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정책 없애는 진보교육감’.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열흘 뒤, 한 신문사에서 뽑아낸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자사고 폐지 정책을 비판했다. 자사고가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는데, 진보교육감들이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폐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교육감을 ‘우려’의 시선으로 보는 기사들은 이후 쏟아져나왔다. ‘혁신학교 늘리기 붐, 예산먹는 하마 우려’, ‘진보교육감들, 법을 뭐로 보고 전교조 전임자 면직 안 하나’. ‘진보교육감들 핵심 공약 줄줄이 제동’이라는 기사는 진보교육감의 공약이 예산지원을 받지 못해 제동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예산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로 공약이 사전 준비 미흡 및 선심성으로 ‘졸속’ 추진됐다는 분석이다. 기사들에 따르면 진보교육감은 교육을 이념문제로 만드는 마찰과 충돌의 원인제공자였다.

취임 100일, 우려보다 기대 훨씬 커
그러나 여론의 평가는 달랐다. 우려보다는 기대와 지지가 훨씬 높았다. 취임 100일을 5일 앞둔 지난 10월 3일 한국갤럽은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17개 시·도 중 13개 시·도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것이 잘 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물었다. 응답자의 45%가 ‘잘된 일’이라고 답했다.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응답자인 23%의 두 배다. 시·도 교육감을 현재와 같이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이 좋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9%가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방식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1%에 그쳤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는 교육감 임명제를 추진하려는 것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직선제에 대한 지지여론은 간접적으로 진보교육감 선출에 대한 만족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00일 동안 진보교육감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컸다. 대표적인 것이 자사고 폐지다. 진보교육감들의 자사고 재지정 및 폐지에 반대하여 자사고교장협의회에서는 집회를 열었다. 자사고 학부모들도 거리에 나섰다. 저항의 목소리는 도드라졌다. 그러나 침묵하는 다수는 자사고 폐지에 찬성했다. 지난 7월 25일 한길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사고 폐지에 대한 찬성 의견이 60.7%, 반대 22.9%였다.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침묵하는 다수는 진보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일반고 학부모는 “일반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사고가 생겨서 고교서열화가 생긴 것이 싫긴 하지만, 결국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일반고에 갔다는 자책에 크게 목소리를 내거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장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자사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폐지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자사고 학부모는 “자사고가 등록금이 3배 가까이 비싼데 자사고가 생기면서 일반고가 험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사고를 보내기는 했다. 그러나 자사고를 없애서 학교 간 서열이 완화되면 안심하고 일반고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론은 진보교육감들에게 조용한 우군이면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 진보교육감의 지지층은 일반 학부모들이다.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층보다 훨씬 많은 수다. 이들이 우리의 정책을 뒷받침해주고 있고, 앞으로도 이를 믿고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난 100일 동안 늘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전교조 미복직 전임자 직권면직 건이다.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전교조는 보수 쪽에서 교육과 관련해 공격하기 좋은 소재다.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사이에 이 문제가 개입하면서 난감했다. 진보적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이 될 바에야 차라리 미복직 전임자를 해고시키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초기에 교육정책을 힘 있게 펴나가야 하는데, 전교조 문제와 같은 돌발상황이 생겨 교육부와의 갈등이 더 불거지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방해받는 것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이 9월 19일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진보교육감은 전교조 미복귀 전임자 직권면직의 문제에 대해서 한숨 돌리게 됐다.

‘진보교육감 시대’ 프레임엔 부담 느껴
그러나 숙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100일은 신뢰를 쌓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특히 학교 현장의 큰 변화는 아직까지는 드물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진보교육감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학교 현장의 행정업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교사들로 하여금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진보교육감 이후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일반고 교사는 진보교육감 이후로 행정업무가 줄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 행정업무가 줄었는지는 모르겠다. 9시 등교 말고는 진보교육감이 와서 학교 현장이 변한 것은 없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학교 행정 안에서는 제대로 구현되기보다는 좀 어그러진다는 느낌이 있다.”

재정문제도 남아 있다. 지방교육 재정난은 진보교육감뿐만 아니라 전국 교육감들의 공통된 숙제다. 문제는 독자적인 재원이 없는 상황에 중앙정부가 오히려 내년 지방재정교부금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정 확보’는 교육감들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시의회가 새누리당이 다수인 지역은 진보교육감들이 교육정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새누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인천시의회는 인천시교육청의 혁신학교 추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진보교육감 시대’라고 하지만 ‘진보교육감’들은 이 프레임이 다소 부담스럽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보교육감’이라는 프레임이 교육을 이념문제로 만든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13개 시·도 진보교육감 모임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만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진보 대 보수, 13대 4라는 프레임으로 교육감을 나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17개 교육감이 함께 의논하면서 정책을 협의해가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그렇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보교육감의 정책이 교육부의 정책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송대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은 “교육부 또한 ‘전인교육’ ‘창의교육’ ‘교육과정 정상화’를 늘 주장해 왔다. 진보교육감 또한 교육부의 기존 목표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게, 원칙대로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