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여전히 은폐” 사제단 2차성명
사제단의 발표가 있고 나서, 초조한 하루 이틀이 지나고, 5월 21일 오후 6시 정구영 서울지검 검사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고문살인의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 3일간은 사제단에게는 물론이요 나에게도 숨 막히는 기간이었다. 우리는 과연 권력 당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거꾸로 사제단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덮어씌울 수도 있는 정권이기에 그 기간은 길고 초조했다.
정부 대책회의, 경찰 지체조사 결정
검찰은 5월 20일 재수사를 시작하였다. 이날 밤 경찰은 스스로 범인 3명의 신병을 확보해 검찰에 데려왔다. 21일 오후 4시, 3명의 추가 범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5월 29일에는 검찰이 축소 조작을 주도한 대공수사 2단 단장 박처원, 5과장 유정방, 5과 2계장 박원택을 범인도피죄로 구속 수감했다. 그러나 사제단이 강력히 의혹을 제기한 축소, 조작, 은폐의 최고 책임자라 할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이번 재수사에서도 제외했다.
강민창은 박종철이 죽고 나서 꼭 1년 만인 1988년 1월 15일 부검의인 황적준 박사의 일기장이 근거가 되어, 그가 황 박사로 하여금 허위감정 의견을 제출하도록 한 직권남용과 사인을 은폐한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되었다. 사제단의 발표와 강력한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5공 정권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조작과 은폐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제단은 축소조작사건을 5공 정권이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다가, 6월 22일 ‘진실이 밝혀지기보다는 은폐되고 있다’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한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1차 성명에 못지않게 이 성명도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까지 박종철사건의 진실을 축소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5공 정권의 안간힘을 이 성명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전모는 5공 정권에 의해 여전히 은폐되고 있었고, 어쩌면 오늘까지도 당시의 내무장관 등 축소, 조작, 은폐의 책임과 진실은 영원한 미궁으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사제단의 5·18성명에도 불구하고 5공 정권과 검찰은 여전히 미봉과 봉합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전모와 그 이후의 진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성명을 꼭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료로 별첨하고자 한다. 이 성명 역시 그 초안은 아직도 수배상태에 있던 내가 작성하고, 사제단의 검토를 거쳐 발표되었다.
오늘 우리는 박종철군에 대한 고문살인과 사건조작은폐의 전 과정에 걸친 실체적 진실은 물론 이 나라 정치권력 자체의 양심의 마비상태, 즉 고문으로 한 젊은이를 죽게 하고, 그 사실마저 조작 은폐하는 그런 도덕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정치권력의 의식세계와 그에서 비롯한 공권력의 원초적 부도덕성과 부정직성을 밝히고 청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국정조사권의 발동과 변협 조사활동의 자유가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확신을 거듭 내외에 천명하면서 이러한 조사활동이나 재판절차를 통하여 마땅히 밝혀져야 할 문제점들을 다음에 제시하는 바입니다.
1. 고문치사 과정의 진실
가) 박종철군이 연행될 당시의 신분은 오직 박종운군에 대한 참고인 자격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나) 연행시간과 연행된 장소를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렌즈 소독기가 든 손가방과 학교 성적표가 없고, 전날 신고 나갔던 부츠와 하숙집 동료에게 빌린 상아색 털목도리가 없는 점에 비추어 하숙집이 아닌 장소에서 발표와는 다른 시간에 연행되었다는 가족과 그 주변의 주장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합니다.
다) 물고문 이외에도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박군 몸의 얼룩진 반점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는 점과 연행시간 등의 의혹에 비추어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층 9호실이 아닌 장소(신문실)에서 제1차 고문이 선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사체부검 사진의 공개와 함께 다른 고문의 의혹을 밝혀야 합니다.
라) 강진규 경사가 다른 반 반원으로서 박종철군 조사에 참여한 이유와 역할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5월 30일 이상수 변호사가 접견했을 때 공포에 질린 표정과 언동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조·강 두 경관에 대한 신변 안전과 함께 변협 조사단과의 자유로운 면담에 협조해줄 것을 관계당국에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2. 경찰
가) 박종철군의 죽음이 고문치사로 밝혀진 뒤 당시의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처음 상황 보고를 정확히 하지 않은 사람을 감찰 조사하겠다”고 하였으나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았고, 신길동 치안본부 특수수사 2대에서 처음 조사할 때부터 “상부로부터 조한경 경위 등 2명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수사반의 진술 등에 비추어 조작은폐 사실을 치안본부장이 알고 있거나 지시 또는 그에 개입했음이 확실하다 할 것입니다.
나) 검찰은 박처원 치안감 등 경찰 간부 3명을 범인도피혐의로 구속하면서 이들이 두 경찰관을 교도소로 찾아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 또는 관련자 5명을 쏴 죽이겠다고 말하는 등의 협박에 대해서 진상조사는 물론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와 같은 공갈과 협박이 교도소 안에서 계속되고 있으리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의 형사처벌 등을 결코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건 발생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단장이었다가 직위해제 끝에 4월 8일 보직 발령된 전석린 경무관, 1월 15일부터 18일까지 줄곧 박종철군의 가족을 동행, 감시하고 고문살인사건의 조작은폐를 위한 가족의 회유와 금품제공 등에 가담한 홍승상 경감, 그리고 1차 보고서를 작성하고 가족 면회 때마다 입회 감시한 이태훈, 여건주 경위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조치나 문책 또는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3. 검찰
가) 정구영 전 서울 지검장은 5월 21일 발표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거짓 발표와 기자와의 기만적 일문일답을 하여 왔음이 5월 29일 검찰 발표로도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서울지검 안상수 검사는 2월 27일 조·강 두 경관으로부터 3명의 고문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청취하고서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인지 잘 판단하라”면서 계속적인 은폐를 획책, 종용하고 이 같은 사실을 상부에 보고, 2월 28일 김성기 법무부장관이 영등포 교도소를 방문, 새로운 사실이 밖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단속을 지시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두 경관에 대한 3월 7일의 이감조치는 경찰로 하여금 두 경관에 대해 마음 놓고 회유와 설득을 하게 하기 위함이었음이 명백합니다. 3월 9일 가족 면회 때 조한경 경위는 동생에게 “검사에게 조작 사실을 폭로한 뒤 경찰로부터 죽이겠다는 협박을 당하고 있다. 빨리 변호사를 대라”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정황에 비추어볼 때 적어도 2월 27일 이후 검찰은 조·강 두 경관의 심경의 변화를 경찰에 알려 합동으로 조작 사실을 은폐, 무마하려 했음이 확실합니다.
나) 조·강 두 구속 경관에 대한 가족 면회가 토요일 오후에 특별면회로만 허용된 점, 또 조한경 경위에게는 이태훈 경위가, 강진규 경사에게는 여건주 경위가 입회한 상태에서만 면회가 이루어진 점, 3월 말께부터 검사의 지시라며 3주간 면회가 금지된 점 등에 비추어 검찰은 2월 28일 이전에 이미 조작은폐 사실을 알고, 경찰과 교도소 당국과 연계하여 합동으로 조작 사실의 은폐를 공모, 혹은 적어도 묵인했음이 명백합니다.
4. 1월 17일 정부대책회의
박종철군 고문살인사건에 대한 조작은 1월 17일 관계부처 장관과 유관기관 책임자가 참가한 정부 대책회의에서 경찰 자체조사를 결정함으로써 조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의 로비로 그와 같은 결정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이 필사적으로 경찰 자체조사를 관철한 뒷면에는 조작은폐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음 또한 자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수사 상식에 반하는 이런 주장이 관철되어 그와 같은 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은 조작은폐를 목적으로 하거나 그 사실을 알고 경찰 자체조사를 고집했을 것임이 명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민주화된 나라에서 모든 이웃 형제와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나라의 민주화와 사회정의, 그리고 민족의 자존과 자주를 요구하는 것이 용공 좌경일 수 없고, 그것으로 고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처벌되고 처벌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고문해 죽여 놓고 징계 정도의 처벌을 예상하는 공권력의 의식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1987. 6. 22.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정남〈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