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불공정 계약, 그냥 두고 볼 것인가

2020.05.04

2차 저작권·해외판권 등 작가들 권리 보장 제도개선 필요

지난 4월 13일, 네이버 도전만화 코너에 ‘오류정정 및 사과’라는 알림이 올라왔다.

<꾸질이 이야기>의 해다란 작가는 “전속계약이 돼 있어서 네이버 말고 다른 데는 연재를 못 한다는 것은 계약 사실과 다릅니다. 단, 타 플랫폼에 연재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해당 작품의 사업에 대한 독점적 대리중개권은 네이버웹툰에서 지니게 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속작가임에도 네이버웹툰 편집부 측과 긴밀하게 연락하지 않은 지가 오래돼 계약 내용에 대해 오해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지회 소속 웹툰작가들이 지난해 5월 KT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케이툰’의 불공정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지회 소속 웹툰작가들이 지난해 5월 KT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케이툰’의 불공정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해다란 작가는 ‘오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불공정 관행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웹툰시장이 커지면서 ‘억대 연봉’ 등이 부각되고 있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웹툰 생태계,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 되는 2차 저작물 먼저 ‘2차 저작권’ 관련 부분이다. 지난해 5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의 53%가 계약 시 불공정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중 2차 저작권, 해외판권 등 제작사에 유리한 계약의 비중이 26.2%로 가장 높았다. 불공정한 계약조건 강요(15.8%), 적절하지 않은 수익 배분(13.8%)이 뒤를 이었다. 2차 저작권이란 웹툰(1차 저작물)을 기반으로 한 영화·게임·드라마 등에 대한 사용권에 관한 권리를 말한다.

2차 저작권 관련 불공정 경험 비율이 높은 것은 2차 저작물이 그만큼 돈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김희경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장은 “플랫폼이나 에이전시는 2차 저작물 권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투자받기도 쉽고, 또 어떤 작품이 언제 영상이나 게임이 될지 모르니 일단 가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해다란 작가가 한 계약도 이 부분이다. 네이버는 2013년 해다란 작가와 향후 5년 동안 발생하는 2차 저작물에 대한 대리중개권 계약을 했다. 즉 해다란 작가가 어디서 웹툰을 연재하든 상관없이 2차 저작물과 관련된 사업은 모두 네이버가 대행하게 된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작가가 연재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작품에 대한 사업화는 네이버가 대행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면서 “이제는 이런 작가 단위의 계약은 하지 않는다. 작품 단위로만 계약한다”고 말했다. 해다란 작가와 네이버는 5년, 150화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다란 작가는 150화를 채우지 못해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됐다.

신인작가 ㄱ씨는 “작품을 계약할 때 2차 저작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명목상 2차 저작물에 대해 별도로 계약을 한다고 하지만,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2차 저작물 계약을 안 하면 본계약이 어렵다’고 말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는 프로모션 웹툰 플랫폼의 프로모션과 관련해서도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웬만한 웹툰 플랫폼에서는 ‘기다리면 무료’·‘기다리면 0원’ 등의 광고를 볼 수 있다. 플랫폼에서 내거는 일종의 미끼상품이다. 문제는 독자가 이 프로모션을 통해 작품을 볼 경우 작가가 받는 수익도 없다는 것이다. 수수료도 프로모션을 활용하지 않을 때보다 더 크다.

ㄱ씨는 “쿠폰은 배달의 민족에서 뿌렸는데, 주문한 식당에서 공짜로 음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며 “기본적으로 프로모션은 소비자를 플랫폼으로 유인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게 독자가 늘면 작가 입장에서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하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나 광고를 보여주는 반면 웹툰은 그렇지 않다. 순위별로 나열이 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작품도 순위에 올라가지 못하면 독자는 찾을 길이 없다. 작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이유다.

김 지회장은 “프로모션이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플랫폼에서 이미 그렇게 자리를 짜두고 서로 출혈경쟁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작가 ㄴ씨는 “작가 입장에서는 안 되는 작품을 썩히는 것보다는 붐업을 시키는 게 더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할인에 들어가도 인세는 그대로 들어온다. 웹툰을 무료로 뿌린 부분에 대해서도 플랫폼과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에이전시? 플랫폼? 웹툰계에서 최근 떠오른 또 다른 문제는 에이전시다. 에이전시는 작가들을 관리하는 회사다. 이전에는 작가 개인이 플랫폼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에이전시에 소속된 작가가 더 많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작가에 대한 위험 부담 때문에 에이전시를 선호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계약의 어려움이나 관리 때문에 에이전시를 선호한다.

문제는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마치 원청과 하청처럼 될 때다. ㄱ씨는 “최근에 한 플랫폼에서 연재와 관련한 문제가 있었다. 작가들이 항의하자 플랫폼은 에이전시 책임이라고 했고, 에이전시는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플랫폼이 갑’이라고 했다”며 “사실상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과 작가 사이에서 벌어졌던 불공정 관행 일부가 에이전시로 넘어갔다는 지적도 있다. ▲2차 저작물에 대한 사용권을 요구하거나 ▲작품을 연재하기 전 계약조건을 알려주지 않는 것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사전 작업을 계속 요구하는 것 등이다.

김 지회장은 “가령 에이전시에서 일단 3회까지 완성한 다음 플랫폼에 돌려보고 계약을 하자고 한다. 신인작가는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는 이유”라며 “하지만 작품을 적극적으로 팔아주기보다는 수정에 수정을 요구하면서 몇 달씩 시간만 끄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서 계약을 못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시정명령 2년 2년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웹툰과 관련해 ▲2차 저작물 무단 사용 조항 ▲웹툰 가격을 사업자가 임의로 결정하는 조항 ▲계약 종료 후에도 전자 출판 권리를 사업자가 갖는 조항 ▲장래에 발행할 내용까지 무한정 계약 내용까지 포함하는 조항 등을 ‘불공정 약관’으로 규정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콘텐츠진흥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들은 불공정 관행이 이전보다는 개선됐다고 답했다. 다만 제도적인 개선보다는 불공정 관행 이슈가 공론화되면 플랫폼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이는 독자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선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웹툰 표준계약서와 관련해서도 권고가 아니라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표준계약서를 쓰는 웹툰 작가는 15%에 머물렀다.

김 지회장은 “지금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슈가 되면 그 부분이 고쳐지는 것 같다. 예전에 레진코믹스의 ‘지각비’ 문제(당시 레진코믹스는 논란이 일자 지각비 제도를 없앴다)도 그렇고 해다란 작가 2차 저작물 사용권도 그렇다”며 “이슈도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작권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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