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 출연 중인 한 20대 남자배우는 연기보다 치아가 빛난다. 대사를 할 때마다 극심한 미백 치아만 눈에 띈다. 심지어 깊은 산속을 헤매는 절박한 상황에서조차 치아만 하얗게 반짝인다. 얼굴에 검정 칠을 해서 고생하는 분위기를 내려 하지만, 반짝이는 치아가 몰입을 막는다. 새하얀 치아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상이지만 미백의 정도를 넘어 형광처럼 빛나는 치아는 되레 연기 몰입을 방해한다. 특히 극중 인물과 완벽히 일치해야 되는 연기가 본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0~30대 남자배우들의 몸은 하나같이 근육질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연기를 하든 주인공의 직업이 운동 트레이너로 보일 정도다. 매일같이 야근하면서 ‘치맥’을 먹는 회사원도 근육질이다. 실제 회사원들에게는 보기 힘든 체형인데, 드라마 주인공들의 몸은 천편일률적이다.

연예인으로서 적당한 체형 관리는 필수지만, 연기자로서 과도한 몸 만들기는 배역에 대한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드라마와 영화 주인공을 꿰차는 20~30대 배우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잘 생겼다. 그러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느라 연기의 현실감은 뒷전인 듯하다.

땀이 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얼굴에만 분무기로 뿌린 것 같은 물방울이 맺혀 있을 뿐이다. 진짜 운동하고 나면 땀이 흐를 만한 곳은 보송보송하다. 특히 남녀주인공의 겨드랑이 땀은 국내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금기 영역이다. 코미디 영화에서 일부러 웃기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할리우드 톱스타 기네스 팰트로는 영화 <땡스 포 쉐어링>에서 ‘겨땀’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그가 연기한 피비는 유방암 수술을 한 뒤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쓴다. 매일같이 조깅을 하며 신체를 단련한다. 열심히 운동한 후 흐르는 겨드랑이 땀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배우의 겨드랑이 땀이 흉해 보이지도 않는다. 레드카펫에 선 톱스타 기네스 팰트로가 아니라 운동에 열중하는 영화 속 피비이기 때문이다.

조각 같은 젊은 미남미녀가 넘쳐나는 한국과 달리 외국의 스타들은 자연스러운 개성으로 연기까지 빛낸다. 영화 <비긴 어게인>으로 인기몰이 중인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작은 가슴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2004년 영화 <킹 아서> 포스터에서 가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부풀린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할리우드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남자주인공 설리반 스탭플턴은 덧니를 그대로 드러내고 연기한다. 전장에 나선 그리스의 군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이가 미백돼 하얗고, 공장에서 끼워 맞춘 듯 완벽하게 가지런한 치아였다면 더 어색했을 것 같다.

외모를 너무 가꿔서 연기를 가린다면 그건 악수(惡手)다. 예쁘고 잘생긴 건 눈길을 끌 뿐 감동까지 주지는 못한다. 연기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국민 엄마’로 꼽히는 김해숙은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고 보톡스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김해숙이 연기하는 엄마는 패션잡지에서나 볼 법한 세련된 얼굴이 아니라,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푸근한 모습이다.

이순재는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여행 다니는 중에도 틈틈이 대본을 잡고 연기 연습을 했다. 경력이 50년이 훌쩍 넘은 그는 여전히 연기를 연습한다. 적당히 변색된 진짜 치아를 보이면서 말이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