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책에 부가세를 부가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책을 국민들에게 앞장서 권해야 마땅할 정부가 책에 세금을 얹으려는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등화가친의 가을을 맞아 서울 북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도서전이나 독서와 관련한 행사들이 줄지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자식이 책 읽는 소리이며, 세상의 열 가지 즐거움을 말한 김창흡의 ‘예원십취’(藝苑十趣) 가운데 무려 네 가지가 책과 관련된 것이다. 옛사람이 아니더라도, 산 너머 암자의 추녀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고스란히 귀에 스며들 만큼 고적한 가을에 읽는 책의 그윽한 즐거움은 무엇에도 비길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출판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서 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출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앞다퉈 도서 할인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 정가의 90%를 할인하는 서점들도 있다.

국민들 주머니를 털어 곳간을 채운다?
이런 와중에 책에 부가세를 부가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한다 하여, 가뜩이나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출판사와 서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11월 4일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에 도서·신문과 비가공식료품, 영리교육용역, 예술품 등 현재 부가세가 면제되는 항목들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다. 고가 패딩점퍼 등의 고급 의류와 같은 사치품목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것이야 공감할 수 있지만, 그런 사치재 속에 ‘책’을 포함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에선 책을 읽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일까.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부가세의 범위를 넓히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선거를 앞두고, 온갖 꿀을 바른 공약들을 남발해 놓고 막상 그 약속을 지킬 만한 나라 살림이 되지 못하자 이리저리 궁리 끝에 내어놓은 군색한 방책이 아닌가 싶다. 그 다급한 심경은 헤아릴 수 있지만, 책을 국민들에게 앞장서 권해야 마땅할 정부가 책에 세금을 얹으려는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개천에서 나온 대통령이 한껏 제가 벌인 삽질에 고무되어 멀쩡한 강을 헤집고 보를 막느라 나라 곳간을 비우더니, 이제 그 뒤를 이은 대통령이 빈 곳간을 멀쩡한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채우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라 살림을 하자면 돈이 있어야 하고, 국민에게 부여된 조세의 의무가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그 조세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탈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수다한 민란의 저변에는 늘 공정하지 못한 조세가 있었으니, 서민들의 고달픔을 위로하던 담배와 책에 얹으려는 세금의 의도가 예사롭게만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돈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서민들의 삶을 구제하는 ‘경세제민’의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할진대, 불경기에 가장 큰 고초를 겪는 서민과 월급쟁이들의 얇은 주머니를 털어대기 급급한 세금이 곱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법인세나 상속세, 종부세처럼 부자들과 관련된 직접세는 이런저런 이유로 곤달걀처럼 감싸고 돌면서,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간접세에는 눈에 불을 밝히고 알뜰살뜰 털어대려는 정부의 의도는 그야말로 ‘부자감세 서민증세’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가 기회만 되면 추진하려는 철도, 의료, 공항, 수자원에 대한 민영화 정책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공공성의 측면에서 정부의 민영화 의도는 정부가 떠안아야 할 공공성을 민간에게 떠넘기려는 책임회피이며, 서민 복지의 재원을 충당해야 할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려는 잔꾀에 불과하다. 국고로 건설해야 할 국가 기반시설인 도로나 학교 공사를 민간에 떠넘기는 민자사업의 확산도 결국 부자들이 내놓아야 할 누진과세의 부담을 덜어주는 셈이다. 재벌의 총수든 일용직 노동자든 담뱃값이나 책값은 똑같이 지불하는 것이니 간접세야말로 부자들이 꿈꾸는 ‘공정한 세금’이 아니겠는가.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라는 책에 소개된 핀란드 노키아 사장의 교통위반 범칙금 이야기는 ‘공정’에 대한 가장 공정한 기준을 일깨워준다.

“핀란드의 가장 큰 대기업인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가 과속에 걸렸는데 그가 물었던 벌금은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벌금까지도 소득에 따라 매긴 것인데 ‘사회 상층일수록 의무를 잘 지켜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요구도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조중동은 ‘부자에 대한 원한이 담긴 벌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종합부동산세를 ‘부자 원한세’라고 부르기도 했다.”

재벌 총수든 노동자든 ‘똑같은 세금’
자신이 지닌 부의 소유만큼 사회적인 책무의 무게도 비례하는 것이 과세의 공정한 기준이라 하겠다. 부라는 것은 결국 사회에서 얻은 소득이니 사유의 권리와 함께, 공공의 의무도 비례하여 감당함이 마땅할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가뜩이나 줄어드는 독서 인구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한 푼이라도 거두어 들이기 급급하여 이제 책에도 세금을 얹으려는 발상이 가증스럽고 한심하기만 하다.

자고로 나라 살림이 쪼일 때마다 권력자들이 해온 가장 쉬운 방책은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낼 세금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베스파시안이라는 로마 황제는 집 밖에 내어놓은 소변 항아리에도 세금을 징수하였다. ‘오줌’에서 나온 돈을 두고 “Pecunia non olet(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제 백성들의 오줌이 아닌 책에 덧붙이려는 세금에선 과연 어떤 냄새가 날까.

<이시백(소설가)>