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 등 천문학적인 규모, 편성에서 결산까지 철저히 베일 속
‘댓글 알바’ 활동비 지원 드러나 ‘예산ㆍ회계 투명성’ 개혁 핵심 떠올라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지난 대선 때 이른바 ‘댓글 알바’를 한 것으로 지목된 민간인 이모씨에게 활동비로 3000여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의 불법 활동에 국민 세금이 쓰여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국민 혈세인 국정원 예산 사용내역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원 예산은 편성부터 결산에 이르기까지 꽁꽁 숨겨져 있다. 국정원 예산은 다른 정부 부처와 같이 편성되는 일반예산에다 특수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타 부처 예산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기재부는 다른 예산 심의와는 달리 국정원이 요구한 예산은 원안대로 반영해주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국정원의 1년 예산은 최소 1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재부는 매년 국정원 직원 인건비 등 일반예산으로 4000억원 정도를 편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재부는 ‘국가안전보장 활동경비’ 명목으로 예비비를 편성, 국정원에 지원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문병호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해 예비비로 3700여억원을 편성한 것을 비롯해 최근 5년 동안 평균 3500여억원을 지원했다.
국정원 예산에는 국정원 자체의 특수활동비와 국방부, 경찰청 등 각 부처에 편성돼 있는 특수활동비도 포함된다. 올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4600여억원이며, 국방부는 1700여억원, 경찰청은 1200여억원이다. 특수활동비는 어디에다 사용되는지 세부내역도 없이 총액만 국회에 제출된다. 이외에 각 부처 예산 안에 각종 정보 관련 활동비 항목이 있는데, 이 또한 국정원 예산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정원은 경찰청과 국방부의 특수활동비와 관련한 예산 편성권과 회계 감사권을 갖고 있다.
문제는 국정원의 공작활동 비용 등 사업비는 영수증 제출이 필요 없기 때문에 사용내역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댓글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예산 사용내역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정청래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전체 예산은 지난해 150억9000만원이었다. 국정원은 이 중 55억원에 대해서는 장비구입 등 증빙서류를 제출했으나 나머지 95억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 의원 등 민주당은 사용처를 밝히지 않은 심리전단 예산이 ‘댓글 알바’ 등에 지급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조차도 국정원의 예산 사용내역을 들여다볼 수 없다. 국정원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보위에서도 국정원의 예산 및 결산 심사는 ‘수박 겉핥기’ 식에 불과하다. 국회 정보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정원의 예·결산 보고는 보좌진 배석 없이 대면보고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정보위원들은 국정원이 제시한 자료를 적을 수도 없다. 예·결산 관련 자료가 문서 형식으로 정보위원들에게 배포되기도 하지만 회의가 끝나면 국정원이 곧바로 자료를 수거해 간다. 정보위원들이 구체적인 항목 없이 숫자만 보고 예·결산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이 낸 세금의 낭비를 막기 위해 국정원 예산을 실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러시아·독일 등 해외 정보기관의 경우 예산 사용내역을 국회 정보위 등에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사건 이후로 국정원 개혁에 대해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핵심은 예산과 회계의 문제”라며 “국정원도 예산 사용내역을 국회 정보위에 상세히 보고하고, 의원들도 국정원이 제출한 자료에 대해서는 외부에 절대로 유출하지 않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