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양극화’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열쇠말이다. 한국까지 상륙한 피케티 열풍도 이 열쇠말에 겹쳐져 있다. 그의 저작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앞질러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걸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돈이 돈을 불려나가는 속도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해서 버는 돈보다 물려받은 돈이 계층을 결정하는 ‘세습자본주의’가 지금 자본주의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상위 1%에 대한 증세’의 조세정책
피케티는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의 해법을 조세정책에서 찾는다. 첫째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80%로 높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피케티는 조세정책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자본소득증가율을 소득증가율보다 낮출 수 있는 해법이라고 말한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오래된 사회문제이며, ‘부자증세’를 둘러싼 정치권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한국에서도 피케티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피케티의 해법을 ‘메시아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 현실에서 피케티가 말하는 ‘조세정책’만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피케티가 주장한 세습자본주의에만 초점을 맞춰 ‘상위 1%’에 대한 조세에만 집중하다보면 다른 중요한 불평등의 원인들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공회 당인리 대안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득 상위 1%에 대한 증세가 소득 하위 50%의 소득 증대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피케티의 책에는 그런 점이 드러나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소득 하위 50%라고 할 수 있는 일반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노동자가 현실에서 마주치고 있는 자본가는 세 부류다. 임금을 주는 고용주, 월세 등 주거비를 내는 집주인, 그리고 대출이자를 갚는 은행 및 대부업체이다.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임금은 계속 떨어지고, 주거환경은 늘 불안하다. 은행의 예금금리는 제로에 가깝지만, 대부업의 금리는 낮췄다고 해도 최고 34.9%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김 박사는 이러한 현실에서 분배는 다수의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쟁점과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케티의 말대로 상위 1%에서 세금을 엄청나게 걷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지표상으로는 불평등이 완화되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소득 하위 50%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날까. 한국 사회에서는 소득 하위 50%가 중심이 되는 정치·사회 의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표가 안 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조세정책으로 불평등이 완화된다는 피케티의 정책은 다소 선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위 50%를 넘어선 중산계급들을 화나게 만들려면 그보다 못사는 사람들의 불평등을 이야기하기보다 잘사는 사람들의 불평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조세정책이 불평등 완화의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피케티 열풍’은 한국사회 불평등 방증
같은 맥락에서 이재욱 정치학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1%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해 자본소득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앞지르고 상위 1%의 부의 편중이 심화된다는 것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누가 어떤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지, ‘주체와 권력’이라는 정치적인 문제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는 “피케티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분석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주체’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피케티가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분석이 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예컨대 1945~1975년 사이에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계급의 역할이 있었다. 갈등국면에서 타협을 이뤄내는 등 노동자의 조직적인 역량이 강했던 원인이 작동하고 있었다. 피케티가 말한 정책적 대안에 있어서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피케티 열풍’이 과세문제에만 집중되다 보면 이 또한 불평등에 대한 일시적인 분노나 불만의 표출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사회의 피케티 열풍은 대중들이 불평등을 많이 체감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정의’ ‘불평등’과 관련한 열풍이 잦았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안철수 현상’, 최근에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 열풍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풍이 지나가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완화되기보다 오히려 악화됐다. 이재욱 박사는 이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불평등 완화를 위해 한국 사회에서 풀어나가야 할 현실적인 쟁점들을 많이 발굴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 박사는 피케티 열풍이 지나친 낙관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피케티가 불평등 문제를 전면 슬로건으로 만들어놓고 그에 대한 해결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사회에 희망적 메시지는 줄 수 있지만, 지나친 낙관은 또 다른 좌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피케티를 ‘록스타’처럼 여기는 분위기는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1980~90년대 한국에 외국의 진보이론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이론들이 사회적 문제를 금방 해결해줄 수 있는 메시아적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케티 이론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볼 필요가 있다. 피케티 이론으로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볼 것도 아니고, 또 너무 비판을 해서 껍데기만 남겨둘 것도 아니다.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견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의미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꾸준히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