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사태는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또 하나의 슬픈 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아무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0월 말 터진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총 대출금액 3조2000억원에 금융권 대출만 7000억원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뉴엘 사태는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의 허세와 금융기관 경영자의 과욕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그 서글픈 역사를 잠시 따라가 보자. 왜냐하면 과거는 과거에서 끝나지 않고 오늘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 말기인 2011년 2월, 지식경제부는 지식경제부 공고 2011-73호를 통해 ‘World Class 300 프로젝트’를 공고한다. 그 무렵 극장가에서 한창 흥행몰이를 하던 스파르타 전사 300인의 무용담을 본떠 수출전사로서 세계 각국을 누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중소·중견기업 300개를 발굴해서 기술·금융 지원 등을 ‘패키지’로 화끈하게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 성장정책이 녹색금융과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구호를 걸고 표지만 바꿔치기한 것이다.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금융지원
정부가 이렇게 나서니 그 밑의 국책기관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금융 쪽에서는 수출입은행이 나섰다. 이쪽의 키워드는 ‘한국형 히든 챔피언’이었다. 몇 달 뒤인 2011년 5월 31일 “글로벌 시장을 누빌 ‘숨은 중견기업’을 찾았다”며, 2011년 상반기의 히든 챔피언 육성대상기업 38개사 명단을 발표했다. 모뉴엘은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모뉴엘에 대한 금융지원은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고속도로를 질주하게 된다. 모뉴엘에 대한 금융권 신용공여액은 2011년에 2000억원을 넘어선 후 계속 증가하여 2013년 말에는 약 6000억원까지 급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정부의 섣부른 산업정책이 금융의 건전성을 질식시키는 과정이다. 그 다음은 이런 외부 환경에 대해 개별 금융기관들이 대응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참으로 괄목할 만한 점은 이런 상황에서 금융지원의 문제점을 깨닫고 대출 증가의 광풍에서 조용히 발을 뺀 금융기관들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광풍에 올라타서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뜨거운 맛’을 보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려 깊은 금융기관의 예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다. 이 두 은행은 2011년 말부터 2013년 말까지의 기간 동안 모뉴엘에 대한 여신을 전액 회수했다. 모뉴엘의 현금 흐름에서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기도 하고, 모뉴엘의 거래처 홈페이지에서 모뉴엘과의 거래 실적이 잘 잡히지 않은 데서 의아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 기관은 모뉴엘 사태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사기대출 사건인 KT ENS 사건에서도 무사히 살아 왔다.

반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금융기관의 대표적 예는 기업은행과 외환은행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라서 아마도 정부의 ‘화끈한 지원’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거액의 신용공여액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정책금융이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한 예다.

우리들이 곱씹어 보아야 할 사례는 외환은행이다. 외환은행은 현재 민간 은행으로는 가장 크게 모뉴엘에 ‘물린’ 은행이다. 왜 그랬을까. 무역금융과 수출 지원 분야의 ‘선수’를 자임하던 외환은행으로서는 그야말로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는’ 굴욕이다.

필자는 처음에는 혹시 론스타 때문일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2011년은 론스타가 우리나라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정책 협조 차원에서 대출을 마구 늘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론스타가 지배하던 2011년 말 모뉴엘에 대한 외환은행의 신용공여액은 130억원 수준이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하나금융이었다. 하나금융이 지배권을 넘겨받은 후 지난 2년 동안 여신이 2013년 말 기준으로 13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략 2년 동안의 증가율이 1000%다.

무모한 대출 확대 캠페인 영업
하나금융을 비난할 근거가 있나. 있다. 우선 담보만 있으면 ‘묻지마 대출’을 일삼는 하나금융의 전통은 이미 KT ENS 사기대출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총 사기대출 금액 1조8000억 중 하나은행이 물린 액수가 1조1000억원이기 때문이다. 보다 직접적인 근거도 있다. 하나금융의 새 경영진과 그들이 임명한 기업여신 담당 고위 간부들은 지난 2년 동안 거의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대출 확대 캠페인을 벌였다. 호랑이 등에 자원해서 올라탔던 것이다. 그리고 수천년 동안 되풀이되어 온 금융의 무서운 교훈이 이번에도 작동했다. 무모한 영업은 꼭 뒤탈을 불러온다는. 신용카드 사태 때 보고, 저축은행 사태 때 보았던 바로 그 교훈 말이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살펴본 모뉴엘 사태의 진면목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첫째, 정부가 금융을 대상으로 섣부른 선거공약을 내세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동북아 금융허브’니, ‘녹색금융’이니, ‘창조금융’이니, 또 최근의 ‘기술금융’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허상이다. 금융에는 도약이 없다. 근본을 튼튼히 해야 조금씩 발전하는 산업이 금융산업이다.

둘째, 정부가 다른 목적으로 이를 강제하려고 해도 감독당국이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모뉴엘 사태는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또 하나의 슬픈 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아무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위한 방책은 이미 나와 있다. 모피아를 해체하고 금융감독기구를 정부로부터 분리하여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 담보만 믿고 영업하는 은행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 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대출을 축소하는데 외환은행은 대출을 확대했을까. 결국 무역보험공사가 발행한 종이쪽지 한 장을 재무제표보다 더 신뢰했기 때문이 아닌가.
넷째, 무모한 대출 확장을 독려해서 은행의 건전성을 위태롭게 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관련 임원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제재가 있어야 한다.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은 이미 KT ENS 사기대출에서도 동일한 문제점을 노정한 상태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