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2016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 연장을 앞두고 12월 17일까지 임금피크제 시행 등이 담긴 취업규칙 변경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임직원 약 1만여명 중 조종사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한 약 7000명이 투표 대상이다.

현재 55세인 정년을 내년부터 60세로 늘리되 56세부터 55세 때의 평균 임금을 10%씩 삭감해 60세에는 50%로 낮추는 게 사측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내용이다.

국민은행 노사도 현재 임단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협상 안건 중 임금피크제도 주요 처리 안 중 하나다.

국민은행의 경우는 아시아나처럼 임금피크제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이미 도입된 임금피크제를 손질하는 쪽이다.

정년연장 전 시행한 기업은 보완 불가피
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를 2007년부터 도입했다. 당시 58세인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대신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키로 노사가 합의했다. 55세부터 58세까지 받게 될 36개월치 임금 중 30개월치를 60세까지 5년간 나눠주는 것이었다. 정년이 58세에서 늘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조합원은 6개월치를 손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고령화 시대에 은퇴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금까지 임금피크제가 무리없이 시행돼 왔지만 정년이 법적으로 60세로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국민은행 노조는 7년 전에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현실에 안 맞는 만큼 손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노사는 임금피크제 시작 시점을 현재의 55세가 아닌 58세로 하는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무상 국민은행 노조 정책담당 부위원장은 “노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7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정년이 법적으로 60세로 늘어났는데 기존 합의안대로 55세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현재 방식은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년연장법으로 불리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본격 시행을 1년 앞두고 노동현장에서 임금피크제가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바라보는 노사의 시각이 논의 단계에서부터 큰 온도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법상 정년이 60세로 늘어난 마당에 법 취지대로 임금 삭감 없는 정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업주는 임금 삭감 없는 60세 정년 보장은 경영상 큰 무리가 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고 임금피크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03년부터다. 생산직 근로자 비율이 높은 제조업체들이 먼저 도입했다. 2003년 대한전선을 시작으로 LG전자·LS전선(2007년), 2010년 이후에 한국전력·포스코·GS칼텍스·현대중공업 등이 임금피크제를 속속 도입해 시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본격 시행한다. 아시아나처럼 55세 정년을 60세로 늘리고 10%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정년제도가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 비율은 2009년 9.2%에서 2013년 17%로 늘어났다.

내년 봄 노동현장에서 본격적인 노사협상이 시작되면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노동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년연장법에는 정년 연장에 맞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없다.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는 어디까지나 노사 합의사항이다. 노동계는 일단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정년 연장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일부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기형적인 임금제도다. 나이들수록 연봉이 올라가는 현재의 연봉제도를 바꾸기 위한 편법으로 도입된 것이 임금피크제”라면서 “정년연장법 취지대로 60세까지는 임금 삭감 없는 정년을 보장하고 60세 이후 계속 고용이 필요할 경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지출부담이 가장 큰 50대 중·후반 노동자들의 조기 퇴직을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 정년연장법인데 그 몇 년 전부터 임금 대폭 삭감을 전제로 하는 임금피크제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정년 늘어도 임금 총액은 줄어들 수도
한국노총도 민주노총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사실상 강권하고 있지만 공공기관 노조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는 마찬가지다.

정용천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공무원 실제 평균 퇴직 나이는 50.4세다. 실질적으로 정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일각에서 임금 총액 범위 내에서 정년을 63세로 늘리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는 결국 같은 임금을 받고 일만 더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용자단체는 노조와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노사인력팀장은 “임금피크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정년 연장에 대비한 준비기간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임금은 현 체계대로 유지한 채 정년만 늘어나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나 경영에 큰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실업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고용도 정년 연장에 못지않게 중요한 현안인데 노사가 협상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실본부장도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노조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년 연장은 주장하면서도 임금피크제를 반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사용자와 노조의 입장차가 큰 현실에서 내년 한 해 노사협상 과정에서 임금피크제가 어떤 형태로 자리를 잡아갈지 관심이 쏠린다.

김기용 노무사는 “일부 금융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보면 임금 총액 면에서 오히려 정년이 늘어나기 전보다 줄어드는 곳이 있다”면서 “법 취지만 놓고 보면 노조 주장이 맞지만 사용자의 현실적인 여건도 무시할 수 없어 노사간 합의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장은 “임금피크제 도입은 어디까지나 노사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규모를 점차 늘려나가면서 도입 사업장을 늘려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병태 선임기자 cbta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