홍은수 경영관리본부장은 산업인력공단에서 자격출제원장을 했다. 현재 기술자격검정원 90여명의 직원 절반 이상이 산업인력공단에서 이직했다.

직원 절반 이상이 공단에서 이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기술자격검정원 임원 3명 모두가 고용부와 산업인력공단 출신으로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며 “이 기관 설립 당시 60명의 직원 중 40명이 노동부와 공단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기술자격검정원은 지난 2012년 1월 설립될 때부터 위법성 논란이 있어 왔다. 고용부는 당시 고용부가 수행했던 사업주 훈련업무를 산업인력공단에 이관하는 대신 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 검정업무를 민간기관에 재위탁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가기술자격법(제23조)에는 국가기술자격 검정 수탁기관에 관한 사항만 명시돼 있지, 정부로부터 행정업무를 위임받은 수탁기관 즉 산업인력공단이 제3의 기관에 재위탁하는 조항은 없었다.

고용부가 국가기술자격증 업무를 재위탁하려면 당연히 법을 개정해 근거규정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개정이 어려운 법은 그냥둔 채 고치기 쉬운 국가자격시행령을 개정해 재위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국회에서도 법을 고치지 않고, 시행령을 개정해 민간기관에 재위탁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 관계자는 “당시 정부조직법 등 어느 법에도 재위탁이라는 용어가 없었는데, 재위탁을 하려면 당연히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 입법부의 입장이었다”며 “국가자격증 업무를 민간에 재위탁하기 위해서는 관련법부터 먼저 고쳐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정부가 산업인력공단에 국가자격증 업무를 위탁했는데, 시행령 개정만으로 공공기관(산업인력공단)이 민간기관에 재위탁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전문 변호사인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는 “국가기술자격법의 취지를 보면 공공기관에만 국가자격증 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재위탁은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관에 위탁하는 것이므로 법률상 하자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이 일자 고용부는 2012년 7월 재위탁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기술자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재위탁 근거를 마련하려는 법이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시행령에 근거한 재위탁에 대한 위법 논란이 최근 다시 일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법에는 없어도 시행령에 재위탁 규정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과거 입법례를 보면 법에는 없지만 시행령에는 있는 경우가 있다”며 “고용부가 국가기술자격법 개정안을 냈던 것은 재위탁의 근거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국가자격시험 재위탁도 위법 논란
정부가 민간기관에 지나친 특혜를 주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은 기술자격검정원에 사무실과 비품 등 모든 운영경비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기술자격검정원은 서울 공덕동에 있는 산업인력공단 별관 4층에 있는 사무실을 쓰고 있다. 재위탁업무도 사실상 영구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국가기술자격검정 행정업무 위탁협약서’에 따르면 재위탁 기간은 1년이지만 수탁기관을 다른 기관으로 변경하지 않을 경우 자동 연장된다.

특히 출범 당시 산업인력공단에서 기술자격검정원으로 이직한 10여명은 퇴직금 16억9000여만원과 명예퇴직 및 조기퇴직 수당으로 32억6000여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퇴직금 역시 국민 혈세에서 지급된 것이다. 고용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이들이 기술자격검정원으로 이직하는 것을 알면서도 거액의 수당을 제공한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들은 공단에서 퇴직은 했지만 퇴직 전과 같은 장소로 출근하고 있으며 똑같은 업무를 보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민간기관인 기술자격검정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자격검정원은 최근 고용부에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자격검정원 관계자는 “기술자격검정원이 공공기관의 요건은 된다고 정부에 보고는 했지만, 우리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해달라고 한 적은 없다”며 “공공기관을 지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업인력공단 노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술자격검정원이 생겨난 만큼 이 기관을 정리하고 업무도 당초대로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종배 산업인력공단 노조위원장은 “민간기관이 국가자격증 업무를 하는 것은 검정의 질과 대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불안정한 요소가 많다”며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두 개의 기관이 필요 없기 때문에 기술자격검정원은 산업인력공단으로 통폐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에 대해 오는 10월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가자격증 업무 재위탁 문제와 관련해 기술자격검정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올 10월로 예정돼 있는 국감 직전까지 대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